메뉴 건너뛰기

close

 ㄱ. 책으로 가는 사람다운 길

문학평론을 하는 이명원 님은 2008년에 <말과 사람>(이매진,2008)이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이명원 님이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책인데 첫 꼭지는 소설쟁이 이문열 님을 다룹니다. 이문열 님은 이명원 님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작가로 죽을 건데, 나에게는 무진장한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은 10년이 채 안 될 것이다. 우리 나이로 10년 후면 일흔이 된다. 평균 수명이 늘었다 하더라도 그 정도가 그런대로 정신 차리고 일할 나이다(40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다가 속으로 생각합니다. 소설쟁이 이문열 님은 이런 말마따나 참말 '넋 차리며 일하'고 있으신가 하고.

가만히 돌아보면 진보이니 보수이니 왼날개이니 오른날개이니를 떠나, 저마다 당신들이 선 자리에서 '얼 차리고 똑바로 일하'는 분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진보 값어치를 지키면서 올바르게 일하는 분하고 보수 뜻을 세우면서 곧바르게 일하는 분은 몇 사람쯤 될까 궁금합니다. 왼날개를 아름다이 펄럭이며 오른날개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분하고 오른날개를 곱게 펼치며 왼날개를 따스히 맞아들이는 분은 몇이나 될까 궁금합니다.

서울 명륜동에서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을 꾸리는 일꾼 은종복 님이 책을 하나 써냈습니다. 책이름은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 책이름 그대로 책방 <풀무질> 일꾼은 쪽글을 바지런히 써서 책손한테 나누어 주며 온누리를 벼리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공안경찰한테 붙잡혀 갔을 때 공안경찰은 은종복 님 당신한테 "처벌받고 여기서 나가면 그런 돈도 안 되는 사회과학 서점은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해 봐요. 좀 건전한 거 있잖아요. 요즘 학생들 술 많이 마시던데 술집 하면 좋겠네요(4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공안경찰 눈으로 볼 때에 '인문사회과학 책방'은 돈도 안 되는 일일 뿐 아니라 '건전하지 못한' 일입니다. 더욱이 '건전하다'는 일이란 '학생들한테 술을 파는'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난달에 <토목을 디자인하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일본에서 건축디자인을 하는 분이 쓴 책을 우리 말로 옮겼는데, 우리 말로 옮긴 분이 대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이지만 옮김글은 영 어설픕니다. 대학교수님으로서 당신 학과 정보와 지식은 대단하기는 할 터인데, 이와 맞물려 당신이 건사하는 정보와 지식을 뭇사람한테 손쉽고 살갑게 나누는 말글 테두리에서는 얕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건축디자인을 하는 일본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건네려는지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 "거품경제 시대 일본의 졸부처럼 재력만 있다고 해서 규범 풍경은 만들어지지 않는다(89쪽)."는 이야기처럼, 훌륭한 건축이든 아파트이든 집이든 길이든 도시이든 큰돈을 들인다고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뭇목숨을 아끼며 온누리에 평화와 믿음이 고루 넘치게끔 마음을 기울이고 땀을 쏟아야 이루어 냅니다.

기나긴 다리 하나이든 조그마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하나이든 소설로 이름값 떨치는 삶이든 모두 매한가지로 이어진다고 하겠습니다. 다름아닌 올바른 삶, 티없는 사랑, 꾸밈없는 땀방울, 살가운 어깨동무입니다.

ㄴ. 무라카미 하루키 좋아하셔요?

저는 모르는 책이 참 많고, 못 읽은 책이 참 많으며, 못 읽을 책 또한 참 많습니다. 아직까지 무라카미 하루키 님 책은 한 가지조차 읽지 않았거나 읽지 못했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무라카미 하루키 님을 좋아하거나 그리 안 좋아하거나 이분 책을 읽은 분 가운데 다른 좋은 책이나 훌륭한 책을 골고루 샅샅이 읽은 분은 없습니다.

누구나 한 가지 책을 읽으면 다른 한 가지 책은 읽을 수 없습니다. 책만 읽으면서 살아간다 하여도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다 할지라도 골라서 읽을 뿐, 모두 읽을 수 없으며 모두 읽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저마다 스스로한테 가장 알맞고 아름다운 길을 찾아 저 나름대로 살아가듯, 우리들은 누구나 저마다 스스로한테 가장 알맞고 아름다운 책을 찾아서 읽을 뿐입니다.

잘난 책읽기이든 못난 책읽기이든 따로 없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결에 따라 살아가며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마주하는 가운데 스스로 좋아하는 모습대로 내 몸과 마음을 가꿉니다. 내가 고른 책이 훌륭한 책이든 어설픈 책이든 우리로서는 좋은 알맹이를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내가 고른 책이 빼어난 책이든 멋진 책이든 우리로서는 나쁜 버릇에 물들 수 있습니다.

엊그제 동네 헌책방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1 : 코끼리공장의 해피엔드>(백암,1993)가 보이기에 집어들어 읽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님 소설은 어떠한지 잘 모르나 수필은 참 괜찮다고 느꼈습니다.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 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대충 같다(87쪽)." 같은 대목을 읽으며, 번역은 꽤 엉망이라고 느끼면서도 이 글월에 담긴 글쓴이 마음은 기쁘게 헤아렸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님 생각이자 삶은 "어떻게 쓰느냐는 어떻게 사느냐와 얼추 같다"일 테니까요.

그러니까,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내 삶부터 올바르고 아름답게 잘 꾸려야 한다는 소리랍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내 삶부터 좋은 삶이 되도록 잘 추스려야 한다는 소리이고요.

더없이 마땅한 이야기일 테지요? 그지없이 옳은 말씀일 테지요?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 마땅하고 옳은 글월을 마땅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옳게 새기지 못합니다. 그냥 책 한 귀퉁이에 실린 글줄로 읽고 잊습니다. 고운 삶이란 하루키 님 책에만 있지 않고 우리 둘레에 두루두루 있는데. 맑은 삶이란 하루키 님 소설에만 있지 않고 우리 터전에 구석구석 있는데. 참된 삶이란 하루키 님 수필에만 있지 않고 우리 이웃이나 살붙이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데.

어떤가요? 무라카미 하루키 님을 좋아하시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님이 다룬 이야기나 바라본 사람들을 좋아하시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님 삶을 좋아하시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님이 꿈꾸며 가꾸는 삶을 좋아하시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님 문학을 읽는 내 삶과 내 몸뚱이와 내 손길과 내 삶터를 좋아하시나요?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습니다.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태그:#책읽기, #삶읽기, #책이 있는 삶, #하루키, #풀무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