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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2박 3일 간의 휴가가 생겼다. 지리산에 가고 싶어 했다. 휴학 중인 작은 딸에게 같이 가겠냐고 했더니 따라나선다. 주변을 물색해보니 지인 한 명도 같이 가겠다고 한다. 해서 남자 한 명에 여자 셋이 움직이게 되었다.

지리산 종주는 가고 싶다고 막 가지는 곳이 아닌지라 보름 전부터 산장대피소 예약에 들어가야 한다. 6일 용산역에서 오후 10시 50분에 출발하는 밤기차를 탔다. 기차 안이 조금 추웠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하는데, 쉽게 잠으로 빠지지 못했다.

기차 안 선반에 배낭들이 즐비해서 놀랐다. 우리처럼 계획을 잡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겠다. 7일 오전 3시 20분 구례구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달려서 역을 빠져 나갔다. 성삼재로 오르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그리고 앉기 위해서다. 우리는 점잖게(?) 걸어서 갔더니 버스 안이 만원이다.

버스는 성삼재까지 지그재그로 우리를 돌렸다. 3년 전에 처음 왔을 때도 이 코스였다. 이렇게 돌았는가 싶다. 그 때는 버스가 끊긴 밤에 도착해서 택시를 탔었다. 맨 뒷좌석 발판 끝에 어떤 초등생 남자아이와 엉덩이를 맞대고 같이 앉았다. 아이는 멀미로 괴로워했고, 나도 울렁거렸다. 역에서 뛰지 않은 게 후회될 만치 30분간이 길게 느껴졌다. 초등생 아이는 엄마와 둘이만 3박 4일의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아이 때문에 긴 날들을 잡은 듯한데 모자의 열정에 주변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7일 새벽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목,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7일 새벽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목,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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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4시 30분, 성삼재에 도착하니 바람과 하늘의 별들이 우리를 맞는다. 곧바로 노고단 대피소로 향했다. 벌써 여명이 시작되어 길이 어둡지 않았다. 대피소까지의 길은 대로로 정비되어 있는 곳이라 어둡다 해도 걷기에 불편한 곳은 아니다. 한 시간여가 걸려 도착했다.

대피소 취사장 안은 장바닥 같았다.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앉거나 서서 아침을 준비했다. 우리도 그 틈에 끼였다. 그래도 노고단 대피소의 취사장은 다른 대피소에 비하면 호텔급이다. 수도가 안에 있고,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우리가 종주하면서 숙박과 잠시 쉬게 되는 대피소 중에서). 물론 세제는 금물이다. 물만 가지고 그 자리에서 헹굴 수 있다는 뜻이다. 양치는 소금과 계곡물로 닦았다. 물이 얼음장이라 이가 시렸다. 입안에 잠시 가두었다가 뱉었다.

오전 7시, 날은 완전히 밝았다. 아침 해가 쨍하니 추운 기를 조금 가시게 했다. 그러나 바람이 세서 기온은 높지 않았고, 두꺼운 등산복이 그리웠다. 이제 천왕봉까지 25.9㎞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신발 끈을 다시 조였다. 남편은 여러 번의 종주경험이 있다. 나는 두 번째고, 딸과 지인은 처음이다. 설렜다.

노고단 고개에서 바라본 천왕봉, 걸을 때마다 능선 하나하나가 우리 앞으로 당겨질 것이다.
 노고단 고개에서 바라본 천왕봉, 걸을 때마다 능선 하나하나가 우리 앞으로 당겨질 것이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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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고개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바라본 겹겹의 산은 장엄했다. 능선을 타고 흘러내린 골들은 어느 지점에서 사람들을 품어 마을을 만들겠지. 푸른 하늘과 어울린 산들은 나란히 줄을 선 듯 한 겹 한 겹 우리 앞으로 다가 올 것이다. 맨 앞산은 숲인데 맨 뒤의 천왕봉 능선은 수평선과 맞닿은 섬 같았다.

지리산은 품새가 넉넉한 산이다. 수많은 민중을 품었던 산이다. 어머니 품속처럼 파고들어 안식을 얻고자 했던 산이다. 그들의 눈물 때문인가 진달래나무가 지천이다. 올 봄의 이상기온 때문인지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붉은 팥알 같은 봉오리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그것만으로도 진달래는 탄성이 나오게 했다. 만개하면 불난 듯이겠다.

숲 오솔길로 들어서니 곳곳에 낮은 조릿대들이 좌우로 빽빽하다. 개체수가 많아진 조릿대 때문에 지리산 생태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넘치면 그 또한 병이되는 이치다. 바람은 숲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하늘에서만 무섭도록 윙윙거린다. 숲을 벗어나면 곧바로 달려든다. 그렇게 바람과 숨바꼭질하며 피아골 삼거리를 지났다. 여기까지의 길은 산책길처럼 편안했다.

피아골 삼거리로 가는 길. 볕바른 양지에서는 조금씩 피어난 진달래를 만날 수 있었다.
 피아골 삼거리로 가는 길. 볕바른 양지에서는 조금씩 피어난 진달래를 만날 수 있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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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걸령 근처에서 만난 길과 조릿대
 임걸령 근처에서 만난 길과 조릿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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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50분,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고 임걸령 옹달샘에 도착했다. 검은 반점의 도롱뇽 알이 옹달샘이 흘러 고인 물속에 둥지를 틀었다. 햇볕 때문에 투명하게 보석처럼 빛나 보인다. 갑자기 급격하게 경사진 길이 나온다. 딸이 "임걸령 옹달샘에서 쉬게 한 이유가 있구만"한다. 조릿대들의 극성은 여전했다.

9시 40분, 노루목이다. 그대로 천왕봉으로 직진할 것인지 옆으로 새서 반야봉을 들를 것인지 잠시 의논을 하고, 시간의 여유가 있을 것 같아 반야봉으로 향했다. 노루목에서 1㎞다. 오르는 길이 험하지는 않으나 급경사라서 힘이 들었다. 오르막 어름에서 남편은 "어차피 다시 이 길로 내려와야 하니 배낭을 내려놓고 몸만 오르자"고 한다. 망설이다가 설마 누가 가져가랴 싶어 모두 한 곳에 모아놓고 올랐다. 몸이 둥실 뜨는 것 같다.

10시 40분, 반야봉, 해발1732m, 설악산 대청봉보다 높다. 꽃이 피면 능선을 온통 붉게 덮을 철쭉은 아직 피지 않아서 아쉬웠다. 급한 일정이 아니라면 꼭 올라보라고 권유하고 싶은 곳이었다.

반야봉. 능선 전체가 거의 철쭉나무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반야봉. 능선 전체가 거의 철쭉나무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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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목에서 반야봉 쪽으로 조금 오르면 천왕봉으로 내려갈 수 있는 또 다른 샛길이 나온다. 사람들은 가끔 이곳에 짐을 부리고 가볍게 올랐다가 왔다.
 노루목에서 반야봉 쪽으로 조금 오르면 천왕봉으로 내려갈 수 있는 또 다른 샛길이 나온다. 사람들은 가끔 이곳에 짐을 부리고 가볍게 올랐다가 왔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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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려오니 짐은 고스란히 있고, 다른 팀들도 그렇게 하고 오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배낭위에 껌을 하나 올려놓는 센스를 발휘했다. 짐을 노루목에 두지 말고 조금 오르다보면 또 천왕봉과 반야봉으로 갈라지는 샛길이 나온다. 그곳에 놓는다. 그러면 노루목까지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

'얼레지'를 처음 만난 곳은 반야봉에서 내려와 걸은 지 한 시간 정도 걸린 거리였다. 그 높은 곳에 묘지가 있었다. 누굴까, 지인과 신기하다며 얘기하는데 보라색 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처음 보는데 지인은 알고 있었다. 꽃이 피면서 5장의 날렵한 보라색 꽃잎이 학춤을 추듯 모두 뒤로 뒤집어 모아진다고 한다.

지인은 꽃잎이 '치마를 뒤집듯 한다'해서 '얼레리꼴레리'하면서 외웠다고 알려준다. 그래서 잊지 않는다고. 보니 아래로 숙였던 꽃잎들이 암수술만 빼놓고 모두 위로 뒤집어 모아지면서 원래 꽃 모양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둘이서 자연공부 하느라 점점 처지니 남편이 위에서 재촉을 한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뒤부터 군락지가 넓게 분포되어 있는 듯 종주 내내 무리지어 있는 얼레지가 눈에 들어왔다.

산 속 나무들은 아직 잎을 달지 않고 있다. 풀꽃들만 봄을 맞아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삼지창처럼 갈라진 나뭇가지들은 벌거벗은 채 나무에 붙어 구불거렸다.  절대로 푸른 싹을 틔울 것 같지 않은 삭정이처럼 보였다.

처음 만난 '얼레지', 지리산에서 실컷 보았다.
 처음 만난 '얼레지', 지리산에서 실컷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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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에 걸쳐져 있다는 삼도봉을 지나면서 화개재까지 기나긴 나무계단을 내려 밟았다.

오후 1시, 토끼봉에 닿았다. 지금까지 10㎞를 걸었다. 오면서 지인이 싸온 약밥과 오이와 방울토마토와 초콜릿을 씹으며 왔는데도 배가 고팠다. 뜨거울 때 냉동실에 얼렸던 찰밥이 덜 녹아서 퍼석거렸다. 햇볕은 따뜻한데 바람이 불어서 선뜻하면서 땀이 나지 않는다. 따뜻한 물이라도 먹고 싶었지만 가져온 물도 차가웠다. 그래도 이것저것 싸온 밑반찬 때문에 먹을 만하다. 딸이 "집에서 먹을 때보다 반찬이 더 많다"고 한마디 한다.

계속 앉아 있으면 품속으로 파고드는 바람 때문에 체할 것 같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500m 지점쯤 내려오는 길에서 딸이 발목을 삐었다. 밥을 먹고 나니 긴장이 풀렸었나보다. 조그만 자갈돌들은 발밑에서 구른다. 그래서 될수록 자갈돌들은 밟지 않는 것이 좋다. 응급처치에 들어갔다. 민간요법으로 수지침을 할 줄 아는 지인이 손가락 지압을 해주었다. 발목에는 근육통약을 바르고, 준비해간 발목 보호대를 채웠다. 찰밥을 싸왔던 호일을 깨알처럼 둥글려 반창고로 손가락 경락에 붙였다. 압봉대신이다.

정말 삐었다면 그대로 하산을 해야할 판이다. 발목을 살살 돌려보더니 걸을 만하다고 한다. 평소에 산을 타던 사람들은 근육이 단련되어 있어서 부상이 잦지 않지만 딸 같은 경우는 아니기에 염려가 되었다. 딸에게 좋은 산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는데 무리였나 싶은 게 심난했다.

지리산의 나무들
 지리산의 나무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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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비상이다. 아파도 벽소령 숙소까지는 가야한다. 남편은 자신의 배낭을 메고, 앞쪽으로는 무게가 조금 덜 나가는 내 배낭을 멨다. 나는 대신에 딸의 배낭을 멨다. 딸은 아프다고는 해도 절뚝이지 않는 것을 보니 근육이 잠시 놀란 모양이다. 그래도 한 밤을 지내 봐야 한다. 뒤늦게 부어오를 수가 있다. 그렇게 한바탕 수선거렸지만 산길에서 웃기도 했다.

지리산에는 반달곰이 살고 있다. 그래서 곳곳에 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라는 현수막이 자주 눈에 띈다. 앞서간 남편과 딸이 갑자기 손가락을 입에 대면서 앞 쪽 숲을 보라는 시늉을 한다. 지인과 나는 놀래서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나무 숲 속이라 어른거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커먼 물체가 버둥거리고 있는 것 같다. 순간 곰이다 싶었다. 오금이 저려왔지만 숲 속에 노란 옷을 입은 사람도 보여서 아마도 수의사나 곰과 관련된 일을 하는 직원인가 싶어 안심을 하고 가까이 갔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현수막 내용을 잊고 멀찍이서 사진기를 들이댔다. 그런데 이상했다. 피사체에 잡힌 곰의 모양이 요상하다. 분명 누워서 네 다리를 갖고 노는 것 같은데 생명력이 있는 호흡이 느껴지지 않는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과 딸이 갑자기 배꼽을 잡는다. 카메라에서 눈을 뗀 지인과 나는 멀뚱히 그것을 쳐다보다가 두 사람에게 눈을 흘겼다. 종주산행은 등산 짐이 많다. 그러다보니 배낭도 크다. 딸은 엄마가 금방 눈치 챌 줄 알았지 설마 카메라를 들이댈 줄은 몰랐다며 아주 즐거워 미치겠다는 표정이다. 그 뒤로 벗어둔 배낭만 보면 곰이라며 둘이는 놀렸다. 지리산이라서 가능했던 에피소드였다.

연하천 대피소, 아주 잠깐이나마 시린 물에 발을 담갔다.
 연하천 대피소, 아주 잠깐이나마 시린 물에 발을 담갔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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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30분, 연하천 대피소다. 일반적인 산행보다 조금 늦은 시간이다. 숙소인 벽소령대피소까지 아직 3.6㎞가 남았고, 아이의 발목은 여전히 부자연스럽다.

덧붙이는 글 | 지역소식지 <마주보기>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지리산, #성삼재, #노고단, #임걸령, #연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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