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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구로구 성공회대에서 열린 노무현 추모콘서트에 자원봉사자들이 행사장 안내를 위해 노란 풍선을 달고 있다.
▲ 국민의 아버지께 노란 카네이션을 5월 8일 구로구 성공회대에서 열린 노무현 추모콘서트에 자원봉사자들이 행사장 안내를 위해 노란 풍선을 달고 있다.
ⓒ 윤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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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어버이날 서울 성공회대학교에 모인 사람들은 카네이션 대신 노란색 리본을 하나씩 달고 있었다. 이날은 바로 노무현 추모콘서트가 열리는 날이었다. 공연 2시간 전에 도착한 성공회대는 시민 자원봉사자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거리에 노란풍선을 달며 행사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할 즈음 한쪽에서 플래시가 연이어 터지는 소리가 났다. 급히 가보니 유시민 전 장관이 자원봉사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특히 뒤따라오는 어린아이들이 많았는데 그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하나하나 악수를 해주었다. 한 아이는 "손이 참 따뜻하다"며 계속 따라다녔다. 뒤이어 이재정 전 장관과 한명숙 전 총리가 들어왔다. 한명숙 총리가 장내에 들어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한명숙 전 총리가 입장하고 있다. 아직 선거는 한 달이 남았지만 이 행사에서 만큼은 이미 서울시장이 된 것만 같았다.
▲ 안녕하세요 한명숙 전 총리가 입장하고 있다. 아직 선거는 한 달이 남았지만 이 행사에서 만큼은 이미 서울시장이 된 것만 같았다.
ⓒ 양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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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 작은 운동장에 스탠드까지 꽉 찬 자리가 비좁아 보였다. 약 5000명가량 온 시민들이 자리가 많지 않아 차디찬 흙바닥에 박스나 신문지를 깔고 앉아야 했다. 무대 배경에는 작년 추모제 행사 때 시민들이 썼던 노란리본을 그물에 묶어 만든 노무현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명계남이 오른쪽 눈이 다쳐서 잘 못 본다고 하자 문성근이 "그럼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니까 좌파네?"라며 풍자한다.
▲ "그럼 좌파네?" 명계남이 오른쪽 눈이 다쳐서 잘 못 본다고 하자 문성근이 "그럼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니까 좌파네?"라며 풍자한다.
ⓒ 양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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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문명' 이야기

"당신 어디에 계십니까!"로 시작한 명계남의 인사말은 수술 후 변한 그의 목소리 때문인지 유난히도 슬퍼보였다. 그는 "노 대통령은 취임할 때 기존에 매던 것이 편해서 좋다며 새 넥타이를 매는 것을 싫어할 정도로 검소한 사람"이라고 추억하며 "진보의 미래 같은 어려운 거 필요 없고 그냥 당신이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스크린엔 몇몇 시민들이 눈물을 감추는 모습이 잡혔다.

그는 이어서 "아파도 절대 죽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죽음으로써 세상에 저항했지만 나 같은 사람은 사는 것이 유일한 힘이다. 끝까지 살아서 지켜볼 것이다. 깨어나는 시민들이 늘어나는 것을, 그리고 당신이 우리 안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이라며 분위기를 숙연케 했다. 뒤이어 '바드'라는 인디밴드는 특유의 경쾌함으로 북받쳐 오른 시민들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식혀주었다.

뒤이어 문명이야기(문성근·명계남)의 만담이 있었다. 명계남이 "요즘 오른 쪽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하니까 문성근이 "그럼 좌파네?"라며 반문하자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둘은 서로 영화와 연극에 대해 논하며 예술하는 사람들이 상상력의 검열로 인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고 역설했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들이 환호하는 모습
▲ 추모에서 환호로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들이 환호하는 모습
ⓒ 양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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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도 너무 많이 맞아서 하나도 안 아프다"

다음 공연엔 윤도현이 나오자 시민들이 갑자기 모두 일어서며 앞으로 나오는 바람에 행사 요원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윤도현은 "나보고 세 곡을 하라는데 너무 짧은 것 같아서 한 곡 더하기로 했다"며 "아까 예술인 스스로가 검열한다고 하시는데 우린 안 한다. 어차피 화살도 너무 많이 맞아서 하나도 안 아프다"고 말해 관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안치환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다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마음 속에는 그 이름 세 글자가 영원히 새겨지길 바란다"며 불후의 명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러 분위기를 이어갔다.

다음에 나온 프로젝트 밴드는 모두 아마추어로 구성된 밴드였다. 보컬엔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이정희 민노당 의원,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 기타엔 정연주 전 KBS사장 등 악기는커녕 노래방 탬버린도 안 잡을 것 같은 사람들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제각각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정당을 초월한 하모니였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뭉게구름'을 따라 부르며 그들의 하나 됨에 동참했다.

민주당 김진표 의원과 국민참여당 유시민 의원이 불과 몇 미터 차이나지 않는 거리에서 나란히 앉아 관람하고 있다.
▲ 실제 거리 2m, 마음의 거리? 민주당 김진표 의원과 국민참여당 유시민 의원이 불과 몇 미터 차이나지 않는 거리에서 나란히 앉아 관람하고 있다.
ⓒ 양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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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정연주와 'MBC파업을 지지합니다'

 한 시민이 신문과 방송에 대한 비판적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희미한 흔적 한 시민이 신문과 방송에 대한 비판적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양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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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날씨가 상당히 추워졌다. 거칠게 부는 바람에 관중들이 좀 더 움츠러들었다. 뒤에서 어떤 이는 "분명히 내일 감기몸살 걸릴 거"라며 투덜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릴 지키고 있는 그들이었다. 다음 순서로 나온 이한철밴드는 그런 추위를 한방에 날려줄 만한 밴드였다. 이한철은 "지난 1년 동안 현실은 바뀌지 않았지만 희망과 웃음으로 바꾸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가사의 슈퍼스타를 열창했다.

뒤이어 노란 노무현 티셔츠를 입은 전 KBS사장 정연주가 걸어 나왔다. 스크린에는 어떤 시민이 'MBC파업을 지지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아이러니했다. 정연주 사장은 "이 자리는 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등 모든 당이 당을 초월한 자리"라며 다음 순서로 강산에를 소개했다.

이어서 나온 강산에는 <할 수 있어>와 <삐딱하게>를 불렀는데 특유의 무대매너로 관중석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마지막엔 행사요원이 막는데도 불구하고 대학생들이 무대로 몰려나가 행사요원들이 곤혹을 겪기도 했다.

서민 '후렌들뤼' 한다더니 서민 '후달리게'하는 정부

모든 불이 꺼지고 갑자기 노무현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을 좌파개그맨, 운동개그맨으로 소개하는 개그맨 노정렬이 노무현 성대모사를 하며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검찰에 대해 쓴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원칙과 상식대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한명숙을 지켜 달라"며 "6월 2일에는 떡검을 몰아내고 승리의 떡을 돌리자!"라고 풍자했다.

마지막 순서로 나온 시민합창단은 민중 노래패 우리나라와 함께 'Power to the people'을 불렀다. 시민합창단은 무대리허설 때 즉석에 있던 시민들로 꾸려진 합창단이다. 하지만 실제 공연에서 그들의 율동과 노래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왜냐면 그 순간엔 관중 모두가 시민합창단이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고 시민들이 의자를 겹쳐주자 행사요원들이 자신들이 하는 법이 있다며 말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 그냥 놔두세요 공연이 끝나고 시민들이 의자를 겹쳐주자 행사요원들이 자신들이 하는 법이 있다며 말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 양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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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이후의 삶은 투쟁적 삶"

공연이 끝나고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앉아 있던 플라스틱 의자를 겹쳐 쌓고, 주변 쓰레기를 모았다. 오히려 공연업체 쪽에서 우리가 치우는 법이 따로 있으니까 건들지 말라고 말릴 정도였다.

출구 한편에는 술과 주전부리를 파는 포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곳에선 벌써 노무현을 안주로 한잔 두잔 기울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김재훈(경기도 성남시 분당, 47)씨는 "내가 82학번인데 노무현과 80~90년대 정치사를 함께 했다"며 그를 회고했다. 그는 "노무현은 참 소신 있는 정치인이다. 난 소시민으로서 소신을 지키기가 정말 힘들지만 항상 그를 보며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라며 소주를 털어 넣었다.

자신을 안사비나(서울시 송파구, 47)라고 소개한 여성은 윤도현이 한 말이 가장 생각난다며 "원칙을 지켜서 져야 한다면 난 질 것이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노무현의 죽음이 남기고 간 것에 대해 묻자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조금 더 정치적이 된 것 같다"며 "내 이전 삶은 물러서는 삶이었지만 이제는 투쟁하는 삶이다"라고 말했다.

끝나고 가기가 아쉬운 시민들이 성공회대 안에 마련 된 포장마차에서 뒷풀이를 하고 있다.
▲ 뒷풀이에서 한풀이, 우리는 한뿌리 끝나고 가기가 아쉬운 시민들이 성공회대 안에 마련 된 포장마차에서 뒷풀이를 하고 있다.
ⓒ 양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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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운동장 그리고...

작년 추모제에 이어 이번 6회에 걸친 공연을 총 기획한 탁현민 한양대 교수는 "슬픔을 통해 희망을 찾아가는 것이 이번 공연의 목적이다"라고 한다. 그는 앞으로 1년 뒤 그리고 10년 뒤의 공연에 대해서 묻자 "매년 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는 일이다. 단 굳이 내가 이 공연 기획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이 맡아서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리고 매년 주요 테마를 꼭 추모의 형태로 갈 필요도 없고 바뀌어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다시 찾은 텅 빈 운동장에선 무대를 철거하고 있었다. 이 작은 운동장을 가득 메웠던 함성이, 시민들의 36.5도로 뭉친 열기가, 온 몸을 전율케 하던 신디사이저의 울림이 마치 코드를 뽑은 듯 조용했다. 명계남이 "아무리 떠들어도 당신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듯 그는 다시 살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떠드는 게 중요하다고.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나의 죽음으로나마 모여서 떠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래야 민주주의라고.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공연이 끝난 뒤 한 시민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정말로... 공연이 끝난 뒤 한 시민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양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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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무현, #성공회대, #추모콘서트, #1주년, #구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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