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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 최고의 책> 특별기획을 진행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전문가와 시민기자, 누리꾼 패널들이 뽑은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을 기본 자료로 삼아, 선정자문위원회의 자문 그리고 누리꾼 투표 등을 거쳐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 10권을 선정해 최종 결과를 5월중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와 더불어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 서평 기사를 공모해 좋은 기사로 선정된 경우 소정의 특별원고료(사이버머니)를 지급합니다. [편집자말]
<논-밥 한 그릇의 시원> 겉그림
 <논-밥 한 그릇의 시원> 겉그림
ⓒ 마고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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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참 많은 책들을 읽었다. 10년 중 반은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썼다. 2004년까지는 순수한 독자로 수많은 책들을 읽었고, 2005년부터는 좋은 책을 나 혼자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에게도 나눠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해져 읽었다.
이 사명감은 좋은 책을 더 많이 접하는 기회이자 특권이 됐다. 훗날에도 결코 후회 없을 책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좀 더 다양하고 많은 책들을 접하며 그동안 별 관심두지 않던 분야에도 관심을 두게 되고 이는 나아가 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자양분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특권으로 좋은 책들을 워낙 많이 읽었던지라 10년 동안 최고의 책을 꼽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그래도 반드시 소개하고 싶은 책 한 권을 꼽으라면 <논-밥 한 그릇의 시원>(마고 북스 펴냄)이다.

꼭 읽어야 할 책? 몇 번을 물어도 나의 대답은 하나

농부의 손을 떠나 논에 심겨진 모는 긴 항해를 시작한다. 비바람과 뜨거운 햇살을 지나 그 자신이 뿌리인 낟알이 되기 위해. 그 여정이 한 알의 볍씨의 일생이다.(책속 사진 설명)
 농부의 손을 떠나 논에 심겨진 모는 긴 항해를 시작한다. 비바람과 뜨거운 햇살을 지나 그 자신이 뿌리인 낟알이 되기 위해. 그 여정이 한 알의 볍씨의 일생이다.(책속 사진 설명)
ⓒ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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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을 택지로 전환해서 아파트를 짓거나 상업지구로 만들면 땅값이 몇 배나 올라가니 논이 사라지는 것이 무어 대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요즘처럼 쌀이 남아돌고 먹을 것이 지천에 널려있는 때에 논이 좀 줄어든다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쌀이 부족하면 밥 대신 다른 것을 먹으면 된다고 당당히 말한다.

지금까지 논이 사라진 속도로 계산을 해보면 향후 150년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논이 완전히 없어지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식인 쌀을 생산할 수 있는 땅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밥을 계속 먹으려면 수경 재배를 하든지 쌀을 100퍼센트 수입해야 할 것이다. - 책 속에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7년에 사라진 논은 서울 면적의 4분의 1 가량이며, 최근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논의 면적은 8만 헥타르에 이른다. 이는 서울시 전체 면적의 1.3배가량에 해당한단다. 이렇게 사라진 논, 그 자리에는 주택이나 공장 등 인간들을 위한 각종 생활시설들이 지어진다.

공장이든 주택이든 우리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식량을 절대 앞 서 갈 수 없는 것들이고 식량 없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다. 세상 그 무엇도,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식량을 앞서 갈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이처럼 많은 논들이 사라지고 있다. 식량 자급률 또한 형편없다. 농업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겨우 27%,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세계 석학들은 21세기에는 식량이 무기가 될 거라고 입을 모으는데 말이다.

사실 언뜻 논은 쌀이나 미나리 등을 생산해내는 것 외에 별로 가치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가볍고 경솔하게 보고 말 때의 이야기다. 책 속 '논이 떠맡고 있는 하고 많은 일들'에는 논의 역할 6가지가 구체적으로 소개된다. 그중 셋만 보면.

호미로 땅을 산다는 말도 있다. 논둑이나 밭둑을 호미로 조금씩 파서 제 땅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 뼘의 땅이 아쉬웠던 시절,그렇게 늘린 땅에 벼 한 포기라도 더 심고 싶은 마음이었다(책속 사진 설명)
 호미로 땅을 산다는 말도 있다. 논둑이나 밭둑을 호미로 조금씩 파서 제 땅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 뼘의 땅이 아쉬웠던 시절,그렇게 늘린 땅에 벼 한 포기라도 더 심고 싶은 마음이었다(책속 사진 설명)
ⓒ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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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홍수 조절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여름에 논이 담고 있는 물의 양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전체 논 면적을 106만 헥타르(207년 기준)로 계산하면 논이 저장할 수 있는 물은 약 28억 톤 정도가 된다. 이것은 팔당댐의 총 저수량인 2억 4400만 톤의 14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둘째, 지하수 저장에 큰 역할을 한다. 농업기반공사가 계산한 논의 지하수 저장량을 보면 전체 지하수 저장량 121억 톤 중 45퍼센트인 54.5억 톤 정도다.

셋째, 배기가스로 오염된 대기를 정화하는 기능을 한다. 벼는 논에서 자라는 동안 광합성 작용을 하여 이산화탄소를 흡입하고 산소를 내놓는다. 이렇게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 벼가 발생시키는 산소의 양은 연간 약 1058만 톤이라고 한다.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이외에도 생태계를 보존하는 기능, 녹지공간으로 환경을 보존하는 기능과 도시민들의 심신을 어루만져 주는 기능까지 추가한다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혜택을 인간에게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책 속에서

논의 역할이 어마어마하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더 이상 논을 택지로 전환하지 않고 잘만 활용하면 식량자급률도 높일 수 있고, 부족한 물을 보충한다고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한눈에 봐도 수지가 맞는 장사(?)다.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또한 지금이라도 논의 택지전환을 멈추고 제대로 활용하면 전 세계 여러 나라들마다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는 환경문제를 그 어떤 나라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 때문인지 언제든 파헤쳐질지 모를 우리의 논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논-밥 한 그릇의 시원>은 이처럼 우리 삶에서 가장 우선인 밥과, 밥의 시작인 논을 새삼스레, 그리고 진지하게 바라보고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그간 발전(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헤아릴 수 없이 버린 논과 땅들을 부끄럽게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오랜동안 '농민신문사-전원생활' 기자로 있는 저자는 벼농사의 시작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논 유적지 및 논의 역사, 논의 사계절, 각종 농기구들, 논의 종류와 조성과정, 논에서 자라는 작물들, 한 톨의 볍씨가 싹을 틔워 모내기와 김매기 및 추수 등을 거쳐 우리 밥상에 놓이기까지 등 논을 둘러싼, 논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 풍성한 사진들과 함께 들려준다.

고추와 된장, 막걸리 한사발이 곁들여진 새참, 모심기하는 농부의 손, 다랑이 논, 나락을 말리고 있는 할머니, 수많은 논의 풍경들 등, 책에는 논에 관련된 사진들이 풍성하다. 사진 설명은 농부소설가 최용탁씨가 별도로 썼는데 사진과 그 설명만으로 논에 관한 사진집이랄 수 있을 만큼 인상 깊은 사진도 많고 설명들도 가슴 시리다.

수제비나 부침개, 개떡이 되어 허기를 달래주던 밀가루가 지금은 갖가지 음식으로 입맛을 당긴다. 수많은 종류의 빵과 피자, 면류와 과자 등 밀가루의 수요는 점점 늘어가는데 우리 땅에선 이제 나지 않는다(책속 설명)
 수제비나 부침개, 개떡이 되어 허기를 달래주던 밀가루가 지금은 갖가지 음식으로 입맛을 당긴다. 수많은 종류의 빵과 피자, 면류와 과자 등 밀가루의 수요는 점점 늘어가는데 우리 땅에선 이제 나지 않는다(책속 설명)
ⓒ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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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옛날부터 재배해온 토종 밀은 앉은뱅이 밀이라고 불리는 종자다. 키가 작아서 '앉은뱅이' 밀인데,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에 잘 견뎠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이 토종밀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서 종자가 개량되어 다시 우리 땅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 종자>를 쓴 안완식 박사에 의하면 앉은뱅이 밀은 세계 녹색혁명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앉은뱅이 밀이 일본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밀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녹색 혁명을 가능케 했던 밀의 유전자가 우리 토종 밀에서 나왔다니 놀랍지 않은가. - 책 속에서

이처럼 우리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중요한 내용들을 제법 많이 다루고  있는 책이다. 현재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밀의 유전자가 우리 토종 밀에서 나왔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편 자랑스럽고 한편 안타깝다.

사실 앞에서 다소 딱딱한 내용으로 책 소개를 했기에 혹자들은 이 책을 지극히 딱딱한 책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썩 부드럽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쟁기질을 할 소를 길들이는 방법, 보릿고개를 해결해준 1970년대의 통일벼 이야기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놓지 못하고 밤을 홀딱 새우며 읽을 만큼.

쌀과 밥을 우습게 알던 나, 책을 읽으며 반성, 또 반성하다

열무김치에 고추장으로 비빈 보리밥 한 그릇으로는 너무도 긴 여름날, 잠자리에 들면 허기가 지고, 그러면 햅쌀로 송편을 빚는 추석을 그리곤 했다. 긴긴 해는 겨우 백중 무렵인데(책속 사진 설명)
 열무김치에 고추장으로 비빈 보리밥 한 그릇으로는 너무도 긴 여름날, 잠자리에 들면 허기가 지고, 그러면 햅쌀로 송편을 빚는 추석을 그리곤 했다. 긴긴 해는 겨우 백중 무렵인데(책속 사진 설명)
ⓒ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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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주위를 배회하던 몇 년 동안 농부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진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게 쌓인 몇 년은 수 천 년에 걸친 논과 농부의 이야기 가운데 아주 일부분만을 담았을 뿐이다. 그나마 이 책에 실린 건 그 가운데서도 또 일부다. 많은 사진이 기록물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사장될 것 같아 아쉽지만, 이 책에 실린 것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다. - 책 '맺음말' 중에서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참 부끄럽게도 쌀과 밥을 우습게 알았다. 쌀 몇 톨 우습게 흘려보내고 남은 밥도 맛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버렸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쌀을 씻다가 한 톨만 물에 쓸려나가도 죄를 짓는 일이라며 줍곤 했는데 말이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많이 부끄러웠다. 농사꾼의 딸인지라 봄이 깨어나기 전부터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늦가을까지 어떻게 농사를 지었는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내가 그동안 쌀을 소홀히 대했음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지난 세월, 여름 장마와 늦여름 태풍에 밤잠을 설치곤 하던 농사꾼인 내 부모님의 한숨이 자꾸 떠오르기도 했다.

어제와 오늘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밥 한 그릇 덕분이다. 오늘 그리고 내일,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도 밥 한 그릇 때문이다. <논-밥 한 그릇의 시원>은 이처럼 우리들 삶을 가능하게 하는 힘과 이유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내 앞의 밥 한그릇을 소중하게 여기게 하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논-밥한 그릇의 시원>|최수연 (지은이)|마고북스|2008-10-01|15000원



논 - 밥 한 그릇의 시원 - 2009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최수연 지음, 마고북스(2008)


태그:#밥, #논, #쌀, #식량,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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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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