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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부터 잠을 자고 있는 볍씨를 이제는 깨워야 한다. 성미 급한 개나리는 진작 눈을 떠서 벌써 꽃이 한창인데, 볍씨는 아직도 자루 안에서 쿨쿨 잔다. 억지로 깨웠다간 잠투정에 시달릴 수도 있으니 아이를 깨우듯 창문을 열어 아침햇살을 방안으로 들이며 부드럽게 다독여야 한다.

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씨앗들은 봄이 왔다고 해서 무턱대고 눈을 뜨지는 않는다. 자기들이 자랄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 되었을 때, 비로소 조심스레 눈을 뜨며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가끔 성급한 종자는 따뜻한 날이 며칠 이어지자 슬그머니 눈을 떴다가 이어서 들이닥친 추위에 그만 얼어죽기도 한다.

어쩌다가 한겨울 중에 꽃을 피운 개나리를 볼 경우가 있다.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았는데 이르게 꽃망울을 터뜨린 꽃을 보노라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개나리만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여러가지 환경적 원인 탓에 몸안의 호르몬의 이상으로 인한 현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환경호르몬으로 인해 벌이 벌통을 떠나고, 어미새가 새끼를 돌보지 않는 증상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식물 종자는 일정기간 휴면기간을 갖는다. 성숙이 덜 되어서가 아니다. 안정적인 번식을 위해 물리적, 시간적으로 다양한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종자마다 적당한 조건이 마련될 때 비로소 눈을 떠서 새로운 세대를 이어가는데, 종자가 눈을 뜨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온도, 습도, 빛의 조건이 맞아야 한다.

4월 9일,
나는 잠자는 볍씨를 깨우기 시작했다. 깨웠다가 아니라 깨우기 시작했다고? 그렇다. 아직 단잠 중인 볍씨를 억지로 흔들어 화들짝 깨우는 것이 아니라 부스스 일어날 수 있도록 며칠동안 온도와 습도를 조절했다.

볍씨는 적산온도 100℃에서 잠이 깬다. 즉, 물의 온도가 20℃인 경우에는 5일간 볍씨를 물에 담가야 한다. 4월 9일 20℃의 물에 볍씨를 담가 5일 후인 4월 14일에 건져냈다. 볍씨는 눈을 뜨기 전에 대사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호흡이 가빠진다. 그러므로 매일 새물을 갈아주어서 산소를 공급해주어야 한다.

종자잠그기(침종)
 종자잠그기(침종)
ⓒ 박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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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종자의 싹틔우기
 볍씨종자의 싹틔우기
ⓒ 박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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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한 물속에 있으면서 볍씨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눈을 뜨고 껍질 밖으로 나가도 될 것 같다고. 사실 자연환경 상태에서는 볍씨가 눈을 뜨기엔 아직 이르다. 4월에 찾아오는 늦서리(만상)는 어린 싹에게 혹독한 시련일 수 있다. 하지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이 볍씨를 꼬드겨서 일찍 눈을 뜨게 할 때는 그에 대한 대책도 마련한다.

눈 뜬 볍씨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큐베이터(온실) 안에서 어린 시절을 안전하게 보낸다. 어린모가 외부환경을 견딜 만큼 충분히 자란 후에 모내기를 하여 온실 밖의 세상에 심겨지게 된다.

4월 14일, 침종(물담그기)한 볍씨를 물에서 꺼내니 몇몇의 볍씨는 왕겨를 비집고 하얀 눈을 삐죽 내밀고 있다. 아직은 눈뜨기를 망설이는 볍씨들을 마저 깨우기 위해 볍씨자루를 쌓고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거적을 씌워 32℃의 온도로 이틀을 두었다.

이제 볍씨는 눈을 안 뜨고는 배길 수 없어서 너도나도 하얀 눈을 드러내며 눈을 떴다.

침종 후 싹튼 볍씨
 침종 후 싹튼 볍씨
ⓒ 박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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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 후 싹튼 볍씨
 최아 후 싹튼 볍씨
ⓒ 박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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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를 깨우기 전에 우선 할 일이 있다. 건강한 벼로 자랄 수 있도록 소독을 하는 것이다.
갓난아기도 여러가지 질병을 방지하기 위해 예방주사를 맞듯이 볍씨는 키다리병 등을 방지하기 위해 종자소독을 한다. 키다리병에 걸린 벼는 키가 큰 증상을 보이는데, 결국 여물지도 못하고 죽는다. 

키다리병
병원균의 학명은 Gibberella fujikuroi이며, 대형과 소형 분생포자를 형성하며 후막포자도 형성한다. 벼꽃이 필 때에 감염된 종자를 파종하면 못자리에서 발병이 시작된다. 심하게 감염된 종자는 발아하면서 말라 죽고, 중간 정도로 감염된 종자는 전형적인 키다리 증상을 나타낸다. 약하게 감염된 것은 본 논에 심겨지더라도 가지치기가 다소 적고 생육은 어느 정도 된다. 그러나 생육도중에 발병환경이 좋아지면 도관 내에 수없이 많이 형성된 포자가 밖으로 자라나 줄기 표면에 흰 가루 모양의 포자가 형성된다. 이런 포자들은 이삭이 나올 때에 다시 건전한 벼 포기를 감염시켜 종자감염이 된다.

 
자가채종한 일반종자의 경우 키다리병을 방지하기 위해 살충제를 적정 비율로 혼합한 물에 종자를 담가서 30℃의 물에 48시간 담가두어야 한다.

정부보급종자의 경우에는 살균제가 종자의 표면에 묻어있기 때문에 살충제만 추가하여 일반종자와 같이 처리를 하면 된다.

종자를 소독할 때는 망사자루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약액이 종자 곳곳에 잘 침투할 수 있다. 충분한 시간을 두지만 또 너무 오래 소독하면 약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 예전에는 24시간 소독을 실시했으나 키다리병이 계속 문제가 되어 48시간을 권장하고 있다.

4월 7일,나는 볍씨종자를 소독했다. 물 20L에 살균제인 스포탁 10ml와 아리스위퍼 10ml, 살충제인 스미치온 20ml를 넣고 희석한 후 종자를 담갔다. 그리고 인큐베이터 온도를 30℃로 맞춘 후 이틀동안 두었다. 소독을 마친 종자를 꺼내 맑은 물로 행군 뒤 침종(종자담그기)작업을 하였다.

요즘 농가에서는 볍씨발아기가 있어 많은 양의 종자를 편리하게 소독과 침종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DAUM블러그 <시골뜨기의 잠꼬대>에도 기재되었습니다.



태그:#이천쌀, #종자소독, #볍씨소독, #벼, #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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