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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연일 의원총회를 열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을 마구잡이로 의원총회에 등장시키고 있다.

 

의원 각자에게 주어진 5분이라는 시간 안에 설득력이 높은 발언을 내놔야 하는 처지에선, 예상 외의 큰 성과를 올리고 있는 동계올림픽 한국 대표 선수들의 활약상을 자신의 논거에 대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스포츠 분야의 성과와 행정중심복합도시 수정 논의라는 국가적인 명제를 꿰맞추다 보니, 억지 논리가 등장하기 일쑤다.

 

"행복도시는 이승훈의 쇼트트랙, 세종시 수정은 빙속 1만 미터"

 

25일 오전에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회 국토해양위원장이기도 한 이병석 의원은 "호미로 땅을 파다가 돌이 계속 나오는데 호미를 고집하는 건 원칙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라면서 세종시 수정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발언 말미에 "(세종시를) 행정중심복합도시로 하는 것이 이승훈의 쇼트트랙과 같다면, 세종시 수정안 추진은 금메달을 딴 빙속 1만 미터 경기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의 길이 좌절돼 스피드스케이팅이라는 다른 길을 찾아 금메달을 딴 이승훈 선수처럼, 행정중심복합도시도 빨리 그 내용을 바꿔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

 

본질이 다른 사안을 억지로 꿰맞췄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승훈 선수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의원의 비유와는 다른 결론이 나온다.

 

각종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승훈 선수는 쇼트트랙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열심히 훈련했고 쇼트트랙에서 키운 코너링과 심폐능력 등이 뒷받침돼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세종시에 이를 대입하면, 행정부처 이전에 최선을 다해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먼저 해봐야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도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한 이날 의원총회에서 이애주 의원은 "오노에게 은메달을 넘겨준 것을 보라"며 "우리끼리 싸워서 남에게 좋은 일을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쇼트트랙 남자 1500미터 결승에서 한국 선수 3명이 1~3위로 마지막 코너를 돌다 이호석·성시백 선수가 부딪혀 넘어진 일을, 한나라당 의원들이 세종시 문제로 격한 감정싸움을 벌이는 상황에 빗댄 말이다.

 

아폴로 안톤 오노 선수가 어부지리로 은메달을 획득한 것은 맞다고 볼 수 있지만, 당시 한국 선수들끼리 다툼이 있었는지는 명확치가 않다. 또 두 선수 간 다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선수들 간의 경쟁은 경쟁 그 자체로 봐야지, 은·동메달을 따내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같은 한국 대표팀 소속이지만 경기장 내에서는 라이벌일 수밖에 없고, 경기 중에는 선의의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도외시한 채 두 선수가 은·동메달을 놓친 것을 '다툼'으로 치부해버린 것은 한 나라의 국회의원으로서 경솔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쇼트트랙 금메달 소식에 박수... 실격 처리되자 "박수 철회, 원안 수정"?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올림픽의 '영웅'들이 자주 등장하다보니 이런 웃지 못할 상황도 생겼다.

 

25일 오전 시작된 의원총회 말미에 여자 쇼트트랙 계주 금메달 소식이 전해졌고, 안상수 원내대표는 박수로 축하할 것을 제안하면서 "운동 선수들은 이렇게 열심히 국위를 선양하는데 정치권은 여전히 경제와 선진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모두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곧이어 여자 계주팀의 실격 상황이 알려졌다. 조전혁 의원은 "박수 보낸 것 철회해야겠다. 실격됐다고 한다"고 알리면서 "(세종시) 원안도 수정해야겠다"고 말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선수들이 열심히 싸운 그 자체에 대해서 보낸 박수다(그러니 철회할 필요가 없다)"라고 노련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조 의원의 '박수 철회' 발언은 물론 농담이다. 조 의원은 이날 하루 전까지 살벌하게 진행된 의원총회 분위기를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고자 이런저런 농담으로 참석자들을 웃겨준 바 있다. 이 농담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실격'과 '세종시 수정'을 연결시킨 발언은 농담이라고 하더라도 무리가 있다. '실격'과 '박수 철회'를 '세종시 원안 수정'으로 연결한다면, 반대로 '금메달'은 '세종시 원안'과 연결된다. 

 

한 가지 가정을 해본다. 만약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모든 금메달은 선수와 코치진 사이의 신뢰와 믿음이 바탕이 돼야 가능하다. 세종시 문제도 국민과 국가 지도자 간의 신뢰와 믿음이라는 문제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반박할 수 있겠는가.

 

제발, 스포츠를 스포츠 자체로 보자. 고생한 선수들이 기분 상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태그:#올림픽, #의원총회, #아전인수, #갖다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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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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