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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에 있는 달터마을 집들. 눈이 새하얗게 온 산을 뒤덮었다.
▲ 달터마을 산 중턱에 있는 달터마을 집들. 눈이 새하얗게 온 산을 뒤덮었다.
ⓒ 권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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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터근린공원은 여러분의 보건, 휴양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조성된 공원입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달터공원 이용 안내문이다. 달터공원은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뒤편에 도로를 따라 이어진 산림공원이다. 어떤 이들에게 이곳은 '보건, 휴양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공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삶터다.

이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개포동 주공아파트 재건축 추진으로  달터마을은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누구도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곳은 개발 논리에 사로잡혀 생존권은 개의치 않는 한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현장이다. 지난 11일 달터마을 주민들을 만났다.

강남구에 살지만 강남구민이 아닌 사람들

한국에서 가장 비싸다는 타워팰리스 아래로 주소조차 없는 집들이 모여 있는 달터마을에 눈이 쌓였다.
▲ 타워팰리스 한국에서 가장 비싸다는 타워팰리스 아래로 주소조차 없는 집들이 모여 있는 달터마을에 눈이 쌓였다.
ⓒ 권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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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0년 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었어요. 공무원들도 당시엔 우리가 이곳에 살도록 묵인하고 방치했죠. 그런데 시대가 변하다 보니까 옆에 타워팰리스도 생기고 지하철 구룡역도 생긴 거예요.

이렇게 되니까 개포동 주민들은 우리가 애초에 여기서 살았던 게 잘못인 것처럼, 우리가 없이 사는 게 잘못인 것처럼 우리를 바라봐요."

달터마을 주민 최윤숙(가명, 56)씨의 말이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눈에 선한지 그의 눈은 물기로 가득했다. 달터마을은 1986년 인근에 개포고등학교가 지어지면서 그곳에 있던 250여 가구가 개포동 산 156번지로 이주해 조성된 마을이다.

하지만 달터마을은 그 실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에는 주소가 없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2001년 주소를 얻기 위해 소송을 냈지만, 무허가 건축물로 이뤄진 이 마을이 공원부지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20년이 넘게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주소 없는 설움'을 겪어온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이웃의 시선'이다. 높이 치솟은 타워팰리스가 달터마을 집들의 합판지붕을 내려다보듯, 달터마을을 향한 개포동 등 인근 주민들의 시선은 달갑지 않다.

최씨는 "아이들이 사춘기 시절 겪었던 상처가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아이 학교 친구 부모들이 우리가 달터마을 산다는 걸 알면 '그 아이랑 놀지 마라', '그 집에 가지 마라'고 했대요. 아이들이 얼마나 감당하기 힘들었을까요.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눈을 조금만 돌리면 우리랑 너무 다른 사람들이 많다고요. 아이가 어린 맘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개포동 재건축으로 '뜨거운 감자'가 된 달터마을

달터마을이 강남구 금싸라기 땅에 자리한 만큼 재건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달터마을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유진숙(가명)씨는 최근 개포동 주공아파트 재건축으로 달터마을이 주목받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타워팰리스가 처음 들어올 때도 우리 동네가 재개발될 거라는 말이 많았어요. 그 사람들 집이 워낙 높으니까 위에서 보면 우리 마을이 다 내려다보이거든요. 그 사람들 눈에 우리가 지저분하고 미관상 안 좋다면서…."

달터마을이 철거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지난달 강남구청이 서울시에 제출한 개포주공아파트 재건축을 포함하는 '개포지구 지구단위계획안'과 관련, 서울시가 무허가 판자촌을 정비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달터마을 철거를 두고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개포동 주민들은 달터마을 철거를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

이에 달터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을 '주민'이 아닌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여기는 상황에 대해 울분을 터뜨렸다. 최씨는 "사람들은 우리를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며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우리를 서로 떠넘기면서 개포동을 재개발하는 데에 우리가 '걸림돌'이 되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씨는 "평생 갚아도 못 갚는 비싼 임대아파트를 우리에게 빌려주는 것도 싫다, 다 늙어서 빚 갚으면서, 또 자식한테 빚 물려주면서 살라는 말 아닌가"라며 "그냥 우리한테 적당하게 우리가 살아왔던 것처럼 계속 살 수 있는 공간만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달터마을은 1986년부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마을이다.
▲ 달터마을 달터마을은 1986년부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마을이다.
ⓒ 권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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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도 감시받는 달터마을 주민들 "우리에게도 인권은 있다"

설을 맞는 달터마을 주민들은 마음이 편치 못하다. 누군가가 항상 주민들을 지켜보고 있는 탓에 자녀들이 와도 맘이 편치 못하다. 달터마을 한쪽 편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강남구청 공원녹지과에서 2002년부터 고용한 용역회사 직원들이 지내고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주민들이 집을 보수하거나 새로 짓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강남구청 관계자는 "무허가 불법 건축물이 더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씨는 "빈민촌에 산다고 사람들을 마음대로 감시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가난해도 우리에게도 인권은 있다"고 말했다. 설을 맞은 달터마을 사람들은 책임지는 곳은 없지만 감시는 받아야 하는 '강남구민 아닌 강남구민'으로 그들만의 삶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권지은 기자는 <오마이뉴스> 11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재개발, #달터마을, #강남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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