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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이 설에 어디를 가요? 집에 있어야지. 언제 용역업체 직원이 포클레인으로 집을 부숴버릴지 모르는데…."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 시장. 그곳에서 만난 김완숙(54)씨의 양손은 텅 비어 있었다. 아현 재개발(뉴타운) 3구역 세입자인 김씨에게 명절은 한이 서리는 날이 됐다. 김씨는 "장을 보고 친척들과 설음식을 나눠먹던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전했다.

 

같은 시각, 김씨의 남편 전종택(56)씨는 물이 새는 집 천장을 수리하고 있었다. 작은 방에서는 그의 작은 아들이 새벽까지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탓에 지쳐 자고 있었다. 이날 오후 기자와 마주 앉은 김씨는 "집에 김치와 쌀밖에 없어 누가 와도 음료수 한 잔 내놓을 게 없다"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용산 참사' 1년이 지났지만, 세입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한때 재개발 문제로 한국 사회가 떠들썩했지만, 바뀐 것은 거의 없다.

 

세입자 김씨 "용역업체 직원이 목 조르고 불태우는 꿈꿔"

 

 

김씨 가족에게 눈 내리는 날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눈이 많았던 이번 겨울은 그래서 더욱 팍팍했다. 밖으로 나서는 것부터가 고생이다. 이날도 싸락눈이 내려 집 앞 골목길이 질퍽해진 탓에, 집에서 시장까지 15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이 30분이나 걸렸다.

 

무엇보다 수도관이 터지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지난해 수도도 끊겨 200만 원을 들여 수도관을 다시 연결했지만, 용역업체 직원들이 틈만 나면 수도관을 망가뜨린다. 김씨 가족에게 수도관을 수리하는 일은 일상이다. 김씨는 "10일 전에는 용역업체 직원들이 수도관을 터뜨려 집 계단과 마당이 모두 얼음으로 꽁꽁 얼었다"며 "올해만 수도관이 6번 터져 고치고 또 고쳤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한 집 천장에서 물이 자주 새는 탓에 집 벽면 사방의 벽지가 누렇게 변했다. 전씨는 "오늘같이 눈 오는 날에 어김없이 물이 새기 때문에 수리를 해야 한다"면서 "'물지옥'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눈 내리는 날도 힘들지만, 명절은 김씨 가족을 더욱 힘들게 한다. 지난 2008년 돌아가신 전씨의 어머니 이옥주씨 때문이다. 그해 5월 용역업체 직원과 실랑이하다가 다친 이씨는 그 후 폭력에 대한 공포로 괴로워하다, 같은 해 8월 눈을 감았다. 전씨는 "어머니만 생각하면 가슴에 한이 맺힌다"면서 "너무 그립고 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리우면서도 폭력의 공포 때문에 사지가 떨린다"고 말했다. 김씨 가족은 최근에도 이어지는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력에 대한 불안감으로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에는 철거하청업체 직원이 김씨 집 주변에 펜스를 쳐놓고, 출입문마저 막아 길을 폐쇄하기도 했다. 그 탓에 펜스를 넘어서려다 김씨는 다리를 다쳤고 이러한 사연이 라디오에 방송된 후에야 지난달 6일 펜스가 철거됐다.

 

김씨는 "어젯밤 용역업체 직원이 우리 집으로 올라와 내 목을 조르는 꿈을 꿨다"며 "최근에는 밤에 불이 나서 가족들이 다 타 죽는 꿈도 꿨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작년 아랫집에 불이 나서 냉장고가 엿가락처럼 휘어진 광경을 본 이후로 증세가 심해졌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난달 26일부터 정신보건센터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최소한 6개월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게 담당 의사의 소견이다.

 

보상금 천만 원으로 어디로? "악몽 같은 4년, 사과 받아야"

 

재개발이 시작된 2006년 이전까지만 해도 김씨는 이런 삶을 상상조차 못했다. 김씨 부부가 아현동에 터를 잡은 것은 지난 1979년. 이후 김씨는 1985년에 미용실을 열었다. 2004년 큰아들의 대학 등록금 때문에 36㎡ 규모의 집을 팔고 보증금 500만 원, 월세 50만 원인 셋방으로 옮겼지만, 생계를 그럭저럭 꾸려나갈 수 있었다. 전씨의 월급과 미용실에서 벌어들이는 돈을 합쳐 월 300만 원의 수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재개발이 시작된 2006년 당시 재개발 조합에서 거주이전비와 휴업보상금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하지도 않아, 많은 이들이 보상금도 못 받고 떠났다"며 "지인에게서 거주이전비를 받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조합 쪽에 거주이전비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조합에서 제시한 금액은 1300만 원. 하지만 김씨는 이주할 수 없었다. 미용실에 들어간 인테리어 비용만 1000만 원이었고, 인근 지역에서 허름한 미용실이라도 하나 얻으려면 3000만 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 김씨의 시어미니가 죽고, 전씨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면서 생계는 더욱 어려워졌다.

 

현재 조합 쪽은 "2008년 김씨 가족에게 영업손실보상금과 세입자 주거 이전비 등을 거의 지급했다"며 "그런데도 김씨 가족이 건물을 내주지 않고 버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받은 돈은 1000만 원으로, 어머니 병원비와 장례식 비용이었다"며 "조합 쪽은 임대주택은커녕 보상도 제대로 안 하고 명예훼손으로 나를 고소했다, 너무 억울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우리 가족의 인권을 파괴하고 삶을 망가뜨린 지난 4년간의 세월에 대해 기필코 사과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김씨 가족이 살고 있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 633번지 일대(108만8000㎡)는 아현 뉴타운 3구역으로 지정돼 향후 복합생활문화공간이 조성된다. 이곳에는 모두 6000여 가구가 살았으나 현재는 김씨 가족을 포함해 모두 두 가구만 남았다. 이 두 가구만 철거되면 본격적인 재개발이 이뤄질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엄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11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아현동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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