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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국내 11개 진보싱크탱크들과 공동으로 '지방선거 10대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삽보다 사람'이라는 주제가 붙은 이번 기획을 통해 거대 담론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지난해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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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싶다. 대한민국은 '재개발 공화국'이라고 불러도 될까? 그동안 재개발이란 명목하에 벌어진 수많은 비리, 법이 무시된 채 이뤄진 강제퇴거와 철거를 떠올린다면 '대한민국=재개발 공화국'이란 말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특히 지난해 용산참사를 겪으면서 정부와 서울시에서는 주거환경 개선을 목표로 공공 주도의 재개발 사업을 공언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재개발 지역에서 들려오는 신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무조건 한꺼번에 뒤집는 대한민국식 재개발을 그대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프랑스 파리에서 우리와 다름을 찾다

독일에서는 공사 중에도 도시의 외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독일에서는 공사 중에도 도시의 외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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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난 2000년부터 유럽, 주로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해왔다. 이곳에 살면서 여행 온 우리나라 사람들을 종종 만났는데, 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내게 "우와, 좋았겠다", "부럽네요"라는 말을 하곤 했다.

해외여행이 훨씬 쉬워지고, 지구촌이란 말처럼 세계가 좁아졌음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유럽은 머나먼 꿈의 나라인가.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그들은 "이제 현실의 세계로 다시 들어서야 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그런 반응이 나오는 까닭에 대해 프랑스인들이 파리를 묘사하는 말 속에서 답을 찾아본다.

파리의 그랑 팔래 뮤지엄. 외관을 남겨둔 채 내관 공사 중이다.
 파리의 그랑 팔래 뮤지엄. 외관을 남겨둔 채 내관 공사 중이다.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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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을 남긴 채 내관을 모두 허문 파리의 그랑 팔래 뮤지엄.
 외관을 남긴 채 내관을 모두 허문 파리의 그랑 팔래 뮤지엄.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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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을 남긴 채 내관을 모두 허문 파리의그랑 팔래 뮤지엄.
 외관을 남긴 채 내관을 모두 허문 파리의그랑 팔래 뮤지엄.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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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변화하지만 같은 모습을 잃지 않는 매력적인 도시', '많은 추억과 이야기들이 도시의 곳곳에 숨어 있고,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귀향하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고 즐거운 곳'. 내가 겪은 파리 역시 늘 또 다른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자신이 사는 도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새로 지어진 멋들어진 카페를 찾는 것일까. 더욱 커진 럭셔리 슈퍼마켓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대형 쇼핑몰, 24시간 편의점, 시설 좋은 영화관 등 다른 지역에 있는 것보다 '새로운' 것들이 계속 생겨야 도시를 찾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일까? 내 답은 "아니다". 그런 껍데기의 것들이 아니다.

자신의 도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꽃피고, 매일매일 추억을 만들며, 삶에 대한 새로운 컨셉트가 탄생하고, 새로운 문화사조와 새로운 문명이 사려 깊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즐겁다. 시간의 흐름으로 만들어진 '역사'와 '전통'이 주는 시공간의 변화가 주는 새로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도시들이 아름다운 까닭은 매우 오랫동안 그들의 스토리들이 도시의 곳곳 건물들에, 상점에, 거리에 서려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만나 문화의 흐름을 함께 점치며 의견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도시의 곳곳에서 역사와 만나고 오랜 시간의 때가 묻은 곳에 나의 흔적을 더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속한 도시의 삶에서 멋진 느낌을 들게 한다.

이 작은 호텔이 여왕 마고가 밀애를 즐긴 장소라고?

호텔 로텔의 현관. 작지만 명품 호텔이다.
 호텔 로텔의 현관. 작지만 명품 호텔이다.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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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프랑스인들이 '도시'를 바라보는 인식은 우리와 다르다. 그 예로 파리의 작은 호텔 로텔(Lhotel)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로텔, 이곳은 여왕 마고가 밀애를 즐긴 장소이자 오스카 와일드가 두 달치 방값을 채 지불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방을 간직하고 있다. 또 개척자 마르코 폴로가 바다 저편에서 가져온 작은 물건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감탄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여왕 마고의 밀애장소.
 여왕 마고의 밀애장소.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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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가 방값을 치르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 로텔 호텔 방.
 오스카 와일드가 방값을 치르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 로텔 호텔 방.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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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이 없어서 '한꺼번에 뒤집는' 개발을 통해 더 높고, 더 큰 건물을 쌓아 올리는 것일까. 재개발을 추진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그곳의 역사를 살펴보자. 우리에게도 '반만년'이라 외치는 역사가 있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도 있다. 때로는 가슴 아픈 전쟁의 흔적들도 있다. 좋은 기억이건 나쁜 기억이건 간에 우리는 모두 그런 격정적인 이야기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로 인해 더 좋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못한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더욱 더 강조되는 '친환경', '녹색성장'이라는 단어가 낯설지만은 않다. 하지만 '친환경' 개발을 위해 우리가 제시하는 방법이 과연 지혜로운 것인가.

무조건 '새 것'이면 좋은 줄로만 아는 우리네 인식. 특히 대한민국을 재개발 공화국으로 이끄는 공무원들을 보면 답답하다. 파리에 있으면서 출장 온 한국의 공무원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들은 서양의 역사가 서려 있는 건물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돌아간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는 진정한 이상향은 과연 무엇일까. 그런 이상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비싼 혈세로 출장 와서 벤치마킹을 한다고는 하지만 훌륭한 관념은 모두 젖혀두고 번쩍거리는 껍데기들만 들고 돌아가는 느낌이다.

지어놓고, 바꿔놓고, 부수고, 다시 바꾸고~

마르코 폴로가 묶었던 방.
 마르코 폴로가 묶었던 방.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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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늘 다람쥐의 쳇바퀴를 연상시킨다. 무조건 지어놓고, 바꿔놓고 다시 부수고 다시 바꾸고….

명품을 좋아하는 우리의 삶은 진정한 명품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명품은 100년이 지나도 아름다운 것, 100년의 수많은 변화의 물결이 소용돌이를 치고 지나간다 해도 견고하게 모습의 필요성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도록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자세에서만 탄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자세로 미래를 바라보는가 묻고 싶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자면 가슴 깊이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가짜 도시, 가짜 인생, 가짜 발전….

물론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과 전쟁의 아픔으로 많은 혼란을 겪었었고, 그 와중에 무조건 살고 보자는 식의 움직임으로 지금까지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룩해 왔다. 그러나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있다면 그런 움직임은 이제는 끝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산에서 내려다보면 멋진 기와지붕의 세련된 선들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일까. 내가 아는 외국인들은 서울이 참으로 못생긴 도시라고 이야기한다. 전통이라는 것은 모두 사라지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전통이라 여겨지는 것들은 온통 예전의 행해지던 무모한 인습일 때가 비일비재하다.

화력발전소를 수리하여 새롭게 탄생한 런던의 테이트모던.
 화력발전소를 수리하여 새롭게 탄생한 런던의 테이트모던.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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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이 밀레니엄 프로젝트로 내건 도시 계획은 런던의 모습을 문화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자는 것이었다. 템즈 강변의 화력 발전소를 없앨지에 대해 대대적인 국민 투표가 있었고, 대세는 사람들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던 화력발전소의 모습이 사라진 템즈 강변을 상상하기 힘들 것이라는 쪽으로 흘렀다.

결국 재능 있는 젊은 건축가들에 의해 화력발전소는 뼈대를 간직한 채 내부가 멋지게 탈바꿈했다. 반 이상의 예산을 아낄 수 있었으며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화력발전소에서 탄생되었다는 스토리를 통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프랑스의 현대미술의 지존 그랑 팔래 역시 구스타프 에펠이 에펠 타워와 같은 재질의 금속으로 지은 뼈대를 남기고 내부를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예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며 내부의 모든 층을 허물기만 함으로써 미술관의 바닥은 거친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그것이 요즘 디자인의 트렌드를 불러 일으켰다. 요즘 파리와 뉴욕 등 대부분의 카페들은 다듬지 않은 거친 느낌과 세련된 현대적인 느낌을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하여 새로운 유행들을 향하고 있다.

이제는 기업인과 정치인, 공무원들, 문화인들, 그리고 시민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함께 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상상력 부족한 리더들에 의해 도시가 더 이상은 망쳐지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내 걸며 어줍잖게 무언가를 다시 지으려는 시도보다는 차라리 도시 전체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더 심어보는 것은 어떨까? 가슴 아픈 역사의 기억이라고 무조건 때려 부수기보다는 그들을 간직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갈 때마다 가슴 저편에서 한 번씩 되새기며 반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더 이상 우리 문화 역사가 0세기에서 시작하지 않기를

로텔 호텔의 방.
 로텔 호텔의 방.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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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의 존재가 재개발되고 사라질 때마다 우리의 문화 역사는 다시 0세기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돈은 돈대로 들고 시간은 시간대로 들며 우리가 그동안 간직해온 추억들은 모두 사라진다. 세대가 바뀌고 시대의 흐름과 인식의 가치가 바뀌므로 변화란 늘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한 권의 두꺼운 일기장을 하루하루 채우는 것이 아닌 매일 새로 공책을 사서 일기의 첫 장만을 채우고 버리는 식이다.

막대한 예산으로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말은 어쩌면 진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 의미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없는 속에서 화려하게 탈바꿈하는 것, 많이 들이지 않고 멋있게 보이는 것, 변화를 이루지만 이야기와 추억을 해치지 않는 것,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총명하고 지혜로운 아이디어에서만 탄생할 수 있기에 더욱 값진 것이다.

어떤 이야기든 그렇다. 가난한 공부벌레가 멋진 성공을 거두는 이야기, 초라했지만 강한 신념으로 삶을 살아 아름답게 변화한다는 드라마에 열광하는 우리의 모습만 보더라도 그것은 쉽게 찾을 수 있는 지극히 기본적인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그 본성을 우리 사회가 거스르지 않으며 지혜로운 발전을 이루어 나가길 소망해 본다.

총명한 아이디어로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우리를 감동시킬 그날을 기대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지은경 기자는 지난 2000~2005년 프랑스 파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2003년 프랑스 아르데코 멀티미디어과를 졸업했습니다. 지난 2005~2007년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 홍보팀장으로 활동하며 전시 기획을 했습니다. 최근 경상남도 외도 전시 기획을 마치고 유럽을 여행 중입니다. 미술, 건축, 여행 등 유럽 문화와 관련된 기사를 쓸 계획입니다.



태그:#재개발, #파리, #로텔, #개발, #친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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