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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수첩'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어버이연합,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이용훈 대법원장과 문성관 판사 사퇴를 요구하며 화형식을 하고 있다.
 MBC 'PD수첩'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어버이연합,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이용훈 대법원장과 문성관 판사 사퇴를 요구하며 화형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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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 '판사 사진 화형식' 보수국민연합,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극우·보수성향 시민단체 회원 50여 명은 2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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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하 어버이연합)이 마침내 '큰 사고'를 쳤습니다. 어버이연합 등 일부 보수단체가 21일 'PD수첩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면서 이용훈 대법원장의 출근 차량에 계란을 던졌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어버이연합 등 4대 단체 관계자 50여 명(경찰 추산)은 이날 오전 7시께부터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법원장 공관 주변 도로에 모여 "좌파적인 판결이 나온 데 대한 책임을 져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이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답니다.

이들은 공관 정문을 막고 대법원장의 출근을 막으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오전 8시40분께 현장을 떠났지만 단체 관계자 3명이 인근 육교에서 기다리다가 이 대법원장의 관용차가 지나가자 계란 4개를 '투척'했다고 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리는 확신범들

지난해 4월 6일 오후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앞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도발 규탄 및 UN안보리 대북제재 강력대처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던 도중, 북 미사일 모형 화형식을 제지하는 경찰을 향해 한 회원이 불붙은 각목 피켓을 휘두르고 있다.
 지난해 4월 6일 오후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앞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도발 규탄 및 UN안보리 대북제재 강력대처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던 도중, 북 미사일 모형 화형식을 제지하는 경찰을 향해 한 회원이 불붙은 각목 피켓을 휘두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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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9일 '희망과 대안' 창립총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단상을 점거해 행사를 무산시킨 뒤 '만세'를 외치고 있다.
 지난해 10월 19일 '희망과 대안' 창립총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단상을 점거해 행사를 무산시킨 뒤 '만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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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거침없는 하이킥>의 '야동순재'였다면 아마도 '거사' 전에 6.25 때 북한 인민군 탱크에 수류탄을 투척하는 꿈이나, 윤봉길 의사가 1932년 상하이 훙커우(紅口) 공원에서 도시락과 물통으로 위장한 수류탄을 던지는 꿈을 꾸었을 법도 합니다.

거사 직후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상식에 어긋난 판결이 나온 것을 보고 흥분해서 계란을 던졌다"며 "똑같이 흥분해 국회 폭력을 저지른 강기갑 의원은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우리에게는 죄를 물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확신범' 다운 대담한 언행입니다. 사실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대부분 '확신범'들입니다. 어버이연합은 이미 풍성한 '전과'를 훈장처럼 자랑합니다. 이들은 때와 장소, 그리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지붕 뚫고 하이킥>의 이순재씨처럼 시도 때도 없이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립니다.

수틀리면 이명박(MB) 대통령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들은 지난 2007년 7월  당시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 검증 청문회를 앞두고 부동산 투기와 병역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전 시장을 규탄하는 기습시위로 한바탕 소동을 벌였습니다.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이니 병역비리 의혹에 흥분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지난해 10월 시민운동의 정치 참여를 선언한 '희망과 대안' 창립 행사장에 몰려가 "애국가를 먼저 부르고 행사를 하라"며 소동을 벌여 창립 행사를 무산시킨 것도 이들입니다. 애국가를 부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명분이고 실제로는 '희망과 대안'의 성향에 불만을 품은 이들의 업무방해 행위가 명백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주체할 수 없는 애국심의 발로쯤으로 넘길 수도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방위병과 '어버이연합'...박찬성 목사, 공동회장

삼성특검이 진행중인 지난 2008년 4월 2일 오후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사무실에 앞에서 삼성특검에 반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특검종료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삼성특검이 진행중인 지난 2008년 4월 2일 오후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사무실에 앞에서 삼성특검에 반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특검종료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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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2008년 4월에는 회원 50여 명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피의자 신분 소환조사를 앞두고 서울 한남동 조준웅 삼성특검팀 사무실 앞에서 삼성특검 조기 종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삼성특검 때문에 대한민국 경제가 파탄 나게 생겼다"는 것이 시위의 명분입니다.

오죽 대한민국 경제가 어려우면 어르신들이 재벌의 범법행위를 비호할까 싶습니다. 그래도 IMF 구제금융이라는 환란의 아픔을 겪은 '우국충정'의 발로였을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이들이 나라 살림을 거덜 낸 YS(김영삼 전 대통령) 집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는 얘기는 못들어 봤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정체가 헷갈리고 아리송합니다.

예전에 방위병 제도가 있을 때는 방위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많았습니다. 북한 김정일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방위라는 존재인데, 군인인지 민간인지 실체가 불분명한 데다가 도시락을 싸들고 다녀 자급자족하는 바람에 보급선을 차단할 수 없어서 그렇답니다. 이처럼 어버이연합도 정체가 불분명합니다.

(21일 오후 이들의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찾았습니다만 계란 투척 사건을 욕하려는 방문자가 급증한 탓인지 트래픽 용량이 초과되어 열리질 않네요. 다만, 예전 자료를 검색해보니 "어버이연합은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국민에게 전파하고 사랑을 나눔으로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기치로 2006년 5월8일 출범하였"고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정의실현하는 사업"과 "반핵반김을 위한 평화운동" "회원들의 안보교육" "회원들의 상조사업" 등을 주관하고 있다고 돼 있네요.

그중에 '반핵반김을 위한 평화운동'이 눈에 띕니다. '반핵반김'은 인공기 소각 퍼포먼스로 유명세를 탄 박찬성 목사라는 사람이 주도하는 이슈로 박 목사는 어버이연합 공동회장도 맡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몇해 전 양담배 과소비 추방대회장에서 집회에 동원된 노인들에게 일당을 5000원씩 나눠주다가 MBC 카메라에 적발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버이연합은 박 목사가 어버이의 대표성을 선점해 문어발 식으로 확장한 단체라는 의혹도 있습니다.)

이들이 야당처럼 반대만 일삼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포지티브 전술과 네거티브 전술을 적절히 섞어 쓰는 '배합 전술'도 구사합니다. 지난해 이들이 선보인 '현충원 습격 사건'과 광화문 '오바마 환영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비 제막식이 열린 지난해 10월 6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정문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회원들이 묘지 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묘지를 파헤치고 평양으로 이장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 위해 '좌파 파묘 전문굴삭기'가 적힌 장난감 굴삭기와 '인공기'를 붙인 장난감 덤프트럭(사진 왼쪽)과 흙이 담긴 비닐봉지(사진 오른쪽)를 들고 나왔다.
▲ 'DJ 묘 파헤치기' 퍼포먼스 도구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비 제막식이 열린 지난해 10월 6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정문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회원들이 묘지 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묘지를 파헤치고 평양으로 이장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 위해 '좌파 파묘 전문굴삭기'가 적힌 장난감 굴삭기와 '인공기'를 붙인 장난감 덤프트럭(사진 왼쪽)과 흙이 담긴 비닐봉지(사진 오른쪽)를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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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 추모비 제막식 날, 보수단체 '묘 파내라' 격렬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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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 회원 150명이 지난 9월 서울 흑석동 국립 현충원 앞에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가묘를 설치해 "DJ 묘 파내서 평양으로 이장하라"며 모형 불도저와 포크 레인으로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벌인 것은 보도를 통해 익히 알려진 사건입니다.

보수의 중요한 가치인 예(禮)를 숭상하는 동방예의지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법적으로는 전직 대통령 및 그 가족에 대한 '백색테러'이자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가능성이 엿보입니다만, 이들은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고 검찰이 이들을 기소했다는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버이'들의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아가페'적인 사랑

지난해 1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한 때는 오바마 대통령이 탄 차량이 지나는 서울 광화문 세종로 네거리에 나와서 미국 대통령을 열렬하게 환영했습니다. 이들은 혹시라도 오바마가 자신들의 진정성을 알아보지 못할까 봐 영어로 "Obama Welcome!"을 외치는 것은 기본이고, 아예 "SA-RANG-HAE-YO, MR, OBAMA"를 외치는 '광팬'들도 있었습니다.

보수 가치를 대변하는 공화당 부시 대통령이라면 모르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그 어떤 민주당 대통령보다도 진보적인 가치를 대변하는 정치인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진보 대통령을 향해 "사랑합니다"를 외쳤으니, 그야 말로 국경과 인종, 그리고 이념을 초월한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 "USA! USA! Welcome, Obama! USA!" "USA! USA! Welcome, Obama!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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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단체, 경찰에 불 붙은 각목 휘두르고 얼굴에 주먹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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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일련의 사법부 재판에 대해 이들이 보인 과민한 행태는 불가사의합니다. 강기갑 의원의 국회의사당 '공중 부양'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법관의 집 앞에서 사퇴하라고 시위를 벌이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MBC PD수첩 제작진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에 대해 화형식을 하고 '빨갱이'라고 매도한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하고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는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강기갑 의원의 '공중 부양' 사건은, 본인도 얘기했듯이 떳떳하고 자랑할 만한 행동은 아니지만, 한나라당의 법안 날치기 시도가 원인을 제공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따지고 보면 국회 내에서 벌어진 일을 놓고 맞고소·고발전으로 사법을 정치에 끌어들인 결과가 강기갑 의원 공무집행방해죄 무죄 판결입니다. 그래 놓고 판결이 마음에 안든다고 사법개혁 운운하는 것은 정치의 폭력입니다.

보수가 보수집단에 행패 부리는 아이러니

이들이 어버이연합 앞에 붙인 대한민국의 헌법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든 않든, 애국가를 부르든 않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지 어버이들이 나서서 강요할 사안이 아닙니다.

또 대한민국 헌법은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돼 있습니다. 판결이 마음에 안든다고 판사의 집 앞에 떼로 몰려가 신변에 위협을 가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은 이성과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위험하고 어이없는 행동입니다.

'어버이'들의 이런 '철없는' 언행은 타임머신을 타고 해방 직후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른 채 '빨갱이는 무조건 때려잡자'고 외치던 야만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들게 합니다. 과거 이승만 정권 시절에 '백골단' '땃벌떼' 같은 우익단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내린 판사의 집을 습격하고 법원에 몰려가 시위를 벌인 그때 그 시절을 연상시킵니다.

사법부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또 법원은 군(軍)과 함께 가장 보수적인 집단입니다. 보수를 표방하는 단체의 어버이들이 보수집단에 행패를 부리는 것은 보수가 그토록 싫어하는 아나키즘의 무질서이자 국가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보수의 아이러니입니다.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최고 어른'입니다. 하급심의 판결 하나를 구실삼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의 수장이자 최고 어른인 대법원장을 사퇴하라면서 효(孝)의 정신을 훼손하고 '나이가 벼슬'인 보수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 제대로 된 보수의 길인지 묻고 싶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소환 조사를 앞둔 지난해 4월 30일 오전 서초동 대검찰청앞에서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노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소환 조사를 앞둔 지난해 4월 30일 오전 서초동 대검찰청앞에서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노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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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가 효자여, 큰 효자여"

지난 95년 4월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 대종교 총전교(總典敎)가 단군묘를 보기 위해 정부의 방북 불허방침을 어기고 밀입북한 적이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데 우리 민족 뿌리 찾기에 평생을 바친 안호상 박사는 YS가 가장 존경하는 은사였습니다.

그래서 공안의 칼을 찬 검찰이 대통령의 사부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당시 문익환 목사는 같은 밀입북 혐의로 감옥에 있었습니다. 검찰의 결론은 '고령'을 이유로 한 불구속 기소였습니다.

당시 저는 평양에서 돌아온 안 박사를 전화로 취재했습니다. 방북 소감을 물었을 때 안 박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일성이 효자여, 큰 효자여. 김일성이 큰일을 해놓고 죽었어."

대종교는 단군시조를 숭상하는 민족종교입니다. 따라서 대종교의 절대적 기준은 단군에 대한 경배, 곧 '효'입니다. 그런데 김일성 주석(94년 사망)이 단군묘를 발굴해 근사하게 복원해 '역사의 공간'으로 옮겨 놓았으니 총전교로서는 이보다 더 큰 '대효'(大孝)가 어디 있으랴 싶었던 겁니다.

김일성 주석이 세상을 뜬지 1년여가 지난 뒤였지만, 6.25 전범이자 반국가단체의 수괴에 대해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이 위세를 떨치던 시절입니다. '어버이' 여러분이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이 정도의 일관성은 지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태그:#법원 죽이기, #사법부, #어버이연합, #안호상,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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