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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가 그리울 때가 있다. 도시 한복판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갯내가 코끝을 슬쩍 스치고 지나간다. 짭짤하고 비릿한 그 냄새. 이 도시에선 횟집 아니면 어물전에나 가야 겨우 맡을 수 있는 냄새다. 그런 냄새가 길거리 한가운데를 비집고 들어오다니. 거 참, 희한한 일이다. 내겐 바로 그때가 바다가, 그 바닷가에 동그마니 둥지를 틀고 앉은 포구가 그리울 때이다.

그때 때마침 날이라도 궂으면, 그리움은 곧 병이 된다. 마치 비라도 쏟아질 것 같이 대기가 온통 습기로 가득 찬 날이라든가, 금방 눈이라도 퍼부을 것처럼 거뭇거뭇한 하늘 끝 한쪽 언저리가 부러진 우산살처럼 축 처진 날. 그런 날에는 속절없이 짠물에 전 어부들의 발길이 바쁘게 오가는 포구가 떠오르고, 그 눅눅한 부둣가를 바라보고 앉아 건들건들 어깨춤을 추는 고깃배들이 슬며시 보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덩달아 그 포구를 따라 길게 늘어선 조개구이집들, 그 집의 벌건 연탄불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던 날것들이 따뜻한 그리움으로 되살아나는데, 그럴 땐 정말 한자리에 얌전히 오금을 접고 앉아 있는 게 힘들다. 그야말로 오금이 저리는 것이다. 깊이 생각하면 어렵다. 무작정 떠나야 한다. 아, 벌써 습한 바람결에 갯냄새 진하게 풍겨오지 않는가.

소래포구. 갯바닥에 한쪽 엉덩이를 들고 있는 고깃배들.
 소래포구. 갯바닥에 한쪽 엉덩이를 들고 있는 고깃배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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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도] 섬 아닌 섬

등대 전망대. 등대라기보다는 오이도 앞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등대 전망대. 등대라기보다는 오이도 앞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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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도는 섬이다. 예전에도 섬이었고,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된 지금도 여전히 한 점 '섬'으로 남아 있다. 시화국가산업단지. 오이도는 그 산업단지 끝에 자리 잡은 작은 섬이다. 바다가 육지가 되고 육지가 다시 산업단지가 되면서, 오이도는 여전히 철강상가(스틸랜드) 등의 육지를 건너가야 하는 피안의 섬으로 남아 있다.

배를 타는 대신 지하철이나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다는 것만 달라졌을 뿐, 오이도는 여전히 바다와 갯벌이 그립고, 그 바다와 갯벌 사이를 오가는 목선이 그립고, 그 목선이 땀 흘려 건져 올린 바다 생물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섬이다.

포구 여행길에 오이도에 먼저 발을 디딘 건, 오이도 역시 포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갯가에 배 닿는 선착장이 있고, 그 선착장을 젖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굳이 포구가 아닐 까닭이 없지 않은가. 사실 오이도가 '포구'라 이름 붙일 만한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선착장에 올라서서 그 앞에 다소곳이 자리를 잡고 앉은 배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오이도 역시 포구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선착장 위에 '직접 잡은' 조개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천막들이 죽 늘어서 있다. 밤새 내린 눈을 걷어내던 사람들, 천막 칸칸이 쇠난로를 피워 놓고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굴을 까는 데 여념이 없는 사람들 모두 도시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그런 점에서도 오이도는 포구라는 이름만 붙지 않았다 뿐이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웃해 있는 월곶포구나 소래포구와 한 형제처럼 닮아 있다.

오이도 선착장. 바다 표면에 얼음이 얼고 그 위로 흰 눈이 덮여 있다.
 오이도 선착장. 바다 표면에 얼음이 얼고 그 위로 흰 눈이 덮여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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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섬이었으나 지금은 갯가 포구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오이도의 눈 덮인 제방 위로 앞서 디딘 사람들의 발자국들이 또렷하다. 이렇게 추운 날, 나 말고 또 다른 누군가 이 갯가를 서성였다. 그 발자국들은 오이도 제방 위를 걸어 찻길을 따라 시화방조제까지 걸어갔다. 그들은 대체 이 긴긴 눈밭을 어디까지 걸어간 걸까. 폭설로 길이란 길 모두 눈 속 깊이 푹푹 빠져드는데, 누군가는 그 눈길을 더듬어가며 계속해서 오이도를 찾아오고 있다.

오이도 선착장 앞, 조개구이 거리
 오이도 선착장 앞, 조개구이 거리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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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곶포구] 포구 아닌 포구

포구는 월곶을 지나 소래까지 이어진다. 월곶포구와 소래포구는 만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지금에 와서, 과거 서해안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상상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들 포구 역시 원래는 이런 곳이 아니었을 것이다. 간척사업을 되풀이한 결과, 지금과 같이 길고 좁은 만이 형성되었고, 겨우 포구로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육지 깊숙이 들어앉게 된 포구는 좁은 물길 한쪽에 터를 잡고 앉아, 포구로서 질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세상이 변했듯, 그렇게 포구도 변했다. 아파트 숲 아래 낮게 엎드린 포구는 언뜻 포구로서 기능을 다한 것처럼 보인다. 급하게 흘러가는 세월만으로도 견디기 힘든데, 이젠 포구 가까이까지 아파트들이 밀고 들어오고 있다.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는 포구는 오늘 배수지진의 비장한 각오로 하루를 살고 있다.

월곶포구. 오른쪽 아파트 단지는 월곶신도시. 아파트와 포구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월곶포구. 오른쪽 아파트 단지는 월곶신도시. 아파트와 포구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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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잃은 포구는 옛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옛일에 연연하는 건, 늘 그렇듯 과거를 잊지 못해 취한 듯 비칠거리는 걸음으로 포구를 찾아오는 사람들 쪽이다. 그렇게 해서 포구는 예나 지금이나 그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하루를 열고 닫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다만 예전엔 바다를 향해 열려 있던 길이, 이제는 사람을 향해 열려 있는 셈이어서 한때 먼 바다 먼 섬을 찾아 떠돌던 배들이 이제는 사람을 맞으러 도시 가까이 있는 포구로 몰려들고 있을 뿐이다.

그 배들이 오늘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듯 포구 앞 깊고 검은 갯바닥에 몸을 누이고, 두런두런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 발자국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일까. 도무지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 같은 목선들, 그래도 서로 어깨를 기댄 채 깃발 하나 귀 쫑긋 세워 놓고 이제나저제나 물때를 기다리고 있다. 배 밑까지 물이 들면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다시 길을 나서야 한다.

포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을 위해 또 다시 포구를 떠나야 하는 목선들이 있는 한, 아무리 세월이 변했다 해도 포구는 그저 포구인 것이다.

월곶포구 갯가 산책로. 멀리 옛 수인선 철교가 보인다.
 월곶포구 갯가 산책로. 멀리 옛 수인선 철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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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 어시장 아닌 어시장

월곶포구 가까운 곳에, 그야말로 손 닿을 곳에, 소래포구가 있다. 월곶포구를 벗어나 예전 수인선 철교(소래포구다리)를 건너면 그곳이 바로 소래포구다. 옛 수인선 철교는 월곶포구에서 만을 따라 길게 조성된 산책로 끝에 있다. 그 길에 다 다다랐을 무렵에 왼편으로 목재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 위로 올라서면 한두 사람 겨우 지나갈만한 좁은 길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그 옛날 수인선 협궤열차가 달리던 철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길이 그때 그 기차가 다니던 길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철로 위로 발판이 덮이고, 난간이 세워져 사람 다니는 길로 변한 지 오래다. 그 옛날 철마가 기적 소리 높이 증기를 내뿜으며 달리던 모습은 이제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옅은 기억 속에나 남아 있다. 그 다리를 사이에 두고 월곶포구는 시흥시에, 소래포구는 인천시에 속한다. 만이 시의 경계를 갈랐다.

소래포구에서 건너다 본 옛 수인선 철교.
 소래포구에서 건너다 본 옛 수인선 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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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잡아온 생선을 부두 위로 끌어올리는 어부들.
 갓 잡아온 생선을 부두 위로 끌어올리는 어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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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궤열차로 사람들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았던 수인선 철도는 더 이상 예전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는 그 모습을 거의 다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소래포구는 그 옛날 수인선이 사람들을 가득 실어 나를 때만큼이나 생생한 활기를 띠고 있다. 그 포구에 그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건, 그곳에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뭇사람들의 생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래포구 역시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 작은 포구는 더 이상 작아질 수 없을 정도로 위축되어 있는 반면에, 어시장은 서울 시내의 여느 수산물시장을 옮겨다 놓은 것 같이 번성하고 있다.

그 어시장에, 한때는 탄력 있는 몸매로 '오대양'을 내 뜰 안처럼 거닐었을 물고기들이 비좁은 플라스틱 대야 속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오대양은커녕 손바닥만한 땅 몇 평 지니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비천한 인간들의 발아래에 누워 불안한 눈빛을 내쏘고 있다. 그러다 간간이 이대로 생을 마감할 수 없다는 듯 불쑥불쑥 고개를 쳐든다. 선택이 곧 죽음이 될 수도 있는 그 순간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했던 것인지 온몸으로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살아서 미끌미끌 기름진 몸을 사력을 다해 뒤척이고 있다. 무릇 삶이란 게 그저 다 이런 것이라는 듯...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추운 날씨 속에 감행한 포구 여행. 그 여행길에 섬 아닌 섬 오이도와, 포구 아닌 포구 월곶포구와, 어시장 아닌 어시장 소래포구가 있었다.

소래어시장. 평일인데도 해산물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몸놀림이 분주하다.
 소래어시장. 평일인데도 해산물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몸놀림이 분주하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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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지 않은 여행 메모]

겨울 바닷바람이 몹시 차다. 이런 날엔 포구가 아닌 어디를 가든 몸에 스미는 한기를 막아내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한겨울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근 5시간을 눈 덮인 길을 걸어 다녔더니, 아닌 게 아니라 동태가 될 지경이었다. 그래서 소래포구를 끝으로 여행을 마칠 무렵에는 그곳 어시장 바닥에 납작 엎드린 물고기 신세가 되는 줄 알았다.

'오이도'까지 버스와 전철을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서울시내에서 1번, 510번 버스를 타면 '월곶포구'를 거쳐 '오이도역'까지 갈 수 있고, 전철(4호선) 역시 '오이도역'까지 운행한다. 오이도역에서 오이도까지는 다시 30-2번 녹색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서울시내에서 버스를 탔으면 월곳(소래)->오이도로 이동하는 것이 좋고, 전철을 탔으면 오이도->월곶포구->소래포구 순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주의해야 할 점은 오이도에서 월곶포구까지 가는 버스가 없으므로, 그때마다 오이도역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는 것이다. 오이도나 오이도역 모두 소래포구까지 가는 버스가 없다는 점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23번 버스에 '소래포구'로 간다는 표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소래포구가 아니라 소래포구로 건너가는 철교(소래포구다리) 근처에 내려준다. 소래포구로 가려면 걸어서 가라는 식이다. 그러니 소래포구에 가야겠다는 일념에 너무 오래 23번을 기다리지는 말자. 그리고 모든 버스가 그리 자주 오는 편이 아니므로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오이도에서 월곶포구까지는 조금 먼 거리다. 날이 좋으면 자전거를 타거나 조금 무리를 해서 걸어 갈 수도 있을 듯하다.

오이도 근처에 똥섬(덕섬)이 있고, 그 건너편에 옥구도자연공원이 있다. 똥섬은 한 덩이 잘 빚어 놓은 똥처럼 탐스러웠고, 옥구도자연공원은 온통 눈에 덮여 장관이었다. 그 역시 섬이었던 옥구도자연공원은 간척사업이 끝난 뒤 평지 위에 우뚝 솟은 산으로 변했다. 정상에 꼭짓점으로 솟은 정자가 멋스럽다. 그 위에 올라서면 서해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아름답다는 평이다.

시화방조제 위로 4가지 각기 다른 길이 놓여 있다. 찻길이 있고, 그 길과 나란히 자전거길과 인라인스케이트길이 있으며, 그 길 옆으로 다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있다. 그 길이가 무려 12.7km. 끝까지 걸어서 갔다 오기엔 꽤 먼 거리다. 시화방조제 끝에 닿으면 바로 대부도로 넘어간다. 대부도에서는 영흥도나 제부도까지 도로가 이어진다. 자전거를 타고 이 섬들을 줄줄이 돌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오이도에서 건너다 본 송도 국제도시 건설 현장
 오이도에서 건너다 본 송도 국제도시 건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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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기자가 소래포구를 다녀온 뒤인 지난 11일 새벽에 어시장에 불이나 41개정도의 점포가 불에 탔다고 합니다. 하루빨리 복구돼 예전 모습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태그:#오이도, #월곶포구, #소래포구, #오이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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