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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아내가 영어 학원을 차렸다. 수강생들이 너무 적은 탓에 가끔 내게 학원 핑계를 댄다. 학원이 옆에 있는 그림 학원에 붙어 있는 느낌이라 학부모들이 얕잡아 보고 등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원이 더 넓고 쾌적하다면 금방 북새통을 이룰 거라 이야기한다. 

 

한 번은 또 집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현재 전세 대출을 얻어 살고 있는 빌라를 떠나, 내년엔 집 근처에 있는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가자고 한다. 이유는 학원 홍보 차원이란다. 그곳으로 이사 가면 그곳 주민들에게 더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학원홍보를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나는 그때 학원 규모가 문제는 아닐 거라 이야기했다. 학원생이 몇 명이 오든 그들을 진정성 있게 잘 가르쳐 준다면 그 녀석들이 소문낼 거라 말했다. 그런데도 아내는 처녀 시절에 겪은 일을 두고 볼 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그 시절 소형차를 타고 다닐 때는 학부모들이 자신을 무시하듯 대했지만, 중형차로 바꾸었을 때는 완전 떠받들듯 대했고, 아이들도 부쩍 늘어났다는 것이다.

 

정말로 한국 사람들은 겉모습을 모든 척도로 삼고 있는 것일까?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 어떤 아파트에 어떤 평수로 사는지, 어떤 지갑과 가방을 들고 다니는지, 그것에 따라 사람값을 달리 매기는 사회일까? 그것 때문에 사람을 달리 평가한다면 뭔가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올리버 제임스가 쓴 <어플루엔자>(알마 펴냄)는 탐욕과 겉모습에 치중하는 소비지상주의 인간들이 얼마나 불행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우리나라처럼 어느 특정한 한두 군데 나라가 아니라 싱가포르, 모스크바, 코펜하겐 등 세계 20여 개국 사람들을 3년 동안 조사하고 분석한 것이니 진지할 수밖에 없다.

 

"불안하고 우울할수록 소비를 해야 하고, 소비를 할수록 더 불안해진다. 소비는 우리에게 내적인 공허가 외적인 수단으로 고쳐질 수 있다는 거짓 약속을 한다. 이렇게 해서 어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지닌 사람들은 약물중독에 빠지고 더 심각하게는 하법적인 중독, 예컨대 쇼핑 중독, 일중독, 섹스중독을 비롯한 강박적인 대량 소비의 중독자가 되어간다. 우리는 물건을 사면서 우리의 불행을 치유한다."(40쪽)

 

그와 같은 어플루엔자로 인해 사람들은 무력감에 빠져들고, 일중독과 같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생기고, 그때마다 그것을 처방하기 위해 쇼핑이나 음식중독에 빠져들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 등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플루엔자에 감염된 사람들을 처방할 수 있는 치료제는 뭘까? 처방전은 따로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것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은 몇 가지 이야기해 준다. 이른바 긍정적인 의지를 가지는 것, 외적인 바이러스 동기를 내적 동기로 바꾸는 것, 내게 필요한 것만을 소비하는 것, 그리고 성실성 대신에 진정성에, 활동성 대신에 생동감에, 장난기 대신에 놀이성에 집중할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이 책은 누가 지켜보고 있는가에는 관심을 줄일 것을 권한다. 그리고 더 많은 것, 더 큰 것, 기술적으로 더 진보한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버릴 것을 권한다. 대신 이 책은 당신이 정말 중요한 것과 다시 연결되는 법,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가르쳐 준다. 감정적인 면에서나 사회적인 면에서나 물질적이 면에서나 다 말이다."(511쪽)

 

그만큼 어플루엔자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은 현재 있는 것에 자족하며 사는 게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다른 사람을 얻기 위해 특별한 활동과 노력을 보여주려고 하기 보다는 그가 지닌 마음에 한 층 더 다가서려는 진정성에 힘을 쏟을 것도 이야기해 준다. 그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도 통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오늘도 오후 늦게 피아노 치는 대학생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반주자가 없는 교회를 개척한 나로서는 그가 절실히 요청되는 바라, 온 마음으로 맞이했고, 정성스레 대접했다. 그 모두가 그가 함께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가 피아노 반주를 해 준다면 교회로서는 더 우렁차고 더 활기차고, 더 부흥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처음 예상과는 달리 그가 하나님을 품었던 옛 마음과는 달리 한참이나 멀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신앙심에 거리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그가 강요된 의무감을 요구하지 않도록 내게 이야기 주었기에, 나로서는 감동어린 진정성이 그에게 통할 때까지, 그를 기다려 주기로 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책 속에서 밝혀주는 어플루엔자를 차단하는 예방책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플루엔자 (양장)

올리버 제임스 지음, 윤정숙 옮김, 알마(2009)


태그:#어플루엔자, #감동어린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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