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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가게라 그런지 다른 가게보다 분주하다. 장류·절임류·김치류·젓갈·나물 등 즉석요리까지 100여 가지가 넘는 반찬들이 즐비한 곳, '철구네 식품 Food Box(=푸드박스)'. 앳된 한 젊은이가 주문 받으랴 물건 나르랴 모자란 반찬 다시 주문 넣으랴 바쁘다.

 

올해로 반찬가게만 4년인 최동욱(28) 사장은 젊은 나이지만 장사 경력은 제법 된다. 그는 이 일을 하기 전, 그러니까 군 입대 전에 고기집 식당을 운영했다. 당시 아버지가 반찬가게를 하기 전에 부평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던 터라 최씨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가며 식당을 운영했다.

 

그리고 군 제대 후 바로 아버지가 운영하던 반찬가게 일을 이어 받아 지금은 그가 가게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자신이 식당을 해본 경험과 어깨너머로 정육점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배워 반찬가게를 나름의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

 

최씨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군을 제대했을 때 아버지가 운영하던 정육점은 반찬가게로 바뀌었지만 이를 현재 산뜻한 가게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한 것은 바로 최씨다. 자신이 배웠던 디자인을 가게에 접목시켜 누가 봐도 도드라지게 가게를 꾸몄다.

 

주로 재래시장은 40대 이상의 중년층이 찾는다. 하지만 최씨는 시장을 자주 찾는 중년층 외에도 20~30대를 겨냥해 나름의 디자인으로 1차 승부를 띄웠다. 어쩌다 오는 20~30대들도 깔끔하고 산뜻한 철구네 푸드박스를 한번 들르면 앞으로 시장을 자주 찾게 될 것이란 게 최씨의 분석이었다.

 

최씨의 분석은 정확이 맞아 떨어졌다. 대형마트와 SSM의 확산에 경제 불황까지 겹쳐 재래시장 곳곳에서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철구네 푸드박스에는 다양한 계층의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하루 200여명의 손님들이 철구네 푸드박스를 찾는데, 20대부터 60대까지 골고루 분포돼있다.

 

"아들이 나보다 앞을 내다보는 안목은 더 낫다"

 

대학에 진학해 애써 배운 전공을 관두고 시장에서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부모는 어땠을까? 젊은 사장 최동욱씨가 이처럼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는 아버지 최성호(57)씨의 든든한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 최성호씨는 "이제 6년쯤 됐나? 사실 대학 다닐 때는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빨리 익히고 빨리 적응하더라. 수완도 있어 보이고(웃음),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본인이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것"이라며 "큰 아들이 이 일을 꼭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별다른 고민 없이 '그래 하고 싶은 일을 하렴' 하고 힘을 실어줬다. 게다가 대를 이어서 한다고 생각하니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냥 일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글쎄 '사업의 기초를 시장에서부터 배우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사업구상을 내게 브리핑했다"며 "내 아들 자랑 같지만 보통 젊은 날에 편한 일 찾는 게 요즘 세태인데 구태여 시장에서 배우겠다고 하고 나름 사업구상까지 갖춘 걸 보고 놀랐다. 다른 건 몰라도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은 장사를 25년 넘게 한 나보다 더 낫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아버지 최성호씨는 가게 운영을 전적으로 맡기려하고 아들이 운영하는 일에 가급적 관여하지 않는다. 새벽 5시에 문을 열어 밤 9시에 문 닫는 고된 일터라 아무리 의욕이 넘치는 젊은이라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아버지 최씨가 문을 대신 열어주는 경우는 있지만, 운영은 전적으로 아들 최동욱씨의 책임이다.

 

최동욱씨는 "4년 전 아버지에게 의지하려고 했던 게 오히려 지금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때는 자신이 없어 자꾸 아버지께 의지했는데 지금은 내가 책임을 져야한다"며 "차라리 그때 더 힘들더라도 자립심을 키웠으면 지금보단 나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아버지가 믿어주시니 더욱 힘이 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스물여덟 청춘에게 인터넷은 '무기'

 

아버지 최씨가 최동욱 사장더러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자신보다 낫다고 한 지점은 어쩌면 인터넷일 듯하다. 최동욱 사장이 아버지께 브리핑한 사업구상이 다름 아닌 인터넷 시장이기 때문이다.

 

최동욱 사장은 가게 인테리어 개선으로 1차 승부를 띄워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가게 인테리어를 개선하고 중간 중간 이벤트도 개최하고 반찬 진열을 보기 좋게 하는 등 나름의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펼쳐 1년 만에 흑자 전환을 이뤄낸 것. 이후 그가 구상한 2차 승부수는 인터넷 사업이다.

 

최 사장은 "인터넷 쇼핑몰 사업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안다. 그래도 저는 인터넷 사업과 관련해 몇 가지 강점을 지니고 있다. 주변에 인터넷쇼핑몰 등을 전문으로 하는 친구들이 있고, 무엇보다 철구네 푸드박스가 4년여의 시간을 거치면서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나름의 입지를 굳혔다는 점"이라며 "현재 조심스럽게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인터넷을 이용한 사업은 '철구네 푸드박스'표 반찬의 직배송이다. 전국 어디든지 배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그의 목표다. 물론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그는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사업구상하고 일하는 것보다 사람을 상대하는 게 더 어렵다.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를 상대하는 일부터 손님을 상대하는 일까지 나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그 부분이 제일 어렵다. 그래서 아버지가 '장사는 사람을 사는 것'이라고 하셨던 말을 늘 되뇌이며 일한다"고 말했다.

 

스물여덟. 젊은 나이다. 일이 고돼 쉬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을 그지만 묵묵히 새벽이 되면 일어나 훗날 기업가가 돼있을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일터로 향한다. 최씨는 "손님은 매우 예리하다. 한번 잘못하면 다시는 안 온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거래관계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좋은 재료를 쓸 수밖에 없고, 좋은 재료를 쓰는 만큼 단골은 늘게 돼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또 "미래를 위한 젊은 날의 투자라고 생각하고 참는다. 이제 막 2개월 된 아이와 못 놀아 주는 게 아이와 아내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내가 만든 반찬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며 "이 일이 천직"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기자 주> 대형마트와 SSM(기업형 슈퍼마켓) 등 대형유통자본의 지역상권 잠식과 지속되고 있는 경제 불황으로 자영업자들은 폐업과 실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에 <부평신문>은 자영업자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름의 경영 노하우를 가지고 위기를 극복해 가는 자영업자의 얘기를 전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자영업자들의 진솔한 얘기, 그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삶의 이야기를 매월 둘째 주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영업자, #철구네식품 FOOD BOX, #부평시장, #20대 , #반찬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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