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 연장 10회 LG의 김선진이 때린 공이 하늘을 갈랐다. 마운드위의 김홍집은 망연자실했고 경기는 그걸로 끝이 났다. 시리즈 내내 이 끝내기 홈런은 경기를 지배하는 듯 했고 그 해 돌풍을 일으키며 챔피언에 도전했던 만년 꼴찌 태평양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1994년 태평양 돌핀스 인천야구를 생각하면 항상 짠한 마음부터 든다.

▲ 1994년 태평양 돌핀스 인천야구를 생각하면 항상 짠한 마음부터 든다. ⓒ 박성민

82년 프로야구가 시작한 후 오랫동안 인천야구는 약팀의 상징이었다. 삼미를 시작으로 청보핀토스, 태평양돌핀스까지 4강은 고사하고 꼴찌를 면하면 다행이었다. 나는 인천 출신으로 외삼촌의 지속적인 세뇌교육으로 자연스레 태평양의 팬이 되었다. 인천의 부동의 4번 타자 김경기, 뚝심의 포수 김동기, 작은거인 최창호선수등 모두 내 마음속의 수퍼스타들이었다.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부산으로 이사했던 나는 사직구장의 열기에 빠졌다. 하지만 여전히 태평양을 응원했고 구도라고 외치는 롯데 팬 아이들의 적이 되고 말았다.

 

태평양은 94년에 반짝했지만 여전히 가난한 약팀이었다. 그런데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는 흥분했다. 자금력이 강한 현대라면 인천야구를 단기간에 강팀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현대유니콘스는 인수 2년만에 감격의 첫 우승을 인천에 안겼다. 아직도 도원구장에서 마지막 중견수의 껑충거림이 잊히지 않는다. 현대유니콘스는 더 이상 약팀의 아이콘이 아니었다. 오히려 극강의 모습을 뽐내며 아구판을 장악해 갔다. 2000년에는 급기야 정규시즌 최고 승률과 승수를 올리며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며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한다. 그러나 나는 부산에서 사직구장의 열기와 1999년 롯데의 플레이오프 드라마를 고등학교 교실에서 보며 현대유니콘스에 대한 사랑이 서서히 식어 갔다.

 

2000년대 초반 들어 국내 프로야구의 인기는 박찬호와 김병현으로 대표되는 메이저 리그 열기와 월드컵의 함성으로 서서히 추락해 간다. 2002년 삼성의 극적의 우승으로 잠깐 인기를 회복하는 듯 보였지만 2003년, 2004년 현대의 연속 우승은 골수팬이 아니고는 감동을 안기지 못했다. 더군다나 현대는 그 때 연고지 인천을 버리고 수원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다. 인천야구를 서울입성을 위해 버린 구단에게 나는 더 이상 응원을 보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롯데자이언츠를 지속적으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더욱이 인천에서 재창단된 SK에서는 쌍방울의 잔상이 깊게 보였었다.  

 

그렇게 현대 유니콘스는 모그룹 총수의 안타까움 죽음과 그 인생을 같이 하며 2007년 그 마지막을 고한다. 그리고 2008년 히어로즈가 탄생했다. 연봉후려치기를 하며 가난한 구단 티를 내며 야구판에 데뷔한 인천야구의 후예들을 나는 다시 주목했다. 목동구장엔 항상 원정팬들이 더 많았고 스폰서십은 뜻대로 되지 않고 표류했다. 급기야 메인 스폰서 우리담배마저 손을 때고 서브 네이밍 마케팅에 의존하게 된다. 유니폼에는 외로이 히어로즈를 상징하는 h만이 가슴 한구석을 지켰다.

 

2009년 겨울 다시 한 번 히어로즈의 혹독한 스토브 리그가 재연되고 있다. 팀의 주축선수들이 합리적인(?) 트레이드라는 명목 아래 팀을 옮길 처지에 놓였다. SK와 씨름하며 인천야구 적통이라는 정통성을 주장하던 히어로즈가 인천야구가 초기에 추구했던 꼴찌의 정체성을 찾아가려고 하고 있다. 각종 커뮤니티와 인터넷에서도 7개구단 팬들의 히어로즈 선수들에 대한 주판알 튕기기만 나올 뿐 히어로즈 팬들의 공허함과 허탈감의 목소리는 희미하기만 하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처럼 각 팀의 팬들도 히어로즈의 트레이드 절대불가 선수들에게까지 군침을 흘리고 있다.

 

수퍼맨이 된 턱돌이 턱돌이의 멋진 퍼포먼스를 우리는 계속 보기를 원한다. 그러나 히어로즈의 경기력이 턱돌이처럼 우습게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 수퍼맨이 된 턱돌이 턱돌이의 멋진 퍼포먼스를 우리는 계속 보기를 원한다. 그러나 히어로즈의 경기력이 턱돌이처럼 우습게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 박성민

2009년 마지막까지 4강 싸움의 힘을 보태며 프로야구를 흥미롭게 만들었던 히어로즈가 이제 예전의 암울했던 인천야구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이 겨울이 끝나면 '턱돌이'의 재기발랄함을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나만 가진 생각일까.

2009.12.19 14:44 ⓒ 2009 OhmyNews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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