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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열풍이 거세다. 그만큼 길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전국 각지에서 잊었던 옛 길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그러고 보면 길은 어디에도 있다. 장소 구분 없이 어느 누구나 길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만드는 것과 실제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은 별게다. 무엇이 요점인가.

 

길은 역사를 품어야 한다. 그 길에 사연을 담고 있어야 한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걷고 싶어 할 때, 그 길은 길 이상의 어떤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

 

길은 시간이다. 그 시간이 역사이고, 사연이다. '천년 전주'의 길속에는 천년의 시간이 담겨있다. 그만큼 전주는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는 곳이다.

 

전주 시내를 가로지르는 전주천을 걷는다고 할 때, 한벽당에서 시작해 물줄기를 따라 싸전다리, 초록바위, 매곡교, 서천교, 다가공원 방향으로 걷는 게 일반적이다. 중심을 관통하며 예전 전라감영의 위치, 동학교도들의 전주 입성 등을 곁들이며 걷기에 좋은 길이다.

 

그렇지만 한벽당을 시작으로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는 이는 많지 않다. 도심 중심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주전통문화센터 주최의 '길에서 만난 전주' 행사가 지난 7일 이 길을 걸으며 진행됐다.

 

전통문화센터에서 출발, 완주군과의 경계지점에 있는 색장마을을 돌아오는 7.2km 거리였다. 소요시간은 4시간 남짓. 하지만 실제 걷는 시간은 사그락 사그락 걸어도 2시간이면 족하다. 이 구간에는 전주를 규정짓는 중요한 명소 승암산(일명, 치명자산)이 있고 월암마을도 가까이 있다. 그로인해 굵직한 역사를 품고 있는 길이 된다.

 

승암산은 전주에 후백제를 세운 풍운아 견훤이 궁성을 지은 곳이다. 지금도 그곳에는 후백제 도성터와 견훤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승암산은 또한 치명자산이라고도 불린다. 1800년대의 천주교 박해기에 전주 지역에서 순교한 동정부부 유종철과 이누갈다 등을 추모하는 묘역이 이곳에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월암마을은 전라도 지역을 반역향으로 지목하고, 이후 호남인들의 관직 등용을 제한하는 빌미를 제공했던 1589년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이 태어난 곳이다. 그는 '천하는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는 천하공물설과 '누구라도 임금으로 섬길 수 있다'는 하사비군론 등 왕권 체제하에서 용납될 수 없는 혁신적인 사상을 품은 사상가였다.

 

이 월암마을 뒷산 봉우리를 파쏘봉이라 부르는데, 파쏘라는 이름은 정여립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집터를 숯불로 지지고 파헤친 후 인공연못을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집 앞 들판도 파쏘들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날 행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짚어주는 전문해설가의 설명과 함께 다양한 이벤트로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해설가로 동행한 '길 위에서 놀다'와 '전주에서 놀다'의 저자인 동아일보 김화성 여행전문기자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은 여기 저기 찍고만 가기 때문에 '점 여행'이고, 자동차로 가는 여행은 달리면서 보기 때문에 '선 여행'이지만, 걷기는 골고루 다 볼 수 있는 '면 여행'이다"며 걷기예찬론을 펼쳤다.

 

반환지점인 색장마을에서는 최근 도내 최초로 대금 정규앨범을 발표한 전주시립국악단의 이창선씨 공연이 펼쳐져 여흥을 돋웠고, 이후 점심으로 대형비빔밥을 함께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또한 짚신을 신고 길을 걸어보는 '짚신 체험' 행사가 있었고, 종착점인 전통문화센터에 도착해서는 차를 마시며 이날 일정을 정리했다. 특히 김화성 기자는 자신의 저서 두 권을 이날 참가자 전원에게 친필 사인과 함께 나눠줘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편, 이날 전주천 걷기는 전주전통문화센터가 센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걷기 관광코스를 개발해 슬로우 시티로서 전주 이미지 제고와 걷기와 함께하는 새로운 문화체험의 장을 만들기 위해 기획한 행사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걷기, #전주천, #승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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