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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지 유출 등 성적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경기도 A고등학교. 이 학교 학생들은 "진실을 밝혀달라"며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시험지 유출 등 성적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경기도 A고등학교. 이 학교 학생들은 "진실을 밝혀달라"며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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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 10일 오전 11시50분]

"우리가 친구를 괜히 '왕따' 시킨다고요? 우리는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오죽하면 우리 학생들이 시험지 유출 의혹을 해결해 달라고 서명운동을 하겠어요?"

경기지역 A고등학교 2학년 김아연(가명) 학생은 답답한 듯 한숨을 쉬었다. 학생은 "학교는 의혹을 잠재우려 하지 말고 앞장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양 옆의 친구도 화가 났는지 목소리를 높이며 끼어들었다.

"우리 학교 2학년 약 200명이 서명에 동참했어요! 그러면 거의 절반이 의혹을 풀어달라고 나선 것인데, 이게 그냥 덮을 일이에요?"

두 학생의 분노와는 상관없이 길 건너편 A고등학교 정문 주변에는 현수막 여러 개가 바람에 펄럭였다. 현수막에는 서울 일부 대학 수시모집에 합격한 학생들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적혀 있었다.

현수막 내용과 달리 경기도 A고등학교는 요즘 무척 어수선하다. 이 학교 학생들은 지난 10월 말 무렵 집단 서명운동을 벌였다. 서명용지에는 '수상실적 및 성적조작 의혹 진상조사'라고 적혀 있었다. 성적 조작이라니?

이들 학생들만이 아니라 학부모와 몇몇 교사들도 시험지 유출과 성적 조작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까지 나서서 이 학교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논란 - 1] 문제풀이 생략... 어떻게 고득점 받았나?

논란의 핵심 사건은 지난 10월 중순 있었던 2학년 2학기 중간고사에서 터졌다. 평소 전교에서 중간 정도의 수학성적을 내던 B학생의 성적이 최상위권으로 급상승한 것이다. 특히 사회·문화, 수학 등의 과목 점수가 높았다. 여기서 특히 문제가 된 과목은 수학. 이 학교 C교장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수학은 난이도가 높게 출제됐다. 이 때문에 평소 높은 점수를 받았던 학생들은 물론이고, 대부분 학생들의 성적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문제의 B학생은 90.5점을 받아 수학성적 전교 2등을 차지했다.

물론 누구나 열심히 하면 성적은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과목 성격상 수학 성적은 갑자기 오를 수 없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말이다. 당연히 직접 문제를 출제했던 수학 교사가 먼저 의혹을 제기했다. B학생의 시험지에 적힌 문제풀이 과정이 정답과 무관하거나 풀이과정 자체가 생략됐는데 정답을 너무 쉽게 맞혔기 때문이다.

며칠 뒤 수학 교사는 이 학생을 불러 중간고사와 똑같은 시험지를 주고 풀게 했다. 하지만 B학생은 문제 22개 중 9개만 풀었다. 더 나아가 그렇게 푼 문제 9개 중 3개가 틀렸다. 이 때문에 여러 교사들은 사전에 시험지가 유출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C교장은 "수학 교사가 학생을 따로 불러 문제를 다시 풀어보라고 한 행위 자체가 문제"라며 "B학생은 과외 등으로 뛰어난 수학 성적을 올린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C교장은 시험지 유출 의혹과 관련 "시험 문제 출제, 교감 등 결제 그리고 시험지 인쇄까지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기 때문에 중간에 빠져나갈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B학생도 지난달 26일 작성한 진술서를 통해 "풀이 과정 없이 답을 맞춘 것은 과감히 찍어서 시간을 줄였기 때문"이라며 "(재시험도) 동아리에 참석할 시간도 지났고 점점 화가 나 집중해서 풀 상황이 못 됐다"고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불쾌감을 나타냈다.

[논란 - 2] 확연히 다른 필체... 독서감상문은 누가 썼나?

대학입시에 입학사정관제와 수시모집이 도입되면서 고교생의 각종 경시대회 성적 및 수상 실적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B학생은 지금까지 4개의 교내상과 5개의 교외상 등 총 9개의 교내외 상을 받았는데, 이 중 두 개는 글짓기를 통해 받았다.

B학생은 7월에 열린 '교내 법질서 지키기 글짓기 대회'에서는 최우수상(1등), 8월에 있었던 '법질서 지키기 경기도 학생 글짓기 대회'에서 A시 교육청 교육장상(금상)을 받았다.

그는 9월 'A시 독서감상문대회'에 출품할 목적으로 톨스토이의 <부활> 독후감을 썼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B학생의 답안지를 보면, A4 용지의 앞뒤는 깔끔한 글씨로 가득 채워져 있다. B학생의 답안지는 도서부와 교감을 거치면서 최우수 작품으로 추천됐다.

하지만 어찌된 일일까. 답안지에 적힌 필체는 평소 B학생의 필체와 확연히 다르다. 글자 모양은 물론이고, 띄어쓰기, 문체 등 평소와 다른 점이 많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 평가 과정에서 답안지 교체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국어과목 교사 출신인 C교장도 이 부분에서는 미심쩍어하는 눈치다. C교장은 B학생의 답안지 몇 곳에 직접 밑줄을 그으며 "고교생이 쓸 수 없는 표현"이라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C교장에 의해 B학생의 독서감상문은 최우수작품에서 가작으로 '강등'됐다.

하지만 일부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가 나서서 답안지 교체 의혹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누가 봐도 다른 필체의 답안지가 제출됐는데, 이를 학교가 조사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C교장은 이 부분에서도 의혹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C교장은 또 "굉장히 지엽적인 문제이고, 독서감상문은 정식 대회에 제출되지도 않았다"며 "작은 문제를 크게 부풀릴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C교장은 "이번 B학생의 답안지는 독후감 대회 바로 당일 현장에서 제출 받은 것이기 때문에 중간에 교체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논란 - 3] 사실과 다른 '봉사활동확인서'... 하지만 표창장까지

B학생은 2008년 7월 18일 8시간 동안 한 상공회의소에서 봉사활동을 했다며 '봉사활동확인서'를 학교에 제출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 학생은 이날 충북의 한 수련원에서 열린 '2008 학생간부수련회'에 참석했다.

결국 '봉사활동확인서'는 허위 또는 실수로 발행된 것이지만 B학생은 지난 8월 31일 A상공회의소가 주는 봉사활동 표창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한 상공회의소 한 관계자는 "B학생이 2008년 7월 18일에 봉사활동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어쨌든 수학시험 문제지 유출 의혹, 독서감상문대회 답안지 교체 의혹, 봉사활동과 표창 등의 논란에는 B학생이 있다. 이것은 모두 우연의 일치일까?

C교장은 모든 의혹과 논란에서 B학생을 두둔하고 있다. C교장은 "누구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겠지만, 일부 교사들이 학생들을 선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이른바 '배후조종설'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촛불집회 때나 나오던 '배후조종설'이 우리가 다니는 학교에서 나오는 게 슬프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답게 모든 의혹을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한편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학생의 부모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한참 예민한 학창 시절에 안타까운 일이 벌어져 유감이다"며 "도교육청에서 감사와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는 만큼 정확한 사실 관계가 밝혀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태그:#성적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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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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