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군산을 출발, 15분 만에 장항에 도착해서 승객을 내려놓고 곧바로 군산으로 돌아가는 금강호, 이제는 탈 수도, 볼 수도 없는 배가 되었습니다.
 군산을 출발, 15분 만에 장항에 도착해서 승객을 내려놓고 곧바로 군산으로 돌아가는 금강호, 이제는 탈 수도, 볼 수도 없는 배가 되었습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일제강점기(1934년)에 오가기 시작, 8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낡을 대로 낡은 군산-장항 뱃길을 이어주던 금강호 운항이 11월1일부터 무기한 휴항에 들어갔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군산-장항 뱃길 마지막 날 분위기를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어 10월31일 오후 지인 두 분과 군산 도선장에 나갔다. 다행히도 마지막 뱃길을 자녀와 동행하려고 가족 동반한 부부도 눈에 띄어 분위기가 지난번처럼 썰렁하지 않았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날씨가 좋아, 주말에는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비웃었는데 나루터에 도착하니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출항 준비를 하는 장명수(64세) 선장에게 물으니까 "섬 지역이면 몰라도 내항은 괜찮아요!"라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시름에 잠긴 장명수(64세) 선장. 전에 만났을 때는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았는데 마지막 날이어서 그런지 표정이 밝지 못했습니다.
 시름에 잠긴 장명수(64세) 선장. 전에 만났을 때는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았는데 마지막 날이어서 그런지 표정이 밝지 못했습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부모를 따라온 청소년들은 쓰라린 과거를 체험해보지 못한 세대답게 장항-군산 거리와 운항시간을 묻고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다니며 마냥 즐거워했지만, 장 선장(64세)을 비롯한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어서 오세요!"라며 인사를 하면서도 표정은 굳어 있는 것 같았다.

여객선 대합실에서 승선권을 파는 아가씨(알고 보니 아줌마였음)와 장 선장은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비응도에 있는 유람선 회사로 자리를 옮겨 일을 계속하기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금강호와 함께 회사를 그만둔다는 선원들보다 조금 덜한 것 같았다.

객실에서 만난 반가운 독자

 엄마 아빠가 타고 다니던 배를 딸들에게도 태워주고, 장항에 사는 장모님도 뵈려고 가족이 출동했다는 임효승(46세)씨와 딸.
 엄마 아빠가 타고 다니던 배를 딸들에게도 태워주고, 장항에 사는 장모님도 뵈려고 가족이 출동했다는 임효승(46세)씨와 딸.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배가 출발하기 전부터 젊고 예쁜 여인 세 명과 나란히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주고받는 안경 쓴 남자가 눈에 띄기에 "저처럼 마지막 배를 타러 오신 모양인데, 네 분이 어떤 사이십니까?"라며 말을 걸었다. 

"아내와 딸들입니다. 장인이 지난 4월에 돌아가시고 장모님 혼자 장항에 계시거든요. 그동안은 버스 타고 다녔는데, 배가 안 다닌다고 하니까 물거품이랑 갈매기랑 보면서 배를 타고 가던 일들이 생각나서 나왔습니다."

군산이 고향이면서 서천에 있는 학습지 회사에 다니며 장항 사는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는 임효승(46세)씨는 마지막 배를 딸들과 함께 타보기도 하고 장모님도 뵙고 오려고 나왔다고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는 대목장 보러 오는 어머니를 따라오기도 했고, 명절에는 영화구경 하러 다니기도 했다면서 과거를 회상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을 삽입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인터넷에 공개되어도 괜찮으세요?"라고 했더니 어디에서 나왔느냐고 되묻기에 <오마이뉴스>라고 했더니 "어라, 그러면 군산에 사세요? 군산에 기자 한 분 계시는 것 같던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름을 몰라 답답해 하는 것 같기에 명함을 건네주었더니 "예, 맞습니다. 맞아요!"라고 반가워하면서 "누군가? 했는데 이렇게 뵈어서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재미 있는 글 많이 써주세요"라며 자기 명함도 한 장 건네주었다. 아내는 남편이 애독자라며 "명함이 빨간색이라 참 예쁘네요!"라며 거들었다.

 공중비행을 하며 따라오는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던져주면서 친구처럼 어울리는 학생들.
 공중비행을 하며 따라오는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던져주면서 친구처럼 어울리는 학생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갈매기들도 운항 마지막 날을 아는 모양이었다. 먹이가 있는 고깃배도 아닌데 장항에 도착할 때까지 태극기가 펄럭이는 배 꽁무니를 쫓아왔기 때문이다. 갈매기 떼가 따라오며 '끼륵 끼륵' 소리를 합창하면서 춤추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갈매기들은 한 승객이 과자를 던져주니까 몇 마리가 내려와 낚아채고는 곧바로 솟아올라 공중을 배회했다. 그렇게 비행을 하면서도 흩어지지 않고 따라오는 갈매기들에게 11월1일부터 실업자가 되는 선원들을 위로하려고 오는지 묻고 싶었다.

멀어져가는 군산항 풍경을 감상하며 재잘대던 학생들도 갈매기 무리가 신기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반가운지 이리 오라고 손짓하면서 "쟤들도 배가 마지막 가는 날을 알고 슬프게 우는 것 같아요!"라며 웃고 떠들어댔다.

가스 냄새와 엔진소리도 정겹게 느껴져

금강호는 바람이 부는 가운데 출발했지만, 눈밭에서 썰매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기관실에서 나오는 굉음은 '이만한 바람은 이길 수 있다'는 소리로 들렸는데, 디젤엔진 소리와 배기가스 냄새도 이젠 이별이라고 생각하니까 정겹게 느껴졌다.

 저녁 6시15분 마지막 배가 장항을 출발하자 승객들이 2층으로 올라가 장명수 선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다른 배 같으면 통제 때문에 2층에 올라가지도 못하지요.
 저녁 6시15분 마지막 배가 장항을 출발하자 승객들이 2층으로 올라가 장명수 선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다른 배 같으면 통제 때문에 2층에 올라가지도 못하지요.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금강호 객실은 극장식으로 되어 있는 다른 유람선과 달리 종으로 네 줄씩 늘어선 긴 시트가 자리 잡고 있어 전철처럼 승객이 마주 보게 되어 있는데, 승객이 많던 시절에 수송력을 중시한 구조로 보였다.

보통 유람선들은 객실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는데, 금강호는 운항 구간이 짧아서인지 평소에도 통제하지 않는다. 다만, 바람이 세게 부는 특별한 경우에 통제하는데 평소에는 선원들과 고달픈 삶과 어지러운 세상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시선을 돌리니까, 시골집 싸릿대 울타리처럼 질서정연하게 박아놓은 기둥들이 김 양식장을 떠올리게 했는데, 군장대교 공사를 하기 위해 가교를 설치하는 중이었다.

군산-장항 뱃길을 대신해줄 군장대교는 군산시 해망동 수산물종합센터 옆과 장항읍 원수리 국도 4호선 종점 지역을 연결하는 연장 3125m의 왕복 4차선 교량으로, 바다를 횡단하는 1930m 다리와 1195m의 접속도로로 구성되며 공사비만 1508억 원이 든다고 한다.

장항 다방에서 마신 1천 원짜리 커피

오후 4시30분 군산에서 출발한 금강호는 15분 후 장항 나루터에 도착, 승객 14명을 내려놓고 기다리던 승객들을 태우고 곧바로 군산으로 돌아갔다. 군산에서 막 배는 6시이고 장항에서는 6시15분이어서 우리는 1시간쯤 장항시내를 구경하고 마지막 배를 타기로 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 촬영장이기도 했던 구 장항역 앞 전원다방. 필자도 달콤하고 상큼하고 씁쓰레한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지요.
 영화 ‘살인의 추억’ 촬영장이기도 했던 구 장항역 앞 전원다방. 필자도 달콤하고 상큼하고 씁쓰레한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지요.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따끈한 차를 한잔하고 싶은데 마땅한 다방이 보이지 않아 총각 때 추억이 서린 전원다방을 찾아갔다. 전에 왔을 때는 문에 열쇠가 잠겨 있었는데 열려 있어 반가웠다. 반가운 마음으로 문을 살짝 여니까 박쥐가 날아다닐 정도로 캄캄해서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사람이 없으면 문을 잠가야지 왜 열어 놓았는지 궁금했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작은 길로 들어서니까 '연꽃 다방' 간판이 보여 들어갔더니 역시 손님이 없어 썰렁했다. 그래도 40대로 보이는 여인이 내실에서 뛰어나오더니 "하이고, 어서 오세요!"라며 친정오빠 맞이하듯 해서 썰렁함을 조금 가시게 했다.

다방에서 따끈한 차를 마시며 30분가량 대화를 나누고 5시 45분쯤 나왔는데, 요금을 지불하고 조금 늦게 나온 지인이 놀라기에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시골 다방이라고 하지만, 찻값을 3천 원밖에 받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얘기를 듣는 순간, 30년 전 다방에서 차를 마시고 나온 기분이 들었다.

80년 뱃길 마지막 배표를 선물 받다

 마지막 날 마지막 배 승선권. 작은 종이쪽지이지만 큰 의미가 담긴 선물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지막 날 마지막 배 승선권. 작은 종이쪽지이지만 큰 의미가 담긴 선물이라고 생각됩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장항 나루터에 도착하니까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는데, 불빛이 반짝이는 군산 쪽을 바라보니까, 갑자기 상념에 잠기면서 온갖 감회가 몰려왔다. 마음을 가다듬고 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데 지인이 무엇인가 건네주었다. 승선권이었는데, "훗날 경매에 내놓으면 몇 십만 원짜리는 될 겁니다!"라며 껄껄 웃었다.

승선권을 받아 지갑에 넣으면서 "마지막 날 배표니까 보물처럼 보관할게요!"라고 인사를 건네고 80년 뱃길 마지막 날 마지막 배 금강호에 올랐다. 객실에 들어서니까 군산에서 우리와 함께 건너온 손님이 대부분이었고, 흥분된 표정이었는데, KBS 대전 방송국 PD와 기자들은 '인사이드 충청' 프로그램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창 밖을 보니까 굵은 빗줄기가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승객 한 사람이 놀라며 "어, 비가 오네!"라고 하자, 술에 취해 "50년간을 타고 댕기던 배여!"라고 소리치던 아저씨 시선까지 한 곳으로 모였고, 일부 승객은 "뱃길이 끊긴다니까, 하늘도 슬퍼서 우는 모양이네!"를 합창했다.

 군산-장항 80년 뱃길을 마감하는 금강호가 장항에서 마지막 승객들을 태우려고 항구에 접안하고 있습니다. 작은 역사를 기록하는 순간이라고 해도 과한 표현은 아니겠지요.
 군산-장항 80년 뱃길을 마감하는 금강호가 장항에서 마지막 승객들을 태우려고 항구에 접안하고 있습니다. 작은 역사를 기록하는 순간이라고 해도 과한 표현은 아니겠지요.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