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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강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영화 <선샤인 클리닝>의 싱글맘 로즈(에이미 아담스 분)가 자신에게 말하는 주문이다. 로즈와 불륜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남자친구는 자신의 가정을 깨고 로즈에게 결혼반지를 건넬 마음이 없다.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그를 기다리다 로즈는 "그래 난 빌어먹을 실패자(loser)야"라고 울음을 터뜨린다.

한국이었다면 '혼인빙자간음죄'가 로즈를 구제해줬을까? 형법 제304조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판례에서는 범인이 '정교의 수단으로 혼인을 빙자'할 것과, '처음부터 범인에게 혼인할 의사가 없었다'는 요건을 따져, 실제 증명은 어렵다.

누가 로즈를 순수한 처녀양으로 만드나

<아시아투데이>가 보도한 검찰과 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 3년간 혼인빙자간음죄로 접수된 사건 수는 2007년 601명, 2008년에 559명, 2009년 7월까지 285명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기소가 이뤄진 사건은 각각 34명, 25명, 16명,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더욱 줄어들어 각각 6명, 8명, 3명에 불과하다. 2000년대 들어 실효성 논의가 제기되어온 사문화한 법인 셈이다.

물론 처벌 사례가 줄어든다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를 진정 보호하는 법이라면 존치를 재고할 여지가 있다. 2002년 헌법재판소에서 해당 법의 위헌 소송을 놓고 7대2로 합헌 결정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의 비범죄화 추세와 더불어 한국의 성윤리 변화도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여성의 성에 대해 보수적이며 따라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한국 여성의 현실을 고려한 결정이다.

그러나 백 번 양보한다 하더라도 혼인빙자간음죄가 탄생한 배경과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는 목에 걸리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결혼을 전제로 여성의 정조와 순결을 강요하는 데다가, 미성년자나 심신미약자와 같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차별적인 인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범인을 처벌하기 위해서라면 로즈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순수한 처녀양이 되어야 한다.

강간죄 등 형법 개정 맥락과 함께 이해해야

게다가 로즈가 성전환자라면 어쩔 것인가? 누리꾼 pooh(40대, 남성)는 "왜 성문제의 피해자는 여성인가"라며 변화된 성 현실에서 피해자 개념이 협소함을 지적했다. 최근 남성 성폭력 피해자와 성전환자 피해자도 증가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성범죄의 객체를 '여성'에서 '사람'으로 추상화하는 추세다. 현재 논의 중인 한국의 형법 개정안도 성폭력 피해 객체의 확장과 유사성교행위의 강간에 준한 처벌을 골자로 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너무 낮으며 보호가 필요하다"는 누리꾼 shopd(30대, 여성)의 우려도 일리있다. 한국 여성의 경제참여, 정치권한부여 등을 보여주는 남녀격차지수(Gender Gap Index:GGI)는 세계 88위로 아프리카 튀니지 등과 함께 최하위권이다. 로즈처럼 "결혼 그까이꺼"라며 털고 일어나기엔 현실이 냉랭하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혼인빙자간음죄 폐지 논란은 단순히 "이제 남자들 처벌 안 받는대요"가 아니라 실효성 있는 성범죄 처벌을 고민하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종합적인 형법 개정안은 강간죄의 친고죄 폐지, 가중처벌 친족범위를 4촌 이내 인척까지 확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죄에 업무, 고용 외 종교, 교육 관계도 명시할 것 등을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로즈가 꿋꿋이 자립하기 위해서, 성평등 실현을 헌법 차원에서 명시한 독일, 스위스처럼 '보호가 아닌 동등한 권리' 규정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개헌안도 함께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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