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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를 청문한다

 

고위직 인준을 위한 국회 청문회를 보고 있으면 청문회를 통하여 국민들은 더욱 마음에 상처를 입고 당사자들은 통과하지 못하면 세상의 뒤안으로 고개를 떨구며 사라지거나 통과되었더라도 뻔뻔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요즈음 청문회인 듯합니다. 어떤 이는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느냐고 하고, 어떤 이는 우리에겐 들보가 너희에겐 티 밖에 안 되느냐고 억울해 하기도 합니다.

 

사실 한 때는 위장전입이나 논문 이중 게재, 병역 기피 의혹, 부동산 투기, 자녀의 이중 국적 등 숱한 사유들이 한 순간에 공직 후보자를 퇴장하게 만드는 사안들이었는데 지금은 "죄송합니다." 한마디면 통과되는 일이 되었습니다. 참 너그러운 세상이 된 것인지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중 잣대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또 한 번 정권교체가 되어 보아야 알 것 같습니다.

 

지난 번 검찰총장 후보자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거짓말만은 안 된다고 일침을 가하자 그만 쓸쓸히 사라졌습니다. 그 효과인지 이젠 모두 인정하고 사과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허물없고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사실은 청문회에 선다면 하루도 못 견딜 것입니다. 이미 경험해 보기도 했구요. 사실 여부를 떠나서 여론이 어떻게 쏠리는가에 따라 그 때 그 때 다른 것이 청문회인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 여론은 참 관대(?)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의 행적이 우리가 저지른 죄에서 몇분의 일이나 될까요? 고위 공직자가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법을 잘 지키는 건데 하며 후회를 하겠지만 사람의 삶이 어디 그렇습니까?

 

오늘 아침 마태복음을 읽었습니다

 

예수는 그의 공생애동안 끝없는 청문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 돈이 뉘 돈이냐? 너는 누구의 자손이냐? 이 간음한 여인을 어찌하랴? 에서부터 이 돌로 빵을 만들어 보아라!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기적을 보여줘라, . 예수를 적대했던 바리새파만 그를 시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군중들도 끝없이 예수를 청문했습니다. 그 때마다 예수는 참으로 기막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요즘 기독교인들이 숭배하는 성경입니다. 때로는 우문을 현답으로, 청문자의 사악한 마음을 꿰뚫는 송곳 같은 대답으로 야단맞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격려로,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일침의 교훈으로 그렇게 사람들과 묻고 대답하고 간 예수. 그것은 그저 성경에 있을 뿐이고! 우리의 현실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한 쪽은 죽이기 위해, 한 쪽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살리기 위한 청문회가 되었으니 결과는 어떻게 되어도 본전도 못 건지게 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집단은 검찰입니다. 그들은 일년 가야 한 사람도 구속되거나 징계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별로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특히 법원을 왔다갔다 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제일 썩은 집단이라고 합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느냐 아니냐가 드러나느냐 아니냐의 기준이라는 말이겠지요.

 

미국의 오바마는 검둥이(이것은 한 때 씻지 못할 원죄였다)에 마약까지 한 적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미국 청문회가 대한민국보다 수준 높은 청문회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지만 만약 오바마가 대한민국 청문회에 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신은 왜 검죠?  언제부터 검었습니까? 검은 얼굴로 많은 사람들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이라도 검은 얼굴을 바꿀 용의는 없습니까? 마약을 맛보았다구요?  그런 일을 지금도 하시나요? 그런 몽롱한 정신으로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겠습니까?" 이 때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검은색은 싫어, 마약은 더더욱 안 돼, 며 외칠 것입니다. 한 때 아니 지금도 우리의 색깔론이 이와 다르지 않고 한 때의 실수로 받아 들이는 우리의 관용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한 상원의원이 그 오바마에게 손가락질 했다고 여론으로부터 온갖 뭇매를 맞았습니다. 그냥 저는 씁쓸한 뿐입니다.

 

저는 지금과 같은 청문회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낙마를 해도 설령 통과를 한다 해도 상처만 남고 두고두고 그 영향력이 우리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허나 형식을 채울만한 성숙이 없다고 형식마저 버릴 수 없음이 또한 세상의 이치인지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지요. 우문현답을 할 줄 알고 그것에 환호하는 아름다운 청문회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어쩌면 청문회를 무사통과하는 사람일수록 완벽한 위선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 것이 바로 우리들 아닐까요?

 

무엇보다 군중이 중요합니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할 때 스스로를 돌아보고 삿대질을 멈추고 발길을 돌리는 군중이 있었기에 그들의 양심을 굳게 믿었던 예수는 현답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군중이 그런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현답을 하지 못하는 공직후보자가 청문회를 유감스럽게 하는 것이겠지요. 그것도 아니면 질문자가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자 일 것입니다.

 

이번 한주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청문회를 보시렵니까?

 

위선자로 보시렵니까? 그래서 돌로 치시렵니까?

 

뒤돌아 서 가시렵니까?

 

그냥 굿이나 보고 마시렵니까?

 

우리의 청문회는 이렇게 우리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求道의 길을 가는 여러분께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2009년 9월 14일

 

경기북도 한탄강가에서 이 철 우(전 국회의원)

덧붙이는 글 | 이글은 필자의 블로그 http//naver.blog.unikop.com에 실려있습니다


태그:#청문회 , #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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