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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곳이다. 피렌체에 취한 사람들이 찾는 곳은 강변이고 그 강은 바로 아르노 강(Arno River)이다.

피렌체에 취한 내 눈 앞에 아르노 강의 잔잔한 물결이 들어왔다. 강폭은 그리 크지 않지만 다른 유럽의 강들과 같이 강변까지 강물이 가득 차 있다.

어쩌면 이렇게 물빛과 하늘색이 고울까? 이탈리아의 중부지방 토스카나(Toscana)의 평원에 자리 잡은 피렌체는 그 풍광이 너무나 풍요롭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유화들이 왜 밝은 색감으로 가득 차 있는 지는 여름의 토스카나 지방과 피렌체를 여행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직접 발을 디디고 현지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를 보다 더 손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아르노 강물은 내가 태어났던 1966년에 큰 물난리를 겪었다. 당시 범람한 아르노 강물이 피렌체의 강위의 문화재들까지 삼켰다고 하니 엄청난 크기의 홍수였던 모양이다. 그 홍수로부터 내 나이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내 머리 위에서 작렬하는 태양이 40년 넘는 세월을 비추었을 것이고 베키오 다리 주변도 강렬하게 비췄을 것이다.

피렌체의 가장 오래된 다리인 베키오 다리는 가장 아름다운 다리이기도 하다.
▲ 베키오 다리. 피렌체의 가장 오래된 다리인 베키오 다리는 가장 아름다운 다리이기도 하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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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오 다리(Ponte Vecchio) 위로 올라갔다. 아니, 눈에 보이는 경치는 다리 안으로 들어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당시 홍수의 흔적이야 남은 게 없고 당시 큰 피해를 보았던 베키오 다리도 지금은 튼튼하게 서 있다. 베키오 다리의 가게들은 다시 보수되고 말끔하게 페인트칠 되어 있다. 하지만 건물의 오랜 창문에서는 세월이 느껴진다.

나는 다리 위에 걸린 하늘이 이토록 푸르고 높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탈리아의 하늘은 어느 나라의 하늘보다도 푸르고 푸르다.

  "여보! 내가 매일 근무하는 빌딩 45층에서 보면 서울의 하늘이 푸르고 시야가 트인 날이 일 년에 10일도 안 돼. 피렌체도 그렇고. 이탈리아는 어디를 가더라도 왜 이렇게 하늘이 파랗지?"

  "진짜 하늘이 물감 풀어놓은 듯이 파랗고 먼지도 없고 시야가 시원해."

나는 문득 초등학교 때 우리나라의 자랑거리가 높고 푸른 가을하늘이라고 교육받던 생각이 났다. 당시 빈곤한 나라에 자랑할 게 없어서였을까? 지금이야 우리나라가 앞서가는 것도 많고 공해도 많아서 더 이상 그런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후진국 시절에 내세울 게 없던 나라의 국민들은 푸른 하늘이라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침의 베키오 다리는 밝은 햇살을 온몸에 받아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 원래 이 다리 위에 있었다던 대장간, 푸줏간, 가죽공예점 등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당시에는 다리 위에 역한 냄새가 가득했을 것이지만 지금은 아무 냄새도 나지 않고 위생상의 문제도 없다. 다리 위에는 잘 치장된 금은 세공품 가게의 쇼 윈도우가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말끔하게 보수된 다리 위의 가게들이 이어진다.
▲ 베키오 다리 입구. 말끔하게 보수된 다리 위의 가게들이 이어진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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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양편에는 높은 건물들이 시야를 막고 있어서 마치 중세의 한 골목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다. 다리 위에 기나긴 역사를 과시하는 가게들이 3~4층 높이로 서 있다. 다리의 가게들은 총 몇 층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강 위에 튀어나온 모습들이 불규칙하게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무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가게들같이 보이지만 가게들을 받치고 있는 다리 교각은 굳건하게 서 있다.

14세기 중엽에 완성된 베키오 다리는 아르노 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기도 하지만 피렌체에서 가장 멋진 다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리 위는 온통 관광객들로 가득 차고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강 위의 다리 하나도 디자인을 가미하여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그 위에 역사가 축적된다면 이렇듯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는 것이다.

다리 위 가게들의 위층은 가게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고 무언가 길게 이어져 있는 듯한 구조물이다. 다리의 길다란 2층은 다리 건너편의 피티 궁전(Palazzo Pitti)에 거주하던 메디치(Medici )가문의 비밀통로이다. 강 위에 있고 눈에 띄는 커다란 통로여서 비밀통로라는 이름이 우습지만 이 통로를 이용하면 적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14세기 이후 피렌체의 신흥 귀족으로 떠오른 메디치 가문은 경쟁가문이자 전통 귀족가문인 파치(Pazzi) 가문과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파치 가문은 11세기부터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했던 은행 가문이었다. 파치 가문의 음모에 의해 메디치 가문의 줄리아노(Giuliano)가 피렌체 대성당에서 피습을 당하자 이 통로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파치 가문의 공격을 피해 베키오 다리의 비밀통로를 이용하던 메디치 가문은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파치 가문에 대해 잔혹한 복수를 자행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아르노강의 풍경이 아주 아름답다.
▲ 베키오 다리의 중앙 아치. 이곳에서 바라보는 아르노강의 풍경이 아주 아름답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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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족과 함께 베키오 다리를 천천히 걸었다. 베키오 다리 중앙에는 3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시원스런 공간이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가족과 함께 편안히 아르노 강을 바라보았다. 피렌체의 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다리 중앙의 아치 밑에서 바라보는 아르노 강 전망이었다.

다리 중앙의 한편에는 피렌체 역사와 관련 있을 듯 싶은 한 인물의 청동 흉상이 여름 햇살 아래 서 있었다. 흉상의 대리석 받침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피렌체 출신의 유명한 금세공사이자 조각가인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1500~1571년)였다.

그의 얼굴에는 생전의 성격이 드러나 있다.
▲ 벤베누토 첼리니의 흉상. 그의 얼굴에는 생전의 성격이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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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의 표정이 살아있는 게 신기하지 않아? 이 사람이 생전에 장난기도 많았지만 오만한데다가 성격까지 거칠었대. 이 사람은 여자와 술, 결투와 온갖 악행을 즐겼던 사람이야. 생전에 허영심 많고 안절부절했다는 사람이야. 그 성격이 청동상에 고스란히 남아 있지 않아?"

  "진짜, 눈빛도 그렇고 이마를 찡그리고 있네!"

그가 만든 장식조각은 명품으로 가득 차 있고 그를 기념하기 위해 이 동상을 만들었겠지만 나는 이 동상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동상의 얼굴에 동상 주인공의 성격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동상의 주인공이 살아나는 듯한 표현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다리는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피렌체가 낳은 시성(詩聖), 알리기에리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가 바로 이 다리에 등장한다. 단테는 그의 운명적인 연인, 베아트리체(Beatrice, 1266?~1290)를 이 다리에서 처음으로 만나 사랑을 느꼈다고 한다. 이 운명의 다리에서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일생에 단 한 번 보았을 뿐이고 그녀에게서 평생 사랑을 느꼈다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순수함을 이야기할 때 주로 동원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단테가 직접 쓴 글을 보면 그는 9살(1274년) 때 아버지를 따라 베아트리체 집의 잔치에 갔다가 한 살 아래인 베아트리체를 처음 보고 사랑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9년 후에 베키오 다리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나가는 베아트리체를 우연히 스쳐 지나면서 보았다고 한다. 이 2번의 만남이 단테와 그녀가 이어진 인연의 전부였다.

부자 상인과 결혼을 했던 베아트리체는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을 했다. 그 애잔함이 단테의 상상력과 흠모의 마음을 더 크게 했을 것이다. 단테의 저서, 신곡(La divina commedia)을 읽으면, 단테는 실존했던 베아트리체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쳐 지나가는 여인에게서 행복을 느끼고 그녀를 영원한 여성으로 평생 찬미하는 감정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시 인구가 많지 않았던 피렌체에서 평생 2번 밖에 만나지 않았다는 것도 수긍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나는 단테가 자신의 짝사랑을 너무 신비스럽게 포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의 역사를 깊게 파고 들어가면 평소의 지식과 어려서부터의 환상은 깨어지게 마련이다. 대단한 문장력을 가지고 있던 단테는 아마도 현실과 조금은 동떨어져 살던 몽상가였던 것 같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이야기는 단테라는 문인의 상상력의 산물일 것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베아트리체, 나의 아내는 조그만 여자와 함께 내 앞을 걷고 있었다. 조그만 여자인 나의 딸은 작은 베아트리체였다. 나는 평생 2번이 아니라 매일을 보고 살아가는 사랑스런 나의 여자, 나의 딸과 베키오 다리 앞에 있었다.

내 귓가에는 왠지 이 고색창연한 베키오 다리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조용필의 노래 '슬픈 그대 베아트리체'가 윙윙거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탈리아, #피렌체, #베키오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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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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