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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안 내고 서울에서 뭐 하요?"
"바이어 만나려고요. 내일 내려가요."

햇볕도 좋고 바람도 좋아 오랜만에 소금밭이나 구경하려던 참이었다. 최신일(37)씨와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려 올라간다. 서른 초반을 막 넘긴 그의 소금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염전구조와 기술, 천일염이 가야 할 방향까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천일염은 한 포대(30kg)에 몇 천 원에 거래되지만 최씨는 자신이 만든 소금을 수만원에 판매한다. 똑같은 바닷물을 가지고 만드는 소금인데 뭐가 다르냐는 주변 생산자들의 비난에도 그는 자신이 만든 특별한 소금을 가지고 식품회사, 백화점, 외국 바이어를 직접 만났다. 소금을 내지 않는 날, 그가 서울에 머무르는 이유다. 시간이 나면 서울 고급아파트 매장에서 주부들이 소금을 선택하는 것을 관찰한다. 최씨는 국제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명품소금을 지향한다.

서로 도움 없이는 소금농사를  지을 수 없는 최진산(60)씨와 최신일(37) 부자는 도초에서 소금농사를 짓는 장인이다.
 서로 도움 없이는 소금농사를 지을 수 없는 최진산(60)씨와 최신일(37) 부자는 도초에서 소금농사를 짓는 장인이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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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부자에게 염전과 천일염은 삶이고 존재의 이유다.
 최씨 부자에게 염전과 천일염은 삶이고 존재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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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시장이 개방되자 자비를 털어 개발회사와 함께 천일염 자동화시설을 연구했다. 2006년에는 염전업계에서는 세계 최초로 ISO 22000 인증을 획득했다. 못을 비롯해 녹이 생기는 철제를 스테인리스로 교체했다. 수로에 강력한 자석을 설치하여 미량의 금속성분도 제거했다. 소금을 보관하는 해주도 슬레이트에서 PC판넬로 교체했다. 개발 완료 단계에 있는 친환경장판도 교체를 앞두고 있다. 소금창고 옆에는 화장실에 갈 때 사용하는 슬리퍼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렇게 환경을 바꾸었지만 자신의 염전에 70점의 성적을 매긴다. 앞으로 개선할 점이 많다는 의미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보통 12-15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염전을 10단으로 축소했다. 결정지에 함수를 많이 넣어 물속에서 입자가 큰 소금을 얻는 것도 최씨 부자가 연구해낸 방법이다. 보통 결정지의 함수를 증발시켜 소금을 얻지만 최씨가 선택한 방법은 다르다. 소금 뒷맛이 쓰지 않고 달콤하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종자장을 만드는 식품회사, 대형백화점 등에 납품을 하고 있다. 대기업들도 최씨가 만든 천일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좋은 소금을 제값에 팔려고 노력하던 최씨는 최근에 생각을 바꾸었다. 혼자 좋은 소금을 만들어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작목반이고 단지화다. 천일염작목반을 만들었다. 그는 생산자와 지자체와 기업이 결합된 새로운 방식의 천일염 가공공장을 꿈꾼다.

최씨는 1970년 신안군 도초면 수다리에서 태어났다. 1998년 신일염전을 조성하기 시작했으니까 올해로 천일염과 인연을 맺은 것이 꼭 11년째다. 수십 년 동안 염전농사를 해온 분들은 코흘리개라고 얕볼 지 모르지만 전국의 천일염 생산자들은 그의 염전을 모델로 삼는다. 얼마 전에는 '식객'의 허영만 화백이 다녀갔다. 그리고 그의 염전을 모델로 한 만화가 소개되기도 했다.

소금시장이 개방되자 천일염 생산자들은 정부의 폐전지원정책에 맞춰 보상금을 받고 소금농사를 그만두었다. 최씨 부자는 생각이 달랐다. 염전을 현대화하고 시설을 확대했다. 품질도 국제식품규격에 맞추었다. 국내시장만 아니라 국제시장을 노린 것이다. 이런 탓에 빚도 많이 졌다. 100여 마지기 있던 논도 팔았다. 다들 미쳤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것을 알았다. 2006년 마침내 세계 최초로 ISO22000/2005 인증을 획득했다.

최씨는 굵은 천일염만 아니라 조미용으로 가공한 가공천일염도 출시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급 상품을 만들기 위해 유명식품 가공회사와 논의 중이다.
 최씨는 굵은 천일염만 아니라 조미용으로 가공한 가공천일염도 출시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급 상품을 만들기 위해 유명식품 가공회사와 논의 중이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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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폐염전 정책을 추진할 때 논을 팔아 염전을 확대하고 기계화를 추진했다.
 정부에서 폐염전 정책을 추진할 때 논을 팔아 염전을 확대하고 기계화를 추진했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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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패질을 하던 최씨 아버지가 염전둑에 걸터앉았다.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최씨가 일찍 천일염 생산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아버지의 가르침 덕이다. 꼼꼼하고 진취적인 성격인 최진산(60)씨는 1967년 18세의 나이로 토판을 시작해 40년째 소금농사를 짓고 있다. 아버지의 40년 소금인생에 자신이 경험한 10년을 얹었다. 신안군에서 뽑은 천일염 장인에 선정되었다. 전라남도에서 천일염사업에 공이 인정되어 '자랑스런 전남인 상'도 받았다.

소금을 내는 날은 오후 4시 무렵부터 늦게까지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일을 해야 한다. 오전에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런데 양수기가 말썽을 부렸다. 최씨 아버지는 오전에 양수기를 수리하느라 오전에 땀을 흘렸다. 이게 화근이었다. 이제 시작인데 오늘을 일이 쉽지 않을 모양이다.

신안군 도초면 신일염전 대표 최신일(37)
 신안군 도초면 신일염전 대표 최신일(37)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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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포구가 시끄럽다. 흑산도를 갔다 온 관광객들이 무리지어 선창에 내렸다. 기다리던 관광객들은 쾌속선에 오른다. 이들은 도초도와 비금도의 섬여행을 온 사람들이다. 염전에서 체험을 하거나 포구 가게에서 소금과 젓갈을 구입해 간다. 인근 해역에서 지역주민이 직접 잡은 새우와 천일염을 넣어 발효시킨 새우젓은 인기가 좋다. 백화점이나 기업에 판매하는 것보다 현지에서 판매하는 것이 지역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천일염 명품화는 천일염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현지 농수산물과 천일염이 결합하고 지역문화로 포장되었을 때 경쟁력을 갖는다. 다행스럽게 우리지역 천일염 생산지역이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에코라벨로 천일염에 날개를 달 수도 있다. 이것이 관광객들이 원하는 상품이다. 이게 슬로푸드고 로컬푸드다. 전남의 경쟁력이 섬에서 시작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소금여행, #신일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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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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