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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아버지가 없다면 어떨까?

만날 술에 취해서 혀 꼬인 큰 소리로 엄마와 시비하는 소란이 잠자리에 든 우리를 깨웠을 때, 동생과 나는 둘 다 깨어있음에도 눈을 꼭 감고 자는 척 하고 했다. 휴일이나 퇴근 후에 집안일과 우리들의 문제로 싸움이라도 있는 때엔 동네가 떠나가라 큰 목소리로 아들이 있으나 없으나 신경 쓰지 않고 소리소리 지르는 모습이 진저리쳐지기도 했다.

잠에서 깨기 전에 출근, 잠자리에 들고 나서 퇴근하시는 아버지. '돈 벌어 오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어린 시절 가끔 휴일 틈을 내서 숙제를 도와준다고 하시다가 부족한 아들의 학습능력과 태도를 군대식 얼차려로 무지막지하게 야단을 치고 흥분하시는 모습에 온가족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일도 연중행사였다.

나 뿐 아니라 동생도 마찬가지였는데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잘 대응하는 동생과 달리 나는 두려움에 아는 것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엄한 아버지얼굴과 꼭 쥔 커다란 주먹 앞에서 백지장같이 하얗게 변하는 머릿속과 눈앞은 먹물처럼 까매지는 덕택에 더 길고도 지루한 얼차려를 받고는 했던 것이다. 어찌나 심하게 했는지 지금도 아버지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왜 그렇게 아들을 잡으셨어요?" 하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동생의 경우엔 초등학교 삼사 학년 때인가로 기억하는데 집 앞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아버지께 걸렸다. 문제는 추궁과 다짐 속에서 태운 성냥의 개수를 물었는데 야단맞기가 싫어서 동생이 개수를 줄였다가 금방 추적에 의해 걸린 일이었다. 이 일로 동생은 죽지 않을 만큼 맞고 싹싹 빌고 다시는 거짓말 안하겠다는 다짐을 수십 번이나 받은 뒤에나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풀려났는데 이때 나는 그 참상을 옆에서 숨죽이며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아, 거짓말을 절대로 하면 안 되겠구나'라기 보다는 걸리면 죽겠구나라는 교훈이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걸리지 않게 하고 되도록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겠다'가 아버지를 대하는 우리 형제의 자세였다.

그러다 사춘기를 지날 즈음에 '아빠가 없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끔 했었고 곧 돈 없이 우리 가족은 불행해질 것이다, 라는 맹랑한 상상으로 가로막히기도 했다. 더욱 문제는 고등학교 즈음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거의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내 스스로는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흘릴 눈물에 앞서 앞으로 나도 동생도 대학을 가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었다니 얼마나 사람이 그때에도 간사한지(물론 지금도 그렇게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아들을 뒤에 태우고 달리는 아버지. 한번이라도 아버지의 등을 느껴보고 싶다.
▲ 책표지 아들을 뒤에 태우고 달리는 아버지. 한번이라도 아버지의 등을 느껴보고 싶다.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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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서(충격을 걱정해서 인지 경황이 없어서인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우리를 거의 열흘이 다 되어서야 아버지의 면회를 하게 했다) 비쩍 마르고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칭칭 동여맨 얼굴과 몸을 보면서 겨우 아버지의 주사가 꽂힌 손을 잡고 말은 못했지만 꼭 일어나세요 라고 마음으로 소극적인 전달을 시도했던 것은 나나 동생이 같았을 것이다(동생도 아무 말 없었다).

몇 개월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그리고 퇴원으로 이어진 기적 같은 일에 우리식구 뿐 아니라 주변사람들도 경이로워 했다. 함몰된 뼈와 근육으로 몹시 한쪽으로 기울어진 몸을 했지만 아버지는 걷기도, 먹기도, 말도 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몹시 다행이다 하면서 행여나 내가 과거에 했던 몹쓸 생각들이 효과를 나타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사실 오늘날 이렇게 낙천적이며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자아를 가지게 된 것은 (물론 자평이라 객관성은 떨어지겠지만) 어머니의 영향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 아버지의 좋은 성격을 받기도 했지만.

나이를 들면서 나도 아버지가 되고 아이를 대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 내가 받았던 아버지의 행동들이 '이해'의 수준에 들기 시작했다. '동의'하기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이 얼핏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 마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아버지는 '좋지 않은 것'들로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고 기껏 좋은 점이란 한손가락에 꼽을 정도, 어린 시절의 여행 추억뿐이었다.

나는 어떤 아버지가 돼야 할까.

조두진의 소설은 섬세하면서도 건조한 문체가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말랑말랑한 묘사에 눈이 닿으면 빠져서 묻히듯 잘 읽힌다. <도모 유키>때도 그랬지만 <아버지와 오토바이>는 오직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자신의 삶이나 인생은 없이 '희생'만으로 평생을 보내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식에게 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도 가장으로서 최소한 '처자식 밥 굶기지 않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몸이 불편한 큰 아들을 위해 최선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삶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죽음과 이를 조사하는 형사의 부름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아버지와 가장 오랜 세월을 '노가다판'에서 '지기'로 지냈던 진기풍이라는 사내의 입을 통해서 아버지의 진면목이 대부분 그려진다. 실상 아들이라고 하는 엄종세는 아버지와 만나지도 통화하지도 않은 채 살아왔기 때문에 어떤 인간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왜 그렇게 만나기 힘들었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이런 점이 오히려 아버지 살해사건을 놓고 아들인 엄종세를 의심하는 형사의 추정에 힘을 실어준다.

결국 단순 뺑소니가 살인범이었음이 밝혀지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아버지의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아들은 스스로의 삶 또한 슬며시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부도덕한 일을 통해서 돈을 모으고 오로지 그 돈을 처와 자식에게만 썼던 한 인간. 그를 통해서 과연 이 사회에서의 아버지란 어떤 존재이며 가족과 그 안의 아버지의 역할은 어때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아버지는 우리와 떨어져 사는 게 좋으십니까? 아버지는 왜 사십니까? 어머니는 늘 한숨만 쉽니다. 어머니도 싫고 아버지도 싫고 집도 싫습니다. 요즘 저는 집을 나가버리고 싶습니다.

오 학년때 엄종세가 보낸 편지에 답장하는 아버지의 편지는 아버지가 가진 삶의 철학을 보여준다. 어쩌면 우직하면서도 요즘 유행하는 '바보'같은 인생관을 가진 한 인간이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기러기 아빠'와 비교하면 비교가 될까?

종세야, 왜 사느냐고 물었니? 어린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아버지에게는 원대한 목표가 없다. 그런 것이 있으면 좋겠지.......하지만 나는 그런 게 없구나. 아버지는 다만 너희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열심히 공부해서 반듯한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종세야, 아버지는 무엇이 되고자 살지 않는다. 우리 식구들이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아버지에게는 가장 소중한 일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해야 하는 일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래서 너와 너의 형이 밥을 먹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너희 어머니와 너희들이 굶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본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오토바이/조두진 지음/예담/10,000



아버지의 오토바이

조두진 지음, 예담(2009)


태그:#아버지, #아버지의인생, #아버지와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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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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