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당골네가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 놓고 숟가락 장단을 맞추며 중얼 거렸다. 가끔 할머니 소리도 섞였다. 나는 이불을 둘러쓰고 귀를 막았다. 아무리 귀를 틀어막아도 소리는 가슴을 파고들었다. 굿소리는 새벽까지 이어지고 내 머릿속에는 칠판에 '미신타파'라고 글씨를 써 놓고 종례를 하신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다. 굿을 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제 그 소리는 가슴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다시 들을 수 없는 잃어버린 소리다.

 

어둠을 뚫고 징소리가 올린다. 장단에 맞춰 소리를 풀어낸다. 저승의 육갑을 풀어낸다는 '희설'이다. 진도 씻김굿 전수조교 송순단이다. 어릴적 가슴속을 파고들던 소리다. 할머니가 장독대에 정한수를 올려놓고 빌던 그 소리다. 잠들어 있던 그리움이 살아난다. 두 줄기 눈물방울이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관객들이 모두 숨을 죽인다. 희설이 끝나자 거짓말처럼 정신이 맑아진다.

 

 

흥보가 잘산다제. 배가 아파서 못살것다.

 

오장육보에 심술보 하나 얹은 놀부역을 맡은 이는 강준섭이다. 다시래기 기능보유자다. 연기가 아니다. 얼굴에 오기기 창창하다. 연기가 삶이고 삶이 연기였던 사람이다. 단막창극이 무대에 올랐다. 끼를 어찌 하지 못하고 유랑극단에서 잔뼈가 굵은 그다. 무대에서 그의 몸짓과 소리에 카리스마가 넘친다.

 

북을 메고 무대에 올라선 노인의 모습은 어떤가. 어떤 젊은이보다 혈기가 넘친다. 진도 소포리가 고향이다. 칠순을 맞은 김내식 어르신이다. 젊은 사람들 북춤에서 볼 수 없는 여유와 선이 보인다. 북으로 추는 살풀이다. 진도 북춤은 양손에 채를 쥐고 빠른 잔가락과 엇박을 많이 사용하는 즉흥성이 돋보인다. 고인이 되어버린 예인 박병천의 북춤을 본 적이 있다. 눈물이 났다.

 

아무래도 진도소리의 맛은 '진도 아리랑'에 있다. 즉흥성과 해학성으로 치자면 전국 어떤 아리랑이 이를 넘어서겠는가. 삶의 질곡을 흥으로 풀어내는 사람들이다. 평범한 일상을 뛰어난 언어감각과 소리로 형성화했다. 오죽했으면 상가집에서 가무로 상주들을 달래고 가상재의 허튼춤으로 세태를 꼬집었겠는가. 다시래기가 그것이다. 진도아리랑의 사설을 보자.

 

저 건네 저 가시나 엎으러나져라

일새나주는떼끼 보듬어나 보자

 

저건네 저 가시나 앞가심 보아라

연출 없는 호박이 두 통이나 열었네

 

가슴에 둔 여인과 연을 맺으려는 사내의 애절함이 읽힌다. 다음 사설은 어떤가. 처녀 가슴이 아무리 컸기로 호박만 했을까, 민망스러움보다 웃음이 앞선다. 곧잘 남도소리를 배우려고 진도대교가 닳도록 오가던 중앙의 소리꾼들이 결국 진도에 터를 잡은 것은 무슨 연유일까. 진도의 소리는 배울 수 있는 공부가 아니다. 아낙들의 삶이고 세월이었다. 명창의 득음과 또 다른 차원이었다.

 

 

진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방이 있다. 소포리노래방이다.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며 소리를 하다 한남례씨 대문에 간판을 달았다. 소포리는 진도를 대표하는 민속마을이다. 마을에 큼지막한 공연장도 만들어졌다. 어떻게 운영하려나 걱정도 되었지만 마을소리꾼과 진도 예인들이 힘을 모아 꾸려가고 있다.

 

진도가 배출한 예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들 뿌리를 더듬어 보면 굿으로 이어진다. 진도씻김굿은 남도소리의 뿌리다. 아니 우리 문화의 정수다. 그 굿은 당골이 주관한다. 당골판은 자신의 영업권을 가지고 있다. 봄과 가을 두 차례 '도부'라는 보리와 나락을 주었다. 이들은 어린 아이로부터도 하대를 받아야 했다. 우리 굿은 육지에서만 아니라 섬에서도 배척당했다. 예인들도 섬을 떠났다. 당골의 설움을 벗기 위해 섬을 떠났다. 이게 어디 진도뿐이랴.

 

전국 중요무형문화재가 113건이다. 이 중 전라남도가 15건인데 진도군이 남도들노래, 강강술래, 진도다시래기, 진도씻김굿 등 4건이다. 도지정무형문화재도 남도잡가, 진도만가, 진도북놀이, 소포걸군농악, 조도닻배노래 등이 있다. 사실은 진도 섬이 문화의 보고다. 섬과 섬사람들이 그대로 보물이고 보배다. 진도는 일찍부터 가락과 음률로 유명해 '율향'이라 했다. 조선말기 정치가이자 대학자 무정 정만조(1858-1936)는 민비시해사건에 연루되어 진도로 유배를 왔다. 그가 남긴 『은파유필(恩波遺筆)』에 강강술래를 이렇게 소개했다.

 

'이날 밤 여러 집안 여자들이 달빛을 바라보며 땅을 밟고 노래할 때 한 여자가 선창하면 여러 여자들은 느린 소리로 강강술래를 맞는다(是夜家家女子帶月踏歌一女子唱之衆女子曼聲應之曰强强須來)'

 

진도에는 매주 소리판이 펼쳐진다. 금요일 저녁 남도국립국악원의 '금요상설공연'과 토요일 오후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의 '토요민속공연'이 펼쳐진다. 해가 지고 난 후 저녁에는 소포리에  마을사람들이 준비한 '토요상설공연'이 있다. 잃어버린 소리를 듣고 싶거든 진도로 가보시라. 그곳에는 삶의 소리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연재한 '섬이야기'를 모아 '바다에 취하고 사람에 취한 섬여행'(Y브릭로드)을 발간 했습니다.


태그:#진도, #남도소리, #토요민속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