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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루에 한두 번쯤, 아기와 함께 마실을 합니다. 아기한테 "이야 가자" 하면 금세 알아채며 좋아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가방을 챙기고 부산을 떨면 얼른 안아 달라고 엄마나 아빠 종아리를 붙들며 고개가 뒤로 젖혀지도록 올려다봅니다.

 

 품에 안으면 아기는 앞을 보고 싶어 얼른 몸을 뒤틉니다. 포대기나 베낭포대기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안고 걸어야 하니 퍽 고단합니다. 이 나라 모든 엄마 아빠 들은 이렇게 아기를 안고 어르고 달래면서 손목이 나가고 팔꿈치가 나가고 어깨가 나가고 허리가 쑤시고 하겠구나 싶습니다. 아이가 커서 제 엄마 아빠 등과 허리를 두들겨 주고 주물러 주지 않고서야 풀릴 수 없는 몸뚱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맑고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낮나절 집을 나선 세 식구는, 시내버스를 타고 수봉공원으로 갑니다. 수봉공원에 있던 놀이기구는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거님길이 생겨 볼거리가 없지만, 인천이라는 도심지에서 제법 너른 숲을 느낄 만한 데는 이곳 수봉공원 한 곳뿐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학산과 계양산은 우리 집에서 퍽 멀기도 하고, 아직은 아기를 데리고 갈 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수봉공원 놀이기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면, 허니문카라도 타면서 아기와 함께 둥실둥실 하늘을 떠다니기라도 할 텐데, 놀이공원 시설이 오래되었다고 싹 걷어치우는 공무원 정책이 몹시 안타깝습니다. 시설이 오래되었으면 더 자주 손질하거나 고쳐 놓으면 되지 않았을까 궁금합니다.

 

 시내버스는 옛날 인천 숭의야구장 터 옆을 지나갑니다. 이곳 숭의야구장도 헐려 없어졌습니다. 공설운동장도 함께 헐려 없어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축구전용구장을 세운다고 합니다. 공설운동장과 숭의야구장은 누구나 여느 때에도 드나들며 운동을 즐기던 쉼터였는데, 축구전용구장이 되면 동네사람들은 얼마나 가까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인천에는 월드컵경기장이 버젓이 있는데 따로 축구장을 하나 더 지어야 할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시내버스는 달리고 달려 제물포역을 지나 수봉산으로 엉금엉금 올라갑니다. 아기를 낳기 앞서는 자전거를 타고 오르던 길인데, 버스로 오르니 손쉽게 금세 오릅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오르니 시간을 아끼고 품을 덜 들인다 하겠으나, 어쩐지 길맛을 못 느끼겠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오르거나 옆지기하고 손을 잡고 두 다리로 올랐을 때에는 골목골목 촘촘히 누비면서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낱낱이 느낄 수 있었는데.

 

 

 곧바로 공원 안쪽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동네를 살짝 한 바퀴 돌고 들어가기로 합니다. 골목집 담벼락에 붙은 괘종시계를 보고,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알림판 위로 자라는 호박을 보며, 골목집 담벼락 너머로 가지를 뻗친 모과나무를 봅니다. 시가지를 훤히 내려다보며 마르는 이불 빨래를 보고, 이사를 가고 오는 사람들 짐꾸러미를 봅니다.

 

 한낮이라 차가 뜸할 수 있으나, 이곳까지 차를 들이밀고 나다닐 사람은 안 많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가는 차가 거의 없다 보니 아주 고즈넉하며, 공기도 퍽 맑은 듯하고(다른 도심지보다), 공원에서 사는 새들 우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제는 율목동에서 도라지와 해바라기와 나리와 옥수수가 한 자리에서 해맑게 핀 모습을 보았다면, 오늘은 수봉공원 둘레 용현1동과 숭의2동에서 여느 사람들 삶자락과 잘 마르는 빨래 들을 넉넉히 봅니다. 담벼락 너머로 고개를 내미는 나리꽃송이도 그지없이 곱습니다.

 

 공원 한쪽 그늘진 자리에 앉으니 바람이 참으로 시원합니다. 나무그늘 바람은 더없이 싱그럽고 즐겁습니다. 아파트 같은 높은 건물도 그늘을 길게 드리워 줄 테지만, 빌딩숲 그늘하고 나무숲 그늘은 사뭇 다릅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동네 할머니하고 인사를 나누다가는, 우리가 싸 온 도시락을 먹습니다. 그러고 나서, 동네사람만 드나드는 샛길을 따라 거닐며 천천히 수봉산을 내려옵니다. 야트막하지만 제법 비알이 있는 수봉산은,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언제나 소풍을 오던 곳이라 그때에는 질려서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이제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몸이 되니, '그래도 가서 쉴 곳은 여기뿐이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숲이 없다면, 나무가 없다면, 풀과 꽃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숨을 쉬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새삼 느낍니다.

 

 아이는 어느새 잠듭니다. 잠든 아기를 안은 엄마아빠는 온몸이 땀으로 흥건합니다. 쉴새없이 부채질을 하며 아이가 더위를 먹지 않도록 애씁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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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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