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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옥룡동 대추골 산 33-7번지 일대에서 1950년 9월, 인민군에 의해 집단희생된 우익인사들의 암매장지가 발견됐다. 사진은 땅 속 20cm에서 드러난 희생자 유해.
 충남 공주 옥룡동 대추골 산 33-7번지 일대에서 1950년 9월, 인민군에 의해 집단희생된 우익인사들의 암매장지가 발견됐다. 사진은 땅 속 20cm에서 드러난 희생자 유해.
ⓒ 오마이뉴스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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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숨진 보도연맹원들의 유해발굴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번에는 인민군의 보복학살로 숨진 우익인사들이 묻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공주 옥룡동에서 희생자 유해로 추정되는 사람 뼈가 발견됐다.

20일 오후 기자와 공주 지역신문인 <백제신문> 취재팀은 공주 옥룡동 대추골로 향했다. 옥룡동 대추골은 한국전쟁 때 '인공 치하'에서 인민군에 의해 발생한 공주지역 최대 학살사건으로 최소 30여 명에서 80명이 총살돼 암매장된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암매장지가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이어서 목격자가 없는 데다 대추골에 살던 토착민들마저 대부분 고향을 떠나 정확한 유해 매장지를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지역 사정에 밝은 <백제신문> 취재팀과 작정하고 이날 매장지 찾기에 나선 것.

이날 오후 2시 반경. 증언을 토대로 우선 대추골 우측 산기슭 일대(옥룡동 149번지 부근) 를 뒤지기 시작했다. 장마 끝 높은 습도에 바람마저 통하지 않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한 시간여 동안 주변을 탐색했지만 매장지로 특정할 만한 물증이 전혀 확보되지 않았다. 매장지 찾기에 실패하고 마을로 되돌아왔다.


공주 대추골 20cm 땅 속에서 드러난 '사람 뼈'


증언을 토대로 대추골 야산일대에 대한 1차 확인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증언을 토대로 대추골 야산일대에 대한 1차 확인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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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신뢰할 만한 증언자 찾기에 나섰다. 마을에서 A씨를 만난 것은 이날 오후 4시경. 전쟁 당시 10살 남짓이었다는 A씨는 관공서에 의한 피해 사례를 들며 실명 공개는 물론 사진촬영마저 꺼렸다. 하지만 취재팀의 요청에 흔쾌히 암매장 추정지 안내에 나섰다. 대추골에서 직선거리로 300여 미터를 오르다 좌측 산기슭으로 들어서 풀숲을 헤치며 다시 200여 미터를 올라갔다.

현장에 도착한 A씨는 매장 추정지(옥룡동 산 33-7번지)를 가리켰다. 가로 20미터에 세로 8미터 정도의 크기였다. A씨는 "여기를 학살터로 알고 있지만 한 번도 확인해 본 적이 없어 확신은 할 수 없다"며 "하지만 크면서 마을어른들로부터 우익인사들이 인민군에 의해 총살돼 이곳에 묻혔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매장 추정지 한복판을 들춰보기로 했다. 암매장지가 맞다면 경험상 깊지 않은 곳에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짐작됐다. 준비해 간 삽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냈다. 누런 속살이 드러났다. 예닐곱 차례 삽질이 오갔을까? 고작 20cm 땅 속에서 나뭇가지 같은 게 드러났다. 정강이뼈로 추정되는 '사람 뼈'였다. 유해임을 알리자 흙을 헤치던 <백제신문> 기자가 놀라 뒷걸음을 쳤다. 

해당 지점은 골짜기 배수로와 인접해 있어 다른 사람의 무덤자리로는 보여지지 않았다. 또 다른 집단유해 매장지처럼 유해가 얇게 묻혀 있어 당시 집단 희생된 사람의 뼈일 가능성이 높다.  

이동일 자유총연맹공주지회 사무국장은 "오래 전부터 유해매장지를 찾기 위해 희생자 유가족들과 함께 대추골 주변을 찾아 헤맨 적이 있다"며 "발견된 지점은 그동안 유가족들이 지목한 곳과 같은 곳으로 유해매장지가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유가족들과 현재 유해 일부가 드러난 부근까지 여러 차례 갔었지만 분명한 장소를 특정하지 못해 주변을 맴돌다 되돌아왔다"고 덧붙였다.  

이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당시 군청 공무원, 우익단체 간부, 경찰 및 형무소 간수 등으로 추정되고 있다.

A씨는 "퇴각을 앞둔 때에 인민군 2명이 공주경찰서에 갇혀 있던 60여 명의 사람들을 이곳으로 끌고 왔다"며 "희생자들은 모두 흰 옷을 입고 있었고 손이 뒤로 줄줄이 묶인 채 옛 공주경찰서에서부터 걸어서 끌려 올라왔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공주경찰서가 있던 중학동에서 현장까지는 1km 정도.


7월 초, 군경이 보도연맹원 등 집단학살하자 보복살해 추정


공주 옥룡동 대추골에서 유해매장추정지 가는 길. 우측 표지판 화살표 방향이다.
 공주 옥룡동 대추골에서 유해매장추정지 가는 길. 우측 표지판 화살표 방향이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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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인사들이 집단희생된 곳으로 추정되는 유해매장지.
 우익인사들이 집단희생된 곳으로 추정되는 유해매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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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A씨는 증언이다.

"인민군들이 사람들을 이곳에 끌고 와서는 끼니를 거른 사람들에게 담배를 나눠줬다고 하데. 나도 겪어 봤는데 몇 끼를 굶은 상태에서 담배를 피우면 머리가 핑 돌고 정신이 하나도 없거든. 그리고서는 준비해온 쇠스랑이랑 괭이를 나눠주고 구덩이를 파게 시켰다는구먼. 대충 구덩이 파기가 끝나자마자 사람들을 구덩이 안으로 몰아넣고 따발총을 갈겼다는구먼. 총질을 하는 인민군이 2명뿐이라 끌려온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내뺐는데 다 죽고 두 명만 살아남았다고 하더라구."

A씨의 증언은 지수걸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공주의 한국전쟁과 전쟁피해' 논문 내용과도 일치한다. 지 교수는 "인공 시기, 공주지역에서 발생한 최대 학살사건은 추석 바로 전날, 미군이 공주로 진입하기 이틀 전인 9월 26일 옥룡동 대추골에서 발생했다"며 "총살당하기 일보 직전에 전 일본군 출신인 박모씨와 갑사 스님인 노모씨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증언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인공 시기 많은 우익인사들이 내무서나 성당 등지에서 검속되어 있었는데 인민군은 퇴각을 코앞에 두고 이들을 집단학살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대추골에서의 우익인사 학살은 전쟁 직후인 7월 초, 군경이 공주형무소에 수감된 좌익 정치범 및 보도연맹원 수 백 여명을 집단학살한 데 따른 보복 학살로 추정된다. 

하지만 희생자 수는 증언자마다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A씨가 60명이라고 증언한 반면 지 교수는 "인공시기 군농회 직원으로 교동 농협창고를 관리했던 한 피조사자는 35명이 끌려갔다가 2명이 살아나 33명이 사망했다고 증언한 바 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박모씨는 80여 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최소 30여 명에서 많게는 80여명까지 증언이 나와 있는 것.

이와는 별도로 공주지역에서 '인공 시기' 알려진 우익인사 학살사건은 탄천 화정리(꽃방 머랭이에서 우익청년단원 14명) 사건과 장기 봉안리(다파리 고개에서 6명) 사건 등이 있다.

공주, 상생과 화합의 공간으로 거듭 날 수 있을까?

공주 왕촌 살구쟁이 민간인집단희생지. 이곳은 1950년 7월, 군경에 의해 보도연맹원 등 수 백여명이 집단희생됐다.
 공주 왕촌 살구쟁이 민간인집단희생지. 이곳은 1950년 7월, 군경에 의해 보도연맹원 등 수 백여명이 집단희생됐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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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골 유해매장추정지에서 희생자 유해로 추정되는 사람 뼈가 발견됨에 따라 희생자들의 추가 유해 발굴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동일 자유총연맹공주지부 사무국장은 "그동안 유해를 발굴하지 못해 추모비 앞에서 위령제를 지내왔다"며 "좌우익을 떠나 희생된 사람들의 유해를 수습해 위로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자유총연맹공주지부는 전쟁당시 학살된 우익인사를 대략 180여 명으로 파악하고 지난 2003년 공주시 웅진동 하고개에 희생자 추모비를 건립하고 매년 10월 30일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서 군경에 의한 희생자 유해를 발굴하고 있는 박선주 유해발굴단장(충북대 교수)은 "왕촌 살구쟁이 희생자 유해발굴에 이어 대추골 희생자 유해발굴이 이어진다면 좌우 대립을 넘어 지역사회의 상생과 화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그동안 유해발굴 작업을 해온 진실화해위원회가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어 더 이상 유해발굴 계획이 없는 만큼 자치단체가 유해발굴 사업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1950년 7월 9일경 당시 공주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500~700여 명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희생된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서는 현재까지 300여 구의 유해가 발굴됐고 100구 이상의 유해가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태그:#왕촌 살구쟁이, #대추골, #우익인사, #민간인학살, #집단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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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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