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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이유는?

 

"아내의 얼굴에는 나의 영혼이 깃들어 있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한 말이 아니다. 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 클럽 회원들의 1박2일 천리포수목원 여행지에서 만난 한 교수의 발표다. 아니! 저분이 철학자인가? 아니면 수필가? 도대체 누가 저런 생각과 깊이를 나눌 수 있을까? 호기심이 더욱 깊어졌다. 계속되는 얘기와 사는 이야기를 듣다가 전율했다. 혹시?

 

그렇다! 최동석 교수. 몇 년 전 우연히 아름다운가게 책꽂이에 꽂힌 한권의 책 제목에 낚였다. 제목은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책장을 펼쳐보니 한국 관료조직의 개혁을 위한 진단과 처방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헌책이라 2천 원에 사서 차례를 들여다 본 순간 끌리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박학다식함과 한국 관료조직의 병폐를 정확히 찌르고 처방을 내놓은 통찰서이다. 3번이나 읽으며 밑줄을 긋고 필요한 페이지마다 접어 놨던 그분의 역작이다.

 

나는 몇 번이나 그 교수님을 만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식견을 가질 수 있으며 한국은행이란 거대 조직 내에서 통렬하게 호루라기를 불어도 무사했는지 듣고 싶었다. 그가 내 앞에 섰다. 얼굴은 순수함과 강직함이 묻어난다. 발표를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온 그분을  붙들고 통성명과 함께 저간의 사정을 말한 후 하루 밤 동침하기로 했다.

 

원주에서 태어난 그는 집이 가난해, 춘천에 있는 어느 교회의 장로님 도움으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그는 돈이 들지 않는 교육대학교를 마치고 5년의 의무복무 기간 동안 야간대학 경영학과를 마치고 한국은행에 입사했다.

 

그가 입사한 한국은행은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인 곳이다. 그러나 뛰어난 인재들이 모였어도 국가적 재앙을 막지 못했다. IMF경제위기의 해법을 알고 있는 인재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뭔가가 있어 실패했다는 그의 진단이다. 그는 한국은행에 근무하면서 느낀 관료조직의 병폐와 그 해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서 독일유학을 떠났다.

 

독일 기센대학에서 심리학, 경영학 등을 공부하고 그 과정에서 경영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에 복귀했지만 여전한 관료조직의 폐해에 통탄한다.

 

많은 식자들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 무능하다고 주장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전두환이나 노태우류의 인간들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하다고 평가한다. 김 전대통령을 그렇게 만든 근본적인 뭔가가 있다는 그의 진단이다. 그의 처방은 우리나라 공무원들 머릿속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관료주의의 혁신이라고 진단했다. 공무원들 스스로 관료주의 병폐를 대부분 인정한다.

 

▲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없어서 인사권자의 인사 전횡을 막을 수 없다  ▲ 한마디로 알아서 기는 아랫것들만 유능하다는 소리를 듣고 승진도 빠르다 ▲아직까지도 사무관 - 과장 - 국장 - 차관보 - 차관 - 장관의 결재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대부분의 접대비, 업무추진비는 가짜 영수증으로 지급 된다

 

철학의 부재

 

실존주의자들이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고 절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경제학자나 경영학자들은 경제성 논리를 인간행동의 절대적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인간의 가치를 계량화해야 한다고 믿는 학자들은 인간을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자신의 희생으로 타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인간은 풍요한 삶을 위한 수단으로 기업과 조직을 만들었는데 잘못된 인간관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조직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자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잘못된 방향으로 강화된 세계관 내지 인간관은 또 다시 파편화된 지식을 낳고, 그 지식은 제도의 부조화를 생산하고, 제도의 부조화를 잘 아는 사람들은 기회가 나면 그 제도를 악용하여 치부하거나 권력을 취하는 부패의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불량 수입품 - 품의제도

 

우리나라가 이렇게 부패하고 무능하게끔 보이게 된 가장 큰 제도적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품의에 의한 의사결정제도라고 생각한다. 자유·개방·투명의 미국 시스템이 세계 시스템으로 보편화된 시점인데도 선진국 중 일본밖에 없는 고질적 관료주의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일본에서는 품의제도가 일본식 경영의 특성을 나타내는 분임토의제도에서 볼 수 있듯이 하의상달의 전통적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어 장점을 살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권한과 책임을 얼버무리는 수단으로 변질되어 부하들의 의견이 상사에게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상사의 의도를 합리화시켜 주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품의제도의 진정한 문제점

 

▲ 무슨 일이 어디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 합리적 의사결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조직의 폐쇄성을 강화시킨다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전문성을 키울 수 없다 ▲중요한 결정은 품의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흠에도 불구하고 품의제도가 아직까지 폐기되지 않고 살아 있는 이유는 권위주의적 인간들에게는 품의제도보다 더 좋은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품의제도는 끊임없이 권위주의적 인간들을 양산하고 있다.    

 

교장은 교사의 교육행위를 지원하는 행정요원

- 그러나 제일 좋은 방에서 명령과 지시만

 

'교육은 평준화속에서 경쟁적이어야 한다'는 그는 고교평준화가 실패한 이유는 대학평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교육부→교육청→교장→교사의 하향식 평가체제의 먹이사슬처럼 구조화된  권위주의적 왜곡현상을 통렬히 지적한다.

 

교육이란 교사와 학부모가 학생을 매개로 하여 만나는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엄밀히 말하면 교장은 교사들의 교육행위를 도와주기 위한 행정요원일 뿐인데 가장 화려하게 치장된 커다란 독방에서 권한을 거의 절대적으로 휘두른다는 것이다.

 

한편 독일에서는 교장도 다른 교사와 마찬가지로 학급담임을 맡아 가르치고 행정실 직원과 함께 학교 행정적인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게 그의 경험담이다.

 

자본주의의 폐단을 막기 위한 제어와 평가 시스템을 갖춰야

 

자본주의는 돈 되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보편적 특성을 갖는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립된 조직들은 돈을 위한 탐욕의 화신들이다. 탐욕을 억제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조직 구성원들 각자가 홀로 설 수 있게 해야 하며 효과에 대해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조직혁신을 위한 세 가지 조건은 첫째, 누가 무엇에 대하여 질문해도 두려울 것이 없는 직무의 사유화다. 2~3년마다 자리를 옮겨 다녀야 하는 제도적 운영으로는 전문가를 양성할 수 없다.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개방 이행각서 작성 시 최종합의안에 합의해놓고 중요한 몇몇 사항을 빠뜨려 결국 망신을 당했다.

 

둘째, 평가시스템에 시장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성수대교의 실질적인 보수관리에는 관심 없고 자신을 평가하는 서울시의 윗사람들에게만 잘 보이려 했기 때문에 다리가 무너졌다. 마지막으로 인재선발의 공정화 및 객관화야말로 조직의 사회적 효과성을 높이는 첩경이라는 것이다.

 

지도층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왜곡된 과거와 현재를 바람직한 미래로 변화시킬 수 있는 변혁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공룡과 로마의 멸망이 좋은 예이다.

 

"한국은행에 근무하면서 통렬한 호루라기를 불어도 괜찮았습니까?"

"왜요? 외압이 있었죠. 다행히 당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전철환 총재님이 저를 불러 밤새 토론하고는 잘해 보라는 격려를 주셨습니다."

 

학연 혈연 지연을 따지는 게 싫어 블로그에서 출신학교를 지웠다는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후 보수에 대해 충고했다. '가졌다'는 것은 돈, 권력, 지식 등 삶을 편하게 해주는 것들이 많아 보수적인 입장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시절에는 가진 적이 없어 진보적이었던 이들이 어른이 되면 대개 보수적 성향으로 바뀐다. 깨어있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며 박원순 변호사의 삶을 본 후 '내 삶을 부끄럽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은행 퇴사 후 삼일회계 법인을 거쳐 현재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조직문화를 꿈꾸는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삶의 길을 가다가 참 사람을 만났다.

덧붙이는 글 |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최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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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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