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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에서 서서히 오르는 온도의 여름날 오전. 한 권의 책을 읽는다. 몇 장 넘기지 않아 나는 슬그머니 문을 닫는다. 주책없이 흐르는 이 놈의 눈물을 누가 볼까봐서다. 왜 우느냐 물으며, 내 손에 쥔 만화책을 볼까 두려워서다.
 
방문 닫고 엉엉 울게 한 만화책 <100℃>
 
 책표지

문을 닫고 얼마 되지 않아 계속 눈물은 흐르고, 급기야 나는 작은 소리로 엉엉 울기까지 했다. 1987년 6월, 나는 그때를 잘 알지 못한다. 강남 8학군의 경쟁적인 학업 열기 속에 파묻혀 회수권을 들고 버스를 타며 학교와 집을 오가는 중학생이었을 뿐이니까.

 

그리고 고등학교에 와서는 경쟁이 더 심해져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교과서, 참고서에 치어 살았다. 대학에 가서도 그 흔한 최루탄 냄새만 맡았지, 돌조각이나 쇠파이프 한 번 만져보지 않았다. 하긴 그때는 정권이 교체되면서 마치 민주화가 다 이루어진양 생각했던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 했으리라.

 

당시에 같은 과 친구는 몸을 던져 정부를 비판하는 대학생들을 보고 나에게 열을 내면서 이야기 했다. "왜 저 지랄들이냐, 지금 데모할 이유가 어디에 있냐"고.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는데 옛날 생각만 하고 저 난리들"이라고. 나도 뭔가 아는 척을 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열을 내는 친구를 보니 한 마디 하면 더 열을 낼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막상 내가 사회생활을 하고 회사에 어렵게 취업하여 겪은 현실은 열심히 도덕, 윤리, 사회 교과서를 통해 외운 '민주'나 '자유', '평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불평등한 계약조건은 물론이고, 회사 측에서 노동자를 너무 쉽게 해고했으며, 그것에 대해 제대로 저항하기도 힘든 구조였다. 회사 사장은 노조를 만들면 회사를 없애겠다는 말을 직원 조회시간에 했다. 막막한 현실은 자신의 탓이 아니다. 하지만, 자기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금이 99도, 여기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내가 최규석의 만화 <100℃>를 보고 흘리는 눈물은, 지금 '현장'에 있는 많은 노동자와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불이익을 감수하고 사는 사람들의 눈물이다. 또 그것은 내가 그곳에 같이 하지 못함에 대한 죄책감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관심만으로 뭔가 변화되길 열망해 보지만 그건 마른 논 위에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것 같다.

 

결론부터 보자면, 책은 '승리'에 관한 것이다. 영웅이 등장하여 악당을 무찌르는 경쾌하고 신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승리를 위해 따르는 수많은 이들의 고통과 열망이 들끓어 넘치기 직전의 상황을 그린 만화다. 그 매개는 바로 통치자와 권력의 무심함과 독주다.

 

그러나 그들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대중보다 우매하다. 대중의 힘을 무시한다. 그저 억누르고 폭력으로 다스리면 꼼짝 못하고 조용해질 줄 믿는다. 하지만 단단한 흙을 뚫고 자라는 나무의 새싹처럼 보이지 않던 검은 흙에서 보이지 않던 파란 싹은 고개를 밀고 활짝 세상을 향해 팔을 벌린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100℃. 물이 끓는 온도. 사람의 마음이 끓는 시점은 알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소망을 가지고 운동하는 이들은 힘들다. 가족이 외면하거나 동료와 친구의 비아냥거림도 견디기 어렵다. 커다란 벽에 작은 돌을 던지는 행위를 꾸준히 지속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끈기, 포기하지 않고 연대하는 힘이 이루어낸 승리는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결과이자 '역사'이다.

 

너와 내가 '우리'여야 이유를 들려주는 책

 

오늘 이 책이 더 깊이 다가오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현실이 어둡기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이 전혀 국민들과 소통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다. 몇 천 년의 과거와 앞으로 무궁한 미래와 이어진 가운데 서 있는 우리를,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알아야 하고, 나와 네가 모인 우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당시에 대해 나보다 더 몰랐을 어린(?) 작가의 눈물겨운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공부하고 인터뷰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역사적 사건들을 더 극적으로 만들었다. 창조된 인물들은 내 형과 아들, 삼촌 같이 느껴진다. 서슬이 파랗던 그 시대에 정말 목숨을 걸고 '우리'를 위해 싸운 열사들의 이야기는 2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현실이다.

 

다큐보다 더 리얼하고, 영화보다 더 극적이며, 소설보다 더 감동적인 최규석의 만화를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책의 말미에 본격 민주주의 학습만화라는 부제를 단 부록 '그래서 어쩌자고?'를 보는 것은 본문만으로 목마른 우리에게 주는 작가의 '선물'이다.

덧붙이는 글 | 100℃/창비/최규석/12,000원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창비(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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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