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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걸레를 빨고, 걸레를 빤 다음에는 방바닥을 훔칩니다. 방바닥을 훔친 다음 빨래를 하고, 빨래를 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기 앞서 책을 다시 펼칩니다. 우리 식구들이 새로 살아갈 집에 하루 먼저 들어와서 치우고 닦고 자리를 잡는 저녁나절입니다. 홀로 조용히 보내며, 이렇게 널널하고도 홀가분할 수 있으랴 생각합니다. 아기를 낳기 앞서도 무척 바쁘게 보낸 나날이었을 텐데, 그때와 이때를 견주면 우습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앞서 다 읽어낸 《다케타즈 미노루/김창원 옮김-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진선출판사,2008)라는 책을 차근차근 되읽어 봅니다. 두어 달에 걸쳐 읽으며 밑줄을 그었던 대목을 곰곰이 되씹어 봅니다.

 

..  "그런데 그 꿈같은 얘기는 바로 그날로 깨지고 말았다. 친구가 전화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 줬기 때문이다.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에 컴퓨터로 그런 사진쯤이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깜박했어. 그런 사진쯤은 광고회사라면 식은 죽 먹기로 만들 거야.' 나의 꿈은 깨져 버렸고 동시에 쓰레기가 된 페트병을 입에 물고 소비문명을 비판하던 새끼 큰곰의 증언도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사진이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진 저널리즘은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결국 야생동물들은 자신이 처한 세계를 이야기할 인간과의 소통 수단 하나를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  (139쪽)

 

 

 무척 고단하다고 느끼며 책을 또 덮고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불을 끌까? 전등불 끈을 톡 잡아당겨 끕니다. 아주 고요합니다. 이 동네에 지나다니는 차 한 대 없고, 큰길가 차소리는 들리지도 않습니다. 다만, 항구에 닿는 배에서 고동을 울리는 소리가 뚜우 하고 낮고도 길게 퍼집니다. 그래, 인천은 바닷가 도시이지. 아무렴, 옛 도심지인 이곳에서 바닷가란 걸어서 십 분 남짓만 가도 닿으니까. 야트막한 동산밖에 없는 인천이지만 어느 언덕배기에 올라가도 바다가 보이니까. 아주 어릴 적부터 듣던 공장 돌아가는 소리, 큰 짐차 구르는 소리, 그리고 배에서 내는 고동 소리.

 

 잠깐만 허리를 편다고 누웠으나 이내 잠듭니다. 밤새 살짝만 열어 둔 창문에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모기도 들어옵니다. 모기장을 쳐야겠다고 잠결에 생각합니다. 옛날 집이라 창문이 많으니 모기장 치기도 까다롭겠다고 거듭 중얼거립니다.

 

 새벽 다섯 시 반에 화들짝 놀라듯 깨어납니다. 어젯밤에 그렇게 빨리 잠들어 버렸다고 느끼며, 내 나이도 하나둘 늘어나는가 싶고, 여태 쌓인 고단함이 깊었는가 싶으며, 나야 이렇게 혼자 밤을 지새우며 좀 쉰다고 하지만 옆지기는 아기하고 늘 붙어 있어야 하니 제대로 쉴 겨를이란 없겠구나 싶습니다. 잠자리맡에서 책을 다시 넘겨 봅니다.

 

.. "대낮에 길게 그려진 내 그림자를 보고 '어, 내 키가 이렇게 컸던가?' 하며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덕분에 12월과 1월에 찍은 사진은 내 실력과는 상관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빛 때문에 볼 만한 사진이 되기도 한다." ..  (202쪽)

 

 

 이참에 얻은 달삯집은 오래된 벽돌집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오래된 집이라고 해 보아야 기껏 쉰 해나 예순 해라고 할 텐데, 백 해나 이백 해도 안 된 집을 두고 오래된 집이라고 말하기란 참 우습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삶이 이러합니다. 기껏 열 해나 스무 해만 되어도 '오래되었다!'느니 '낡았다!'느니 하며 손사래를 칩니다. 오래되었다고 나쁠 까닭이 없으나, 자동차를 갈거나 집을 갈거나(새 아파트로) 옷을 갈거나 하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손때와 다리품이 묻은 삶터를 내다 버립니다. 내동댕이칩니다.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우리 손길을 많이 탔고 우리하고 부대낀 나날이 깊었던 만큼, 물건 하나이든 옷 한 벌이든 집 한 채이든 자동차 한 대이든 이야기가 끝없이 많을 테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에는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하기는. 그러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문학다운 문학이 없다 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스스로 우리 삶자락을 고맙거나 반갑거나 즐겁게 여기지 않으니,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얼마나 뽑아내겠어요.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얼마나 살갑게 풀어내겠어요.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얼마나 푸근하게 엮어내겠어요.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얼마나 사랑스럽게 담아내겠어요.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얼마나 신나게 펼쳐내겠어요.

 

 백 해쯤 묵은 집에서 할매 할배 어매 아배하고 살아오는 이야기만으로도 《토지》나 《혼불》 같은 책 열 가지는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백 해가 아닌 쉰 해만 묵은 골목집이라 하여도 《태백산맥》이나 《장길산》 같은 책 다섯 가지는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쉰 해는 어렵고 서른 해나 스무 해쯤 묵은 아파트라 하여도 우리 깜냥껏 새로운 《삼국지》를 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아침이 되어도 차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더없이 좋습니다. 이 집을 얻기 앞서까지 이 집 앞 골목은 곧잘 지나다녔고, 곧잘 지나다닐 때마다 '우리도 이런 집을 얻어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는 이야기를 옆지기하고 주고받았습니다. 부동산에 내놓지 않고 문간에 자그마한 쪽지를 달아 '월세방 있음' 하고 적어 놓는 이런 오랜 골목집은 오로지 이 동네사람만 알아보고 새로 깃들일 수 있으니, 우리 같은 사람이야말로 들어올 수 있지만 언제 쪽지가 나붙을 줄 알며, 이 집에 사는 다른 삯식구는 이런 좋은 데에서 어디 다른 데로 옮겨갈 생각을 하겠느냐며 아쉬워하곤 했습니다.

 

 슬슬 아침 일머리를 잡습니다. 부엌살림을 담았던 상자를 하나씩 끌릅니다. 행주를 빨아 개수대 둘레 그릇시렁을 닦습니다. 이 집은 앞뒤로 빛과 바람이 잘 들어와 새벽만 되어도 집이 환합니다. 새벽 다섯 시 반에 화들짝 놀라듯 깨긴 했지만, 새벽부터 아침까지, 또 낮에도 새소리를 즐겨들을 수 있습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도 듣습니다. 달삯을 35만 원 주어야 하기에 무척 버거운 노릇이지만, 35만 원을 주고라도 살 만하지 않느냐 생각했고, 요새 웬만한 빌라도 40만 원 가까이 주어야 하는데다가(우리처럼 보증금 낼 재주가 없는 사람들은), 대학생들이 많이 산다는 원룸만 해도 삼십만 원은 훌쩍 넘곤 합니다(인천에서는). 다들 삯을 받아 살림을 꾸리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인데, 우리한테 돈이 제법 있다면 이런 집은 낼름 사고도 남을 테지만, 굳이 집을 사지 않고도 오래오래 머물면서 고즈넉함과 호젓함을 누릴 수 있어도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저는 저대로 바람소리 새소리를 들으면서 제 마음을 가다듬고,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산마을만은 못하지만 싱그러운 바람과 뭇새와 나무를 느끼고, 아기는 아기대로 조용하면서 맑은 햇살과 바람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무럭무럭 자랄 수 있다면, 어느 세상 어떤 대목이 부러웁겠느냐고 느낍니다.

 

 

 부실 그릇은 부시고 담글 그릇은 담근 다음 책을 한 번 더 펼칩니다. 저한테는 책읽기가 쉼입니다.

 

.. "찾아오는 사람들의 장비를 보면 깜짝 놀란다. '프로 뺨친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모두들 '프로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장비를 갖추고 있다. 게다가 왕복 여비까지 계산해 보면 이런 현실은 벌써 완전한 산업화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의 번성에는 언제나 그늘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 상품화된 풍부한 자연은 사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산업적인 자본투자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외면하려 한다. 나는 사람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천연기념물이 너무 늘어서 '희귀한 생물이 흔해지는 현상'에 적지 않은 두려움을 느낀다. 모두들 좋아라 흥분하고 있는 가운데 이름없는 것들의 모습이 자꾸 사라져 가는 현실에는 대부분이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검은머리촉새가 사라지고, 뻐꾸기도 보이지 않는다. 반딧불과 개구리 같은 어린이노래의 주인공들도 지금은 보기 어렵다. 두루미와 물수리가 우리 눈에 쉽게 띄자 지난날의 풍요한 자연이 확실히 부활하고 있다고들 믿는 것 같다." ..  (251쪽)

 

 이제까지 살았던 집을 하나하나 더듬어 봅니다. 제 마음과 몸에 가장 깊이 남아 있는 집은 일곱 살부터(어쩌면 더 앞서일는지 모르나, 나는 일곱 살부터만 떠오르고 그 앞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열일고여덟 살까지 살았던 인천 중구 신흥동3가에 있던 5층짜리 '안국아파트'입니다. 연탄으로 불을 때던 얼거리였던 이 나즈막한 아파트는 모두 열다섯 동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집집마다 제 또래이든 형 누나이든 동생이든 바글바글대었습니다. 맨날 놀던 일만 떠오르던 그때 그 동네는 재개발로 사라졌으나 언제까지나 제 마음에 깊이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 뒤로 부모님과 형하고 함께 살던 인천 연수동 아파트는 하나도 달갑지 않았습니다(아파트밖에 없는 동네였고, 만날 동무 하나 없었기에). 아파트가 싫어 뛰쳐나온 스무 살 적에는 신문사지국에서 먹고잤습니다. 그무렵 신문사지국은 지하에 있었는데, 군대에 갔다 온 사이 지하를 벗어나 2층으로 옮겼고, 제가 다시 들어갈 무렵에는 골목 안쪽 동네 1층으로 새로 옮겼습니다. 이곳에서 이태쯤 지내다가 그만두고 출판사에 들어갈 즈음 반지하집으로 옮겼고, 그런 다음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을 떠나 서울 종로구 평동에 있던 적산가옥 나무집 2층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무집에서 세 해쯤 살았던가. 그런 다음 요 적산가옥 나무집하고 이웃한 다세대집 3층으로 들어갔는데, 종로구 평동에서 살던 집은 하나같이 찬방 찬집이라서 겨울마다 물이 꽁꽁 얼어붙어 고달팠습니다. 그 뒤 충주로 옮겨 네 해를 산 다음 인천으로 돌아와 동구 창영동에서 이태를 살고 중구 내동으로 옮겨 왔는데, 열일고여덟 살 때부터 떠돌이처럼 '그리 내키지 않는 데'에서 살다가 비로소 마음이며 몸이며 느긋하게 쉴 보금자리를 얻은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부터 참 내 마음과 몸을 살찌울 수 있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어쩌면, 떠돌고 맴돌았으니 내 마음과 몸을 홀가분하게 쉴 보금자리는 어떠한 곳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보금자리 또한 인천시가 밀어붙이는 재개발 때문에 가뭇없이 사라져 또다시 이리저리 헤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쫓겨나게 되든 말든 하루하루 즐겁게 붙안으면 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내 사진기처럼. 내 값싸구려 사진기처럼. 내 책들처럼. '사람들은 으레 보잘것없는 값싸구려로 여기는' 내 숱한 헌책처럼(나는 새책방에서도 사고 헌책방에서도 사지만, 사람들은 그저 '모두 헌책일 뿐'이라고만 여기니 헌책인가 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다 똑같은 '책'이 아닌 '헌책'이라고).

 

 언제나 느낍니다만, 제 삶을 꾸리는 더없는 기쁨과 보람은 바로 저한테 있다고 느낍니다. 제 마음속에 제 갈 길이 잠자고 있고, 제 둘레에 저와 이웃할 길동무가 있다고 느낍니다. 머나먼 어디메에 제 갈 길이 있거나, 머나먼 다른 데에 저와 이웃할 길동무가 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머나먼 곳에도 좋은 사람과 길과 터가 있을 테지요. 그러나 바로 내 마음속 깊은 데에 잠자고 있는 넋과 얼을 깨우지 못한다면 다른 어떠한 길도 제 길로 받아들일 수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제 둘레 가까운 데에서 부대낄 이웃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머나먼 곳에서 나를 기다린다는 좋은 이슬떨이나 스승이나 길동무가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이리하여, 제가 처음 사진기를 들어 보았던 국민학생 때, 저는 제가 그무렵 가장 좋아한 구름을 찍었습니다. 구름도 어디 들판에 나가서 찍은 구름이 아닌 제가 살던 5층짜리 아파트에서 4층집 툇마루 난간에 기댄 채 올려다본 하늘에서 만나는 구름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스무 장쯤 찍고는 사진기를 조용히 제자리에 갖다 놓았고, 그 뒤로 스물네 살 때인가, 보도사진이라는 강의를 처음 들으면서 넉 달에 걸쳐 사진을 배웠는데, 이때에는 후배한테서 빌려 쓰는 사진기로 헌책방을 찍었습니다. 빌리고 나서 처음 찍은 곳은 헌책방입니다. 이때에 제가 가장 좋아한 곳은 헌책방이었으니까요. 헌책방은 여태까지도 아주 좋아하는 곳이기에 꾸준히 찍습니다. 그러면서 자전거도 찍고 우리 옆지기와 아기도 찍습니다. 그리고, 제 모든 발자취가 깃든 인천 골목길을 찍습니다. 다만, 인천 골목길은 오래도록 두고두고 차근차근 기다린 다음에 찍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바삐바삐 서두르며 '이 동네(인천 골목길)가 재개발로 사라지기 앞서 찍어야 해!' 하면서 부리나케 인천 골목길 달동네랑 철거민촌이랑 찍어대었지만, 저는 그러던 때에는 한 장도 안 찍었습니다. 뻔히 몇 달 뒤 사라지는 줄 알면서도 제 눈으로만 슬프게 들여다보았습니다. 또는, 웃음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또 그 옛 골목(제가 어릴 적 동무들하고 뛰놀던 골목) 담벼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지나가기만 했을 뿐, 따로 사진으로 찍어 놓지 않았습니다. 제 고향이 인천이고 제가 골목길을 좋아하며, 제가 나고 자라고 놀던 데가 골목길이었다 할지라도 굳이 저까지 골목길을 찍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고, 저는 제 사진감인 헌책방을 찍는 데에만도 필름값이 빠듯해 엄두를 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천이 싫어 인천을 떠난 주제에 무슨 인천 골목길을 찍는다고 나서겠습니까.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살아가는 곳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찍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몸으로 느꼈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느끼는데, 내가 누구보다 속깊이 가장 잘 안다 할 만한 이야기가 될 때 바야흐로 붓을 들든 볼펜을 들든 자판을 두들기든 해야지, 어설피 알거나 대충 알 때에는 함부로 글을 써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책이야기를 하든 정치나 사회나 경제나 예술을 다루는 이야기를 하든 마찬가지입니다. 나 스스로 가장 사랑하고 아끼고 마음 바칠 만한 이야기라면 풀어낼 노릇입니다. 나 스스로 그럭저럭 눈길을 두는 이야기라면 풀어내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삭여낼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스스로 샘솟을 때까지 눌러야 하며, 저절로 터져나와 봇물이 될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아야 합니다. '글 하나 쓰자!' 해서 쓰는 글이란 없으니까요. '그림 하나 그리자!' 해서 그리는 그림이란 없으니까요. '사진 하나 찍자!' 해서 찍는 사진이란 없어요. '아, 사진이구나!' 하고 느끼는 가운데 손이 마음을 따라서 절로 움직이며 단추를 살며시 눌러 찰칵 소리가 나고 내 눈으로 들여다본 모습이 필름에든 파일에든 흔들렸든 초점이 어긋났든 고스란히 담아낼 때가 아니라면 '사진'이라는 이름 두 글자도 붙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삶이거든요. 내가 살아가는 냄새가 배고, 내가 살아가는 발걸음대로 걷고, 내가 살아가는 마음대로 따뜻하거나 차가우며, 내가 살아가는 느낌대로 건네는 손길이니까요. 따뜻하다고 더 좋은 사진이 아니듯, 차갑다고 어딘가 나쁜 사진이 아닙니다. 내 이야기를 담은 사진일 때라야 좋은 사진이고, 내 이야기를 담지 못한 사진이라면 나쁜 사진입니다. 내 목소리를 들려주는 사진이라면 아름다운 사진이고, 내 목소리를 찾아볼 수 없으면 못난 사진입니다. 내 손길을 살포시 얹었으면 반가운 사진이고 내 손길이란 자취도 없으면 코풀개종이로도 못 씁니다. 내 꿈 한 자락 깃들도록 했으면 멋진 사진이고, 내 꿈이고 자시고 돈냄새만 풍긴다면 쓸개빠진 사진입니다.

 

 

 다리품을 많이 판다고 더 잘 찍을 수 없는 사진입니다. 오래오래 기다린다고 더 그럴싸하게 찍을 수 없는 사진입니다. 한 가지 사진감을 길디길게 붙잡는다고 더 대단할 수 없는 사진입니다. 비싸구려 장비를 갖추고 있다 한들 더 멋질 수 없는 사진입니다.

 

 사진은 내 삶입니다. 내가 천만 원짜리 옷을 입고 일억 원짜리 자가용을 몰고 있다 하여 내 삶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내 몸이나 마음이 '비싸' 보일 수 없습니다. 내가 길에서 주운 옷을 깨끗이 빨아서 입고 두 다리로 걸어다니기만 한다 하여 내 삶이 바뀌지 않습니다. 내 몸이나 마음이 '값싸' 보일 수 없습니다. 나는 언제나 나일 뿐입니다. 내가 나 아닌 몸이나 마음이 될 수 없고, 내 삶이 내 삶 아닌 다른 아무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로버트 카파가 아닙니다. 나는 세바스티앙 살가도가 아닙니다. 나는 로베르 드와노가 아닙니다. 나는 임응식이 아닙니다. 나는 구본창이든 강운구든 홍순태든 성남훈도 아닙니다. 나는 나일 뿐입니다. 나는 내 사진을 찍을 뿐이며, 내 목소리로 내 삶을 들려주고 있을 뿐입니다. 내 손길과 몸짓으로 내 사진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면서 내 삶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덧붙이거나 꾸미거나 덧댈 구석이 없지만, 숨기거나 감추거나 덮어씌울 구석 또한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이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글과 그림도 이와 같습니다. 내 모습을 오롯이 담는 글이요 그림입니다. 내 걸음걸이를 있는 그대로 밝히는 사진입니다. 내 웃음과 눈물을 거짓없이 스며 놓는 사진입니다. 내 어리석음과 슬기로움이 꾸밈없이 배어드는 사진입니다.

 

 

 아직 내가 어리석다면 내 사진 또한 어리석습니다. 아직 내가 속이 좁다면 내 사진 또한 속이 좁습니다. 어줍잖으나마 밝게 살아가고자 한다면 어줍잖으나마 밝은 기운이 사진이 스밉니다. 어설프나마 깝죽을 떨고자 하다면 어설프나마 깝죽을 떤 자취가 사진에 들어갑니다.

 

 사진은 내 삶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울은 아닙니다. 비춰 보여주지 않는 사진입니다. 통으로 마음속까지 보여주는 사진이니까요. 살거죽만 보여주는 사진이 아니고, 옷으로 속살을 감추어도 속내를 모두 보여주는 사진이니까요. 그래서 사진은 섣불리 붙잡을 수 없는 두려운 예술일 수 있고, 섣불리 붙잡을 수 없는 두려운 예술이기 때문에 내 모두를 바쳐서 부딪히고 부대끼고 껴안고 어깨동무하다가는 시나브로 하나가 되는 삶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사진, #사진말, #사진찍기, #사진삶,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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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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