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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노무현 대통령 형아 아저씨가 돌아가셨어? 왜 돌아가셨어? 우리 할머니처럼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거야?"

 

2002년 태어난 주석이의 생애 첫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하던 주석이는 TV 속에 보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에 유난히 친근감을 느끼던 아기였지요.

 

그 당시 태어난 또래 아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웠겠지만 주석이는 할아버지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신 친할머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물론 90에 가까운 노 할아버지까지도 계셨으니 60세도 되지 않은 노무현대통령이 할아버지로 보이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래서 서너살 적 주석이가 노무현 대통령을 부르던 호칭은 "노무현 대통령 형아 아저씨"였습니다. 아무리 형아가 아니라고 해도, 아저씨가 아니라 할아버지라고 가르쳐도 주석이 눈엔 할아버지보다는 훨씬 더 젊고 훨씬 더 친근한 "형아"이며 "아저씨"였던 것입니다.

 

아마도 삼년 전인 다섯 살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녀석을 데리고 집 근처 햄버거 집에 들렀을 때입니다. 햄버거를 맛있게 먹던 주석이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반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치는 것입니다.

 

"이모, 노무현 대통령 형아 아저씨야. 저기 봐. 저기."

 

저는 당연히 TV에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나오고 있나 보다 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닌 것입니다. 주석이의 눈이 향하고 있는 곳은 TV가 아니라 매장 안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어느 아저씨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어쩜 저렇게 닮을 수가...'

 

순간 저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주석이가 바라보고 있는 아저씨는 놀랄 만큼 노무현 대통령과 닮았었기 때문이지요. 노무현 대통령을 닮은 그 아저씨도 주석이의 목소리를 들었던지 저희를 향해 조그맣게 미소를 지어 보이더군요.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다섯 살 꼬마 주석이에게도 형아나 아저씨처럼 그렇게 친근하고 따뜻하게 여겨졌던 분이셨습니다.

 

이제 여덟살.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 주석이는 자기가 알고 있던 그 노무현 대통령이 왜 하늘나라로 가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 서거 보름 전 친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주석이이기에 죽음이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이라는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지요.

 

그런 주석이의 손을 잡고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우리 할머니 돌아가신 것 보다는 조금 슬프지만 그래도 슬프긴 슬퍼."

 

'좋은 곳으로 가세요.' 삐뚤빼뚤한 글씨로 방명록도 쓰고, 흰 국화도 드리고, 향도 올린 주석이. 할머니 장례식을 치르면서 보고 배운 것이 많았던지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두 번 반 절도 능숙하게 잘 했습니다.

 

국민장이 열린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주석이는 시청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이 열린다고 선생님께 들었다면서 자기도 그곳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모 나도 시청 앞에 가고 싶은데. 나 좀 데려가면 안돼? 궁궐에서 장례식을 한다던데 궁궐이 어디야?"

 

주석이가 시청 앞에 가자고 하는 이유는 추모의 마음이 아닌 호기심인 줄 압니다. 발인제때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려 보이던 노무현 대통령의 손녀처럼 그저 뭔가 신기한 일이, 뭔가 호기심 발동하는 일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되겠지요.

 

하지만 오늘 쓴 주석이의 일기를 보면서 어린아이라고 무시할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할머니의 장례 기간 중엔 돌아가신 할머니와 생전에 가졌던 즐거운 시간을 추억으로 오래 오래 기억하겠다는 일기를 썼던 주석이가 이번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국민장이 있었던 오늘을 오래 기억하겠다고 쓴 것입니다. 

 

여덟살 주석이는 어른이 되어 오늘의 일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이렇게 황망하게 노무현 대통령을 보낸 우리 어른들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판단을 하게 될까요?

 

그 말간 주석이의 두눈을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시민들이 들고 갈 만장의 대나무가 두려운 사람들. 시청 앞을 뜨겁게 밝히는 촛불이 두려운 사람들.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늘의 이 역사적인 순간을 아무런 선입견도 없이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기억할 저 아이들의 시선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태그:#국민장,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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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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