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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 떠난 사람, 죽은 책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 아저씨와 저녁을 먹었습니다. 헌책방 아저씨는 당신 마음속에 품은 꿈을 조금씩 키워 나가고 있었는데, 헌책방 문을 연 열 해째 되는 올해에, 터뜨렸다면 터뜨렸고 저질렀다면 저지르는 일을 하나 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흐름이며 한국땅에서, 인터넷도 아닌 매장으로 헌책방을 한 군데 더 꾸리기로 했다더군요. 더구나 파주에다가.

 

 지난날 출판사에서 편집장까지 했던 당신은 파주책도시를 보면서 '우람한 건물만 있는 메마른 곳'이라고 느꼈고, 이 느낌을 당신 자그마한 손길을 거들어 '사람이 쉬고 책이 쉬는 헌책방 하나'쯤 있으면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터무니없다면 터무니없는 꿈이지만, 슬기롭다면 슬기로운 꿈이요, 아름답다면 아름다운 꿈이며, 어린이 같다면 어린이 같은 꿈입니다. 소주잔을 들고 씨익 웃으면서 '잘하셨어요!' 하고 힘을 보태어 드렸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밥집 텔레비전에서 장영희 교수 장례미사를 올리는 모습이 꽤 길게 나옵니다. 지난 5월 9일 돌아가신 서강대 영문과 교수인 장영희 님은, 돌아가신 날부터 여러 날에 걸쳐 크게 눈길을 끌고 사랑을 받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네 지식인 가운데, 또 대학교수 가운데, 그리고 수필문학을 하는 분 가운데 이토록 여러 날에 걸쳐 꽤 크게 눈길을 끌던 분이 있었나 떠올려 봅니다(인터넷 검색 1위까지 차지하면서). 글쎄, 장영희 교수 아버님인 장왕록 박사도 이만큼 사랑받지 못한 듯한데. 아무래도 장영희 교수가 '목발 짚던 장애인 교수'라서?

 

 신문이며 방송이며 장영희 교수가 '장애인이었음에도 얼마나 애썼고 예뻤고 밝았고 싱그러웠는가'를 떠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장애인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 벽이 얼마나 높은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죽은' 장영희 한 사람 기리는 데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산', '살아 있는', '살아가는' 수많은 또다른 장영희한테는 눈길 한 번 안 주고 있습니다.

 

 저녁밥을 비운 다음 헌책방으로 돌아가 책을 더 고릅니다. 아는 분한테 선물해 줄 책을 하나 고르고, 제 마음을 살찌우고자 저한테 선물할 책을 하나 고릅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가운데 조용히 사라진 교육잡지 <처음처럼> 1호와 2호가 보여 집어듭니다. 1호와 2호에는 함석헌, 김정환, 홍순명, 송준재, 성래운, 박형진, 페스탈로찌, 야누스 코르착 같은 이름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제대로 길을 걸었던 교육잡지이기 때문에 1호와 2호부터 '김정환'이나 '성래운' 같은 나라안 어르신 글을 담는 가운데, '페스탈로찌'와 '야누스 코르착' 같은 나라밖 어르신 글을 담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한다는 분들조차 이런 이름을 낯설게 여깁니다. 성래운 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랬지만, 김정환 님이 더 나이를 잡숫고 세상을 떠나는 날에도 사람들은 '누가 죽었어? 그런데 뭐?' 하고는 시큰둥해 하리라 봅니다(시인이 아닌 교육자 김정환 님입니다).

 

 ㄴ. 책으로 읽는 사람

 

 며칠 앞서 '아다치 미츠루' 만화책 몇 권을 장만했습니다. 지난겨울에는 《슬로우 스텝》이라고 하는 만화책 몇 권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었고, 이번에는 《KATSU!》와 《Short Program》을 장만했습니다. 앞으로 다른 작품도 하나하나 그러모을 생각입니다.

 

 1980년대에 그린 《H2》부터 2000년대에 그린 《KATSU!》에 이르기까지, 이이 아다치 미츠루 님 만화 얼거리나 그림결은 한결같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그리는 분이 다 있는가 놀라울 따름인데, 이이는 당신 만화며 그림결이며 줄거리며 얼거리며 깊이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고 북돋운다고 새삼 느낍니다. 제 빛깔을 지킬 줄 알 뿐 아니라 제 모습을 가꿀 줄 압니다.

 

 지난달께, 김점선 님이 쓴 《점선뎐》이라는 책을 장만했습니다. 아직 책장을 넘기지 못합니다. 사 놓기만 하고 한 달을 묵인 셈이지만, 두 달을 묵인 다음 읽어도 되고 두 해를 묵이고 나서 읽어도 됩니다. 책이란, 사 놓은 그때 읽어 책이기도 하나 마음이 가 닿거나 생각이 뭉클 움직일 때 읽어 책이기도 합니다. 또한, 제가 못 읽고 묻혀 버리게 된다 하여도 나중에 우리 집 아이가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옆지기가 읽을 수 있으며 다른 집식구가 읽든, 우리 도서관에 찾아오는 손님이 읽든 할 수 있습니다.

 

 몸이 아파 세상을 떠나고 만 김점선 님인데, 책 머리글에도 적혀 있지만, 김점선 님은 당신 삶이 얼마 안 남았음을 깨닫고는 '내 살아온 이야기를 내 깜냥껏 끄적거리고 떠나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책장을 펼치면 더 잘 알 터이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한테 무슨 돈이며 이름이며 힘이며 값어치가 있겠느냐 싶습니다.

 

모르는 노릇입니다만, 김점선 님은 당신이 이 책을 세상에 내놓으며 당신 이름이 어찌어찌 더 팔린다든지 글삯을 많이 벌어들인다든지 또 무슨무슨 힘을 끌어들인다든지 하는 데에는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그저 당신한테는 당신이 걸어온 길이 좋았으니까 이처럼 '내 이야기(자서전)'를 남겼구나 싶습니다.

 

 요즈음, 대통령께서는 '자전거 문화와 정책' 이야기를 가끔 꺼내곤 합니다. 이제까지 자전거 문화와는 사뭇 동떨어진 길을 걸어왔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자전거가 마음놓고 다닐 수 없도록 하는 토목공사만 해 왔으면서 난데없는 말잔치가 벌어집니다. 자전거가 다닐 길은 따로 수백 수천 억을 들여 새길을 닦아야 하는 길이 아니요, 자전거는 수백 수천만 원을 들여 장만하는 탈거리가 아닙니다만, 세상을 오로지 돈으로 바라본다면 어쩔 수 없는 얕은 셈속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을 살며 오직 이름값 높이고 문단힘을 뽐내고자 하는 분들도 슬그머니 갈아타기와 줄타기를 합니다. 더없이 딱한 몸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흔을 바라보는 그 나이에 정치권력 붙잡은들 무슨 재미를 볼라고. 그저 조용히 지내셨다면 여느 사람들은 그예 우러르거나 섬겼을 텐데. 황석영 님, 이제라도 주제를 알고 낮은 데로 몸을 두고 고개숙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회주의 지식인이 싫다"고 틈틈이 말씀해 오신 분이 어쩌면, 말과 삶이 그리도 어긋날까요.

덧붙이는 글 | -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는 글입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점선뎐

김점선 지음, 시작(2009)


H2 1 - 소장판

아다치 미츠루 지음, 대원씨아이(만화)(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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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 미츠루 지음, 대원씨아이(만화)(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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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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