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지난 주일(10일·부활 제5주일) 교중미사 후에 내가 다니는 성당의 신·구 상임위원들이 자리를 함께 하는 행사를 가졌다. 그 합동회의 자리에서 나는 전임 총회장으로서 인사말을 했는데, 잠시 내 건강 상황에 대해 언급을 한 다음 이런 말을 했다.

 

"내 신장이 점점 좋아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피검사 수치는 제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활기와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총회장 짐을 벗어서 자유로움이 배가 된 덕분에 앞으로는 특별한 일로 출타를 자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엊그제 8일에는 서울에 가서 저녁에 '용산미사'에 참례했고, 어제 9일에는 수원으로 내려가서 오체투지 순례를 하고 왔는데요, 앞으로는 주말마다 출타를 해서 토요일 저녁에는 용산미사에 참례하고, 주일에는 오체투지 순례에 참여할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제가 우리 본당에 있지 않을 터인데, 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이상히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총회장을 그만두더니 주일 미사에도 오지 않는다'라는 오해들이 혹 있을지 몰라서 굳이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조금은 재미있는 말이기도 해서 몇 사람은 웃음을 머금기도 했지만, 나는 자못 비장한 어조로 한 말이었다. 신·구 상임위원들 중에는 용산미사니, 오체투지니 하는 말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도 있을 터였다. 처음 듣는 사람들과, 전에 듣기는 했어도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런 얘기까지 할 계제는 아니었다.       

 

아무튼 나는 교회의 공식석상에서 어떤 방비책으로 그런 말까지 했고, 그 말은 내 진심이었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요령껏 출타를 해볼 생각이다. 내게도 고정적인 작업과 이런저런 소소한 일거리들이 있고, 마누라와 조카아이와 요즘에는 '교생'실습으로 집에 와 있는 딸아이를 매일같이 학교에 태워다주고 태워오는 소임이 있고, 둘째 며느리가 세상을 뜬 후로 일거리가 많아져 버린 노모를 도와드리고 살펴드려야 하는 일 등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형국이어서 사실은 어려움이 크다.

 

이리저리 구애가 많은 신세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조건들이 걸려 있지 않은 자유로운 처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아무 구애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조건 타령만 하다가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오늘의 어려운 조건과 처지 안에서, 내 신념과 이상과 양심을 표현하는 일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용산미사와 오체투지 순례 참여는 내게 참으로 의미 있고 중요한 '양심 과제'가 되었다.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갖는다. 비록 돈 쓰고 시간 쓰고 고생하는 형국이기도 하지만, 오늘의 그 뜻깊은 일들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은 나 자신을 스스로 힘껏 위안하고 고무하는 일이다.

 

내 건강을 걱정해 주는 이들이 많다. 무리하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내 신장 치료를 전담해주시는 분은 '무리하면 백약(百藥)이 무효"라는 말씀도 하신다. 하지만 내가 연일 온종일 오체투지를 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세 번(3일) 참여했는데, 가장 길게 한 것이 오후 두 시간이었다.

 

그 정도는 오히려 좋은 운동도 되리라 생각한다. 평소 오후 두 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며 생활한다. 묵주기도 하루 기본 40단을 채우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가끔 두세 시간 정도 오체투지를 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혹 무리가 된다 하더라도, 하느님께 좀더 적극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니, 하느님께서 돌보아주시리라 믿는다.

 

<2>

 

지난 9일(토) 오후의 오체투지 순례 참여를 기쁘게 기억할 수 있다. 내가 오체투지 순례에 참여한 사실만으로는 별로 할 얘기가 없다. 이미 두 번이나 자랑처럼 '증거'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나 나 혼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마누라는 물론이고 대학생 아들까지 참여를 한 사실에서 오는 뿌듯함 때문에 기록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이미 오체투지 경험이 있는 아들녀석은 처음에는 뒤로 빼려는 태도를 보였다. 대입 수능시험을 코앞에 둔 고3 시절에는 군소리 없이 아빠 뜻에 따랐던 녀석이 대학생이 된 처지에서는 오히려 바쁜 핑계를 대는 것이었다.

 

"아빠는 오체투지 순례에 참여하는 일 자체도 중요하지만, 대학생 아들을 데리고 가는 일도 중요하다. 어쩌면 널 데리고 가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아니, 너를 데리고 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진지하게 설파했다. 오체투지 순례에 참여하러 가면서 대학생 아들녀석을 꼭 데리고 가려는 이유를….

 

아들녀석은 동의했다. '승복'이라는 말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아들녀석이 아빠와 함께 또 한번 오체투지 순례에 동참하겠다는 말(약속)을 하는 순간 나는 녀석을 안아 주었다. 녀석과의 '밀착'을 통해 그 무언가를 다시 느끼고 확인할 수 있었다.

 

아들녀석의 자취방에서 밤을 보내고, 9일 아침에도 나는 집에서처럼 5시쯤 몸을 일으켰다. 서두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길이 막히지 않아 목적지에 쉽게 갈 수도 있고, 그리고 아침부터 오체투지 하루 순례를 제대로 할 수 있을 터였다. 하루 순례만이라도 시작부터 종료까지 제대로 하고픈 마음이었다.

 

하지만 과한 욕심이었다. 마누라와 아들 모두 잠이 많은 편이었다. 더구나 아들녀석은 새벽 2시에 잠자리에 들었으니, 누가 업어가도 모를 지경일 터였다. 결국 오전을 아깝게 보내고 우리는 12시가 넘은 시각에 출발을 했다.

 

네비게이션 아가씨에게 길을 물은 다음 심한 정체로 고생을 한 경험이 있는 강변북로와 서부간선도로 등을 피하고 시흥대로를 선택했다. 지리에 밝지 못하고 길 사정을 잘 모르는 내 실수였다. 수원시 파장동 '효행공원' 도착 시간이 처음에는 1시 39분으로 찍혀 나와서 오후 순례는 시작부터 제대로 할 수 있겠구나 했는데, 점점 시간이 늘어나더니, 네비게이션 아가씨는 2시 20분에서야 '안내 종료'를 하는 것이었다.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너무 아깝고 억울하기도 해서 내가 한숨을 쉬고 궁시렁거리기도 하니, 참다못한 마누라가 "두 시간이나 한 시간이라도 열심히 하면 되잖아요. 오체투지 순례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뜻 있고 중요하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요. 순례를 가는 사람이 왜 자꾸 그래요?"라고 핀잔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날의 종료 지점인 효행공원 안에다 차를 놓고 수원시 장안구청 방향으로 얼마간 걸어간 다음 오체투지 순례단과 만나 정확히 오후 3시부터 순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순례 대열의 중간쯤에 위치했으나, 다음부터는 선두 가까이 자리를 잡았다. 선두 가까이에 위치해야 끝까지 좀더 다부진 자세로 오체투지 기도를 할 수 있으리라는 마음에서였다.

 

대열은 삼 열이었다. 맨 앞에는 당연히 문규현 전종훈 신부님과 수경 스님이 위치하고, 그 뒤에 기수가 서고, 다음에는 수녀님들과 여성 스님이 허리를 굽히면서 따르고, 그 뒤로 경북 상주시 화령성당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데리고 오신 신부님과 화계사에서 중학생들을 데리고 오신 스님들이 따랐다. 그리고 그 뒤로 우리 부자가 위치했다.

 

'놀토' 주말이어서인지 순례 참여자들이 많아 대열은 100미터도 넘어 보였다. 엎드림과 일어섬을 동시에 가능케 하는 징도 두 개를 사용했다. 징소리에 맞추어 착실하게 오체투지 기도를 계속하면서 나는 주모경을 반복했다. 납작 엎드려 두 팔을 뻗고 이마를 땅에 붙이고 '주님의 기도'를 할 때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부분에서 땅바닥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대학생 아들녀석과 나란히 위치하여 함께 오체투지 기도를 한다는 사실에서 뿌듯한 행복감을 안곤 했다. 아빠의 뜻을 이해하고, 오체투지 순례가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숭고한 순례임을 깊이 깨닫고 기꺼이 동참해준 녀석이었다.

 

내가 나이 마흔에 결혼하여 딸 다음에 얻은 아들이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품이어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줄곧 학급 간부 노릇을 하더니 고3 시절에도 반장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반(班)대표가 되었다. 51명중의 대표를 투표로 선출하는데, 추천 후보가 2명이었다고 한다. 한 명은 나이가 위인 재수생이어서 남학생들이 많이 표를 주었는데, 과반수에 달하는 여학생들이 녀석에게 표를 몰아주어서 쉽게 반 대표가 되었다고 한다.

 

녀석은 2학년이 되면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데, 사회과학대학에 속했으니 정치외교학과나 행정학과를 취할 계획이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머리 싸매고 공부할 것 같지는 않다. 일찍이 피아노를 배웠는데, 피아노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는지 저 혼자 노력으로 기타도 배워서는 요즘 노상 기타를 끼고 산다. 대학 음악동아리에 들어가서 베이스 기타를 맡았다며, 요즘 축제 준비 때문에 매일 합주 연습을 한다고 한다.

 

녀석은 친구가 많다. 중학생 때는 성당에 이삼십 명의 남녀 학생들을 몰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외지로 고교 진학을 한 바람에 성당 학생회가 좀 썰렁한 상태가 되었는데, 녀석이 집에 오는 주일에는 학생들이 갑자기 많아지는 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녀석은 오체투지 순례를 하러 가는 차 안에서 친구들과 계속 휴대폰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를 했다. 아빠와 함께 오체투지 순례를 하러 간다는 말을 했고, 오체투지가 뭐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오체투지에 대해서, 또 오체투지 순례기도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하곤 했다.

 

나는 녀석에게 지레 미안한 마음을 갖곤 한다. 녀석이 청운의 꿈을 안고 그 꿈을 펼치려면 우선 아비의 경제력이 밑받침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럴 주제가 못 된다. 아들이 아비의 후광 덕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이고, 어느 면으로는 좋은 일이기도 할 터인데, 그것 역시 나로서는 전무한 일이다. 녀석은 아비가 마련해둔 경제적 기반도 후광 덕도 없는 상태에서 자력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에 대해서 조금은 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녀석이 하느님 신앙 안에서 바르고 착하고 의롭게 살기를 바란다. 물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지만, '너른 마음, 깊은 생각, 높은 정신'을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 현실 문제들에 무관심하거나 외면하는 사람, 자신의 출세나 이익만을 쫓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따뜻한 마음과 뜨겁게 정의를 추구하는 정신을 지니고, '사회적 고민'을 치열하게 안고 사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자식을 둔 아비들은 너나없이 자식에게는 최대한 잘해 주고 싶고, 좋은 아버지이고 싶어한다. 그런 당연지사와 인지상정 외로 나는 내 자식을 '생각하는 사람', '의로움을 추구하는 사람', '사람의 길·생명의 길·평화의 길'을 찾고 구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것이었다.

 

문규현 신부님은 또 한바탕의 오체투지를 마치고 5분 동안 휴식을 할 때, 아버지를 따라 오체투지 순례에 참여하는 대학 새내기가 기특한지 내 아들녀석의 어깨를 두드려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까리따스 수녀회의 한 분 수녀님은 내 아들녀석에게 관심을 갖고 5분 휴식을 할 때마다 옆에 앉아 대화를 하시곤 했다.

 

이날 나는 끝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비록 오후 한 나절의 기도였지만, 종료 지점까지 열심히 오체투지 기도를 했다. 그 사실에서 뿌듯함을 안았다. 더욱이 아들 녀석과 함께 했다는 사실에서 더욱 큰 기쁨과 고마움을 안고, 진심으로 아들녀석에게 감사했다.

 

순례단 신부님들과 스님들, 그 외 여러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효행공원의 내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아들녀석의 손을 잡았다. "아들아, 고맙다. 아빠와 오체투지 기도를 함께 해주어서…"하니, 씨익 웃는 녀석의 어깨를 힘껏 안아주었다.

 


태그:#오체투지 순례, #문규현 신부, #전종훈 신부, #수경 스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