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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비 온다고 했는데 장군봉에 올라보니 하~수상하다...
▲ 금정산 장군봉 밤에 비 온다고 했는데 장군봉에 올라보니 하~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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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5월, 함께 해서 행복한 산행

처음 있는 일이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대동하고서 산행을 하는 것은. 나와 남편 외에, 바로 밑에 여동생 넷째 동생가족과 남동생가족 모두 열한 명이 함께 산행을 한다. 어제는 5명, 오늘은 11명, 점점 불어난다. 예서제서 약속한 장소에 모여(양산 사송리) 양울교회 위쪽에 차를 세우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에 오른다.

사송리는 금정산 등산할 때 자주 이용하던 길이다. 어제 날씨는 아주 맑고 화창했는데 오늘 일기는 불안하다. 밤부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약속한 산행을 감행했지만 흐렸다 맑았다 하면서 바람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함께 모여 산행한다는 기쁨이 앞선다.

산행길...
▲ 금정산 장군봉... 산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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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더욱 울창해진 것 같다. 이곳은 겨울산행하면서 만난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앙상한 나무들과 발아래 수북이 낙엽 쌓인 길 걸었던 것이 언제일까. 지금은 그 앙상하던 나무들에 연초록 옷을 입혀 놓고 있어 숲은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와~! 공주마마 꽃가마 타고 가네

다섯 살짜리 지혜와 도현이 서연이, 오늘은 고등학생이 된 조카 혜연이까지 함께하는 산행길이다. 바로 전날 시험을 마치고 산행에 합세한 조카 혜연이는 이번 산행이 무척 좋은가보다. 가슴이 탁 트인다며 얼굴은 연신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었다.

엄마랑 아빠랑...지혜...
▲ 장군봉 엄마랑 아빠랑...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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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 딸 지혜는 엄마 아빠랑 손잡고 등산길 조금 오르는가 싶더니 웬걸 꾀보 이지혜, 다리가 아프다는 시늉을 한다. 이지혜가 다리 아프다고, 업혀가고 싶다고 할 땐, 언제나 새초롬하게 눈을 내리깔고 슬픈 표정을 짓는다.

시선을 집중시켜놓고 슬픈 기색을 띠고서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지혜 엄마 아빠는 같이 걸어가자고 양손을 잡지만, 그동안 지혜를 보고 싶어 했던 고모부(남편)는 지혜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날쌘 돌이 마징가제트'처럼 지혜를 덥석 안아든다.

고모부는 등에 진 등산 배낭 무게는 아랑곳하지 않고 덥석 안아들고 낑낑대면서도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지혜 엄마 아빠가 말릴 새도 없이, 지혜를 덥석 안아들고 가파른 산길이든 완만한 길이든 힘든 줄도 모르고 올라간다.

등짐 무거운데다 무리하는 것 같아 내가 다가가서 내려놓고 걸려 가자고 말려도 보지만, 잠깐 내려놓는 시늉하다 다시 안고 간다. 지혜 아빠인 남동생이 지혜를 안고 가다가 또 고모부가 안고 걷다가 하면서 지혜는 쉽게 산을 오른다.

지혜랑 산행할 땐 어련히 그렇다고 생각하는 우리와 달리 이번 산행에 합세해 그 모습 처음 보는 넷째동생 남편(제부), 한 마디 한다. "와~!지혜 꽃가마가 따로 없네! 진짜 꽃가마 하나 만들든지 해야겠네. 지혜야 기다려, 다음엔 지혜를 위한 특별한 꽃가마 만들어 오께!" 한다.

공주가 따로 없다. 공주마마를 위한 인간 꽃가마가 기꺼이 되는 남편, 언제 어디서나 재롱둥이 지혜가 주인공이다. 막내 지혜를 좋아하는 남동생(지혜아빠)이 지혜사랑을 나타낼 틈도 빼앗고 마는 지혜고모부, 그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다.

지혜만 따라다니는 고모부!

조카 지혜...
▲ 장군봉 조카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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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날 흐리고, 금방 빗방울이라도 떨어질 것 만 같다가도 살짝 비쳐드는 햇살에 한 가닥 희망 갖고서 끝까지 산행길 오른다. 초록 숲이 좋아 깊은 숨 들이쉰다. 완만한 길이 계속되는가 싶더니 가파른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이 길은 처음 가보는 길이다. 높은 오르막길이 아이들에겐 좀 무리가 있을 듯싶다. 어쩌나, 지혜! 엄마 아빠와 손잡고 걷다가 돌부리에 그만 넘어지고 만다. 무릎에 작은 생채기, 영광의 상처가 하나 생겼다. 걷다가 바지 끝을 걷어 올리고 쳐다보고 또 쳐다보면서 영광의 상처 자랑이다.

...
▲ 조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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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걷겠다고 슬픈 표정 짓는 지혜를 향해 고모들이 "야~지혜 잘 걷는다. 다리가 예뻐졌네!"하고 말하자 억지로 걷던 길 멈추고 바지를 걷어 올려 제 다리를 쳐다본다. 예뻐졌나 보는 것이다. 가다가 또 멈추고 슬픈 표정 지을 때마다 다리가 예뻐졌다 하면 다시 한번 바지를 걷어 올려 종아리를 내려다보곤 해서 일행들을 웃게 만든다.

조카 도현이는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모두들 멈추게 해 놓고 제일 높은 곳까지 뛰어 올라가서 짧은 연극까지 선보이니 가파른 오르막길도 모두들 즐겁기만 하다. 지혜의 고모부 중에 특별한(?) 고모부인 남편은 오직 지혜 가는 곳만 따라 다닌다.

지혜가 엄마와 함께 앞에 가면 지혜엄마 뒤에 바짝 붙어 걸어가고, 지혜가 뒤로 처져서 아빠랑 걸어가면 또 맨 뒤에 처져서 지혜 옆에 붙다시피 걷는다. 이따금 지혜를 독차지 하고 간다. 나는 뭐야~! 이럴 땐 각시도 안 보이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냥 걷는다.

지혜는 마치 꽃가마라도 탄 것처럼 둥개둥개 즐거운 표정이다. 날씨가 하 수상하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아이들도 싫다, 힘들다 하지 않고 잘 올라간다. 드디어 장군봉 정상이 가까운가보다. 계속되던 오르막길 끝에 바위 전망대가 있다. 드러나기 시작하는 전망. 바람은 마음껏 불어댄다.

비야, 바람아 멈추어 다오!
중간고사를 끝내고 난 다음날, 산행에 합세한 조카 혜연...날아갈 듯 좋아한다.
▲ 장군봉 중간고사를 끝내고 난 다음날, 산행에 합세한 조카 혜연...날아갈 듯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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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오른 장군봉 억새평원...바람불어...
▲ 금정산 장군봉 ...힘들게 오른 장군봉 억새평원...바람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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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흐린 하늘엔 금방 빗방울이 떨어질 것만 가다. 저 멀리 금정산 고당봉이 조망된다. 금정산 최북단에 우뚝 솟아 있는 장군봉(737미터)은 금정산 최고봉인 고당봉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가을이면 억새물결 춤추던 장군봉엔 철쭉꽃이 흩어져 피었다.

잘 알려진 신불평원이나 사자평원의 규모에 미치지 못하지만 가을 억새로 손색없는 곳으로, 산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가파른 산길 올라 넓게 펼쳐진 평원에 맞닥뜨리는 장군봉은 넓고 아늑해 언제 찾아도 좋다. 먹구름 낀 날씨에 바람마저 불어대니 몸이 움츠려든다.

억새평원...사이로 걷다...
▲ 장군봉 억새평원...사이로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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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조카들에게 장군봉 억새평원에서 마음껏 이 하루 뛰어놀며 보내게 하고 싶었는데 어이할꼬. 하늘에 먹구름아, 사라져다오, 비야, 비야 조금만 더 있다 밤에나 오렴. 하지만 먹구름도 바람도 물러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망바위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넓디넓은 장군봉 억새평원이 펼쳐진다. 앞서 달려간 조카 혜연이와 도현이와 넷째 동생은 힘들게 올라와 이렇게 높은 곳에 넓은 평원이 있어 기절할 듯 좋은 듯 탄성을 내지른다. 길게 이어진 좁은 오솔길 따라 억새평원을 걷는다.

맛있는 점심~
▲ 장군봉 억새평원 맛있는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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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바람에 머리카락은 함부로 날리고 밤물결처럼 춤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깊게 줄을 이어 억새평원에 이르고 평원에는 낮은 억새 사이로 철쭉꽃 분홍빛으로 꽃물 들여놓고 있다. 마치 빛이 없는 억새밭에 빛을 주듯, 피돌기가 돌게 하듯 붉게 피어 흐드러졌다.

바람이 거칠거칠 불어 모두 추워 어쩔 줄 모르고 남편은 먼저 달려가 바람이 닿지 않는 곳을 찾는다. 다행이다. 장군봉 정상아래 높은 바위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그 아래 옹송거리고 앉는다. 자리를 펴고 도란도란 모여 앉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어떡하지?! 내려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왔는데 오자마자 내려가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추워하는 조카들에게 가져온 여벌옷을 입힌다. 지나가는 비이기를 바라며 남편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잠재우고, 우린 일단 점심도시락을 편다.

김밥, 부침개, 과일 등을 펼쳐놓고 점심을 먹는 시간, 빗방울은 그쳤다가 다시 떨어지다 한다. 어른들이야 괜찮지만 아이들 때문에 아쉬움을 접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할 것 같다. 하늘은 흐렸다 맑았다 계속 반복하는데 우린 다시 왔던 길로 하산한다.

"여보! 코피 터졌어!"

위에 오른쪽부터  조카 지혜, 도현, 서연..
▲ 장군봉 위에 오른쪽부터 조카 지혜, 도현,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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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등에 혹은 고모부 품에 안겨 산에 올랐던 지혜는 많이 고단했나보다. 하산 길엔 아예 제 아빠 등에 얼굴을 묻고 코를 골며 잠이 들어버린다. 남편은 하산 길에 다리 아프다고 주저 앉아 있는 조카 도현이를 안고 걸어 내려가다가, 서연이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도현일 내려놓고 서연이를 안고 내려간다.

서연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항상 막내 동생한테 사랑을 뺏기고 점잖은 언니 노릇만 해오던 서연이, 드러내놓고 좋은 기색하진 않지만 얼굴 가득 번지는 미소가 서연이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럴 때 호강을 해 보는 것이다.

혜연이! 날으다!
 혜연이! 날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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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조카들은 안고 가는 것도 좋고 업고 가는 것도 좋지만 저러다가 남편은 몸살을 할 듯싶다. 정말 오랜만에 부산, 양산, 서창에서 흩어져 사는 형제자매들 가족이 함께 모여 산행을 하였다. 우리가 너무 부지런을 떨었던 것일까.

하산해 내려오는 길에 이제 막 등산길에 오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빗방울 그치고 해는 구름 속에서 배시시 웃으며 내비친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욕실에서 나오던 남편이 나를 불러댄다.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한 다급한 목소리다. 나는 얼른 방에서 달려 나와 남편에게 간다. 고개를 쳐들고 하는 말,

"여보! 코피 터졌어!"

보아하니, 붉은 피가 코끝에 묻어 있다. 그럼 그렇지, 만용을 부리더니, 쌍코피가 터지고 말았다. 일단 고개를 위로 들게 해놓고 화장지로 틀어막고 눕게 한다. 못 말려 정말! 나는 눈을 흘긴다.

쌍코피가 터지고도 행복한 웃음을 웃는 남편을 향해 "앞으론 그런 만용 부리지 마세요! 자기가 무슨 천하장사라고! 조카들 셋을 번갈아가면서 안고 걸어요, 걷긴!" 남편은 "응~알았어!"하며 콧소리를 낸다.

날쌘돌이 마징가제트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쌍코피가 터지고도 행복한 남편, 어린 조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에 흐뭇해 한다. 조카들은 행복도 하겠다. 이런 고모부가 있어서! 이런 고모부 마음 알까 모를까.

산행수첩
1. 일시 : 2009년 5월 2일(토). 흐림, 약간의 빗방울
2. 산행기점 : 양산 사송리 양울교회
3. 진행 : 주차장(9:45)-약수터(10:05)-장군봉억새평원(11:30)-식사 후 하산(12:00)-주차장(1:30)
4. 산행시간 : 2시간 45분


태그:#장군봉, #금정산, #억새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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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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