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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를 기억해보면 분명 곳곳에 볼링장이 있었다. 시내 중심가엔 어김없이 큰 볼링 핀이 세워져 있었고, 사람들을 유혹했다. 그랬던 볼링장을 요즘엔 보기가 참 힘들다. 인터넷 검색을 해야 간신히 볼링장을 찾을 수 있다. 그 많던 볼링장이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90년대 전국에 갑작스런 볼링 붐이 일면서 전국엔 볼링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건물주들이 기회를 노리고 여기저기에 볼링장을 마구잡이로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도 잠시 볼링의 인기는 90년대를 지나면서 서서히 꺼져갔다."

지난 4월 28일 오후, KBS 88체육관에서 만난 함인균 KBS 스포츠 마케팅팀 과장의 말이다. 함 과장은 "여러 종류의 레저스포츠가 차차 국내에 도입됐고 집안에서 즐길 수 있는 컴퓨터와 게임기 등이 보급되면서 볼링의 인기가 점점 줄었고, 볼링장 역시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250여개에 이르렀던 서울 시내의 볼링장은 대부분 사라졌고 서울 시내의 대형 볼링장은 88체육관을 비롯한 3개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며 "볼링장이 사라지면서 즐기는 사람의 규모도 확실히 축소됐다"고 밝혔다.

평일 오후여서인지, 아니면 정말 볼링의 인기가 식어서인지, 이날 볼링장을 찾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크디 큰 체육관에 몇 사람 없는 걸 보니 휑한 느낌이 들었다.

과연 이대로 볼링이 '죽은 스포츠'가 되는 걸까. 볼링장을 찾은 주부 동호회원들에게 '볼링 살리기'의 해법을 물었다.

나이 무관, 비용도 저렴한 '매력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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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은 '매력덩어리'다. 일단 다른 스포츠에 비해 접근성이 높다. 나이도 크게 상관없고, 즐기는데 비용도 저렴하다."

강서지역 주부 볼링동호회 '한마음' 회원이 말하는 볼링의 매력이다. 축구나 농구 같은 격렬한 스포츠는 남성에겐 인기가 있을지 몰라도 여성이나 노인·어린이가 즐기기에는 벅차다. 골프 등은 장비를 사는 데 상당한 지출을 해야 하기에 가볍게 즐기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런 점에서 볼링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우선 볼링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 거의 없다. 옷은 가벼운 옷차림이면 되고, 슈즈나 볼은 볼링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대여할 수 있다(물론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개인 공을 살 수도 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이다).

게임비도 저렴하다. 88체육관의 경우 한 게임에 약 2400원~3400원으로 개개인에 따라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다른 스포츠들에 비하면 부담이 적다.

'한마음'은 1990년 볼링 붐이 한창일 당시 조직됐다. 총 회원 수는 18명이며 40대~60대 주부들이 주를 이룬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 모여 볼링을 치며 친목을 다진다. 체육관 내부가 그리 따뜻한 온도가 아니었음에도 다들 팀 유니폼인 주황색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얼굴의 표정도 그 나이대의 주부에게서 찾아보기 쉬운 무뚝뚝하거나 권태로운 표정이 아닌, 열정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젊고 활기차 보인다'는 것이 첫 인상이었다.

이날 볼링장을 찾은 회원의 대부분은 한마음 설립멤버로 계속 볼링을 쳐왔다고 하니 근 20년을 쳐 온 셈이다. 과연 실력은 어떨까? 평균 190점에 컨디션에 따라서는 200점도 거뜬히 넘긴다고 한다.

앞서 말한 대로 볼링 붐은 한참 전에 꺼진지라 대중적인 스포츠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반대로, '한마음' 동호회처럼 오랜 기간 꾸준히 볼링에만 매진하는 마니아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함인균 부장의 말에 따르면 현재 88체육관에는 약 80개의 볼링 팀이 활동 중이라고 한다. 그 구성원도 다양하다. 한마음 같은 주부클럽이 대략 절반 정도 되지만, 이외에도 학생클럽, 직장인 클럽 등 다양한 계층,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볼링을 즐긴다.

20대와 70대가, 신입사원과 부장이 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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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의 또 다른 매력은 여럿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것이다."

한마음의 다른 회원이 거들었다. 사실 혼자서 즐기는 스포츠가 어디 있겠냐마는, 볼링처럼 여럿이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스포츠도 많지 않다. 또 참가인원이 정해져 있는 타 스포츠와 달리 볼링은 사람이 얼마나 많건 관계없다. 그냥 몇 덩어리로 툭 갈라서 각각 공을 굴리고 그 총합을 내서 승부를 가리면 그만이다.

특히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접근성이 높은 종목이기에 이 특징은 더욱 빛을 발한다. 20대와 70대가, 신입사원과 부장이 한자리에 모여 공을 굴리면서 서로 칭찬해 주고 파이팅을 외쳐주는 훈훈한 장면을 볼 수 있는 스포츠다. 짜릿한 스트라이크의 쾌감은 선수뿐만이 아니라 그 선수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팀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건강한 몸'은 덤이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스포츠임에도 현재 한국 볼링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낮은 인지도로 인해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야구의 WBC나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같은 대형 이벤트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다시 볼링 붐이 일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볼링의 미래가 아예 어두울까? 함 부장은 "최근 CA(특별활동) 등을 이용해 볼링을 즐기는 학생들이 늘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현재 볼링은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생소한 스포츠이지만, 볼링을 즐기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처럼 볼링의 운동효과와 재미가 사회로 점차 확산되어 간다면 다시 한 번 대중 스포츠로 인기를 얻을 날이 오지 않을까"라며 기대를 내비쳤다.

또한 "최근 건설되고 있는 신도시들에 88체육관보다 큰 30레인 이상의 대규모 볼링장을 짓고 있다는 점도 볼링의 미래를 밝게 한다"고 밝혔다.

스트라이크에 함성이 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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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잠시 볼링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경기를 보면서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했다.

공을 굴리기 전엔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다. 누가 공을 들건 말건 돌아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하나, 둘, 셋, 넷" 볼링의 '포 스텝'에 맞춰 공을 놓은 순간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또르르 소리를 내며 공이 굴러가는 동안은 다른 일에 바쁘던 옆 라인의 사람들까지 숨을 죽이고 공만을 바라본다. 실로 긴장되는 순간이다.

"제대로 갈까?"
"도랑에 빠지는 거 아냐?"
"그렇지, 조금만 옆으로! 옆으로!"

이윽고 공이 첫 핀에 박히고 곧 와르르 소리를 내며 나머지 핀들까지 쓰러졌다. "와~"하는 함성이 절로 나온다.

"아~ 이번 게임은 왼쪽 팀이 따놨네."
"아이, 코치님도 참!"

농담을 주고받으며 너나없이 웃을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몸 건강에 정신 건강까지 챙겨주는, 생활스포츠 볼링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볼링 추억의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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