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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여래불상
 갓바위 여래불상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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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갓바위에 정성껏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면서?"
"그럼 그냥 갈 수 없잖아? 갓바위 불상에게 무슨 소원을 빌어볼까?"

연등이 줄줄이 걸린 돌계단을 올라서자 저만큼 맞은편에 <어서 오십시오, 경산 갓바위, 소원성취 하십시오. 경산시장>이라 쓰여 있는 둥그런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그 안내판 오른편 제법 넓은 공터엔 수많은 연등이 걸려 있는 아래 사람들이 '와글와글' 하다.

사람들은 둥그런 갓을 머리에 쓴 아주 특이한 모양의 불상을 향해 엎드려 절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몇 번의 절을 끝내고 일어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몇 명의 여성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절을 하고 있었다.

석탄일 전날 관봉 갓바위 앞에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

산행을 함께 한 두 사람이 그들 속으로 끼어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세 번의 절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보물 431호인 관봉석조여래좌상(갓바위) 앞에는 다음날인 석탄일 행사를 준비하는 꽃바구니가 놓이고 신도들은 촛불을 켜거나 절을 하고 있었다.

동봉으로 오르는 길가에서 만난 거대한 암벽
 동봉으로 오르는 길가에서 만난 거대한 암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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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불교문화성지로 일컬어지는 팔공산을 찾은 것은 석탄일 전날인 5월1일이었다. 서울을 출발하여 산행기점인 수태골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팔공산을 오르는 길은 처음엔 완만한 길이었다.

그러나 30여분을 오르자 산길은 완연히 달라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길이 일행들을 지치게 한다. 급경사 널찍한 암벽 앞을 지나 정상인 비로봉 동쪽의 동봉까지는 3.5킬로미터로 1시간 50분이 소요되었다.

정상인 비로봉(해발 1193m)은 정부시설물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접근할 수 없었다. 길이 막힌 비로봉으로 가는 넓은 공터엔 점심을 먹는 등산객들로 가득하다. 동봉으로 오르는 길가에 서있는 대구시 유형문화재 20호인 석조약사여래입상은 오랜 풍상에 형체가 조금 희미했지만 높이가 6미터나 되는 매우 특이한 모습이다.

동봉에 있는 여래상
 동봉에 있는 여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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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팔공산의 주봉인 비로봉 대신 서봉과 함께 독수리의 날개 같은 모습으로 솟아 있는 동봉에 올랐다. 동봉은 해발 1155미터로 뾰족한 바위봉우리였다. 동봉에 올라서자 전망이 매우 좋다. 시야가 흐리긴 했지만 일망무제로 펼쳐진 조망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비로봉에 세워져 있는 몇 개의 송신탑들이 마치 괴물의 뿔처럼 흉물스럽다. 그러나 반대편 능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산줄기들이 우람한 산세를 유감없이 드러내주고 있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암봉은 염불봉이었다.

염불봉에서 조암을 지나고 신령재를 거쳐 농성재로 가는 능선길에서 바라보이는 오른편 산 아래 기슭에 자리 잡은 고찰이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일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자 오른편 산자락을 까뭉개버리고 만든 널찍한 골프장 한 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동봉으로 오르는 길에 뒤돌아 바라본 비로봉
 동봉으로 오르는 길에 뒤돌아 바라본 비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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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재를 지나면 능선은 오른편으로 급커브를 틀었다가 선본재를 지나면서 왼편으로 꺾여 인봉과 관봉으로 이어지는 7.6킬로미터의 능선길이 이어진다. 능선길 곳곳에 솟아 있는 바위봉우리들이며 암릉으로 이어진 능선길이 날카로운 모습이다.

굽이굽이 거대하고 날카로운 산세 속에 수많은 도량들을 품다.

"팔공산엔 유난히 절이 많은 것 같네요."

능선길을 앞장서 걷고 있던 여성등산객이 뒤돌아보며 내게 묻는다. 그러나 나는 팔공산이 품어 안고 있는 사찰들을 잘 알지 못했다.

"네, 그렇습니다. 이 팔공산에는 다른 어느 산보다 절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팔공산을 영남의 불교문화성지라고 한답니다."

내 뒤를 따르던 50대로 보이는 여성등산객이 나를 대신하여 대답한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대구에 사는 등산객들이라고 한다.

웅장하고 날카로운 팔공산 줄기
 웅장하고 날카로운 팔공산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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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말에 의하면 팔공산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를 비롯하여 파계사, 부인사, 은해사. 선본사. 덕은사. 보은사. 용주암, 용덕암, 약사암, 부도암, 내원암, 삼성암, 비로암 등 사찰과 암자가 20여개가 넘는다는 것이었다.

"대도시 부근에 있는 산으로는 광주의 무등산과 대구의 팔공산이 쌍벽인데 산세는 두 산이 아주 다른 모습이네요. 광주의 무등산은 육산이면서 우람하고, 펑퍼짐하고 어머니 품처럼 넉넉해 보이는 산인데, 대구의 팔공산은 더 높기도 할 뿐더러 뾰족뾰족 날카롭고 바위가 많은 산인 것 같아요."

내가 대구의 팔공산과 지난 겨울에 다녀온 광주의 무등산을 등산하며 느꼈던 점을 비교하여 말하자 대구에서 왔다는 여성등산객들이 말을 받는다.

"팔공산은 대구 남자들의 성미를 닮아서 그렇습니다. 성질 급하고 자기네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남자인 줄 알거든요."

"허허허 거 참, 닮았다면 대구 남자들이 팔공산을 닮았겠지요, 팔공산이 대구남자들을 어찌 닮겠습니까? 허허허."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대구 아주머니들의 말을 받아 우리 뒤를 따르던 다른 등산객이 어이없어 하며 웃는다.

팔공산 산자락을 까뭉개고 만든 골프장
 팔공산 산자락을 까뭉개고 만든 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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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호호호."

아주머니들도 덩달아 웃어넘기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선본재 왼편 아래 골짜기에도 제법 커다란 절집들이 바라보였지만 사찰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저 앞에 마주 바라보이는 봉우리가 갓바위 봉우리인 관봉입니다. 봉우리 조금 아래 보이는 절이 선본사구요."

능선이 오른편으로 꺾이는 선본재를 지나자 능선 끝에 바라보이는 바위봉우리가 예사로운 모습이 아니다. 그 산자락 조금 밑으로 바라보이는 절집도 크고 우람한 모습이었다. 뒤돌아보니 멀리 비로봉이 아스라하다.

능선길에서 바라본 선본사
 능선길에서 바라본 선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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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팔공산은 서봉이 있는 서쪽의 칼날능선 쪽에서부터 시작하면 능선의 길이만 20킬로미터나 된다는데 참 대단한 산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걷는 동쪽 능선 7.6킬로미터도 이렇게 힘이 들고 어려운데..."

같이 걷던 다른 등산객이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눈길이 산줄기를 더듬는다. 잠깐 쉬었다가 관봉을 향했다. 멀리서 바라보기엔 날카로운 봉우리와 능선이지만 산길은 의외로 평탄했다. 곧 관봉 아래 도착했다. 관봉으로 오르는 돌계단 양쪽엔 예의 연등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관봉은 해발 851미터,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갓바위는 그리 크지 않았다. 부처의 머리에 얹혀 있는 찌그러진 갓모양의 돌이 특이하여 갓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진 여래좌상은 마침 다음날인 석탄일 행사를 위해 세 명의 보살들이 꽃바구니를 설치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오늘 이곳에서 무슨 소원을 빌었습니까? 저한테만 살짝 가르쳐 주실래요?"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고 있는 한쪽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할머니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갓바위 오르기
 갓바위 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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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은 왜 묻는교? 그런 건 묻는게 아니라예. 그케도 내 살짝 갈쳐드리지, 늙은 할머니가 무슨 소원이 있겠능교? 자식 손자들 잘되기나 바라지."

추운 겨울철이 아니면 매주 한두 번씩 이곳을 찾는다는 70대 초반의 할머니는 대구에 살고 있는 노인이었다. 건강해 보이는 노인은 매주 한 두 번씩은 800미터급 산을 등산하는 셈이었다.

사찰도 유명세 따라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갓바위는 불교 신도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정성껏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속설 때문에 매월 초하루나 입시철 등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1년에 무려 1천만 명이 찾는다는 갓바위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서도 몇 개의 사찰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절은 너무 썰렁하네. 연등 자리가 텅텅 비었잖아?"

갓바위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이 절집은 정말 대웅전 앞마당에 쳐놓은 연등줄이 썰렁했다. 매달린 연등수가 몇 개 되지 않아 초라한 모습이었다.

수많은 연등과 참배객들로 붐비는 갓바위
 수많은 연등과 참배객들로 붐비는 갓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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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도 참배객도 조용한 어느 절집
 연등도 참배객도 조용한 어느 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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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 유명세에 따라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뚜렷하구먼. 이 절을 거쳐 올라가는 갓바위 참배객들이 저렇게 많은데, 길목에 있는 이 절은 너무 초라한 모습이야. 저 연등이 바로 사찰의 신도수를 나타내고 재정상태도 나타내는 건데.."

자신도 불교 신자라는 등산객 한 사람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갓바위 주차장에 이르는 길가에서 만난 대부분의 절집들 풍경도 비슷했다. 그러나 사찰들은 하나 같이 입구에서부터 연등을 매달아 놓아 석탄일을 자축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수태골에서 시작하여 동봉과 관봉을 거쳐 내려온 거리는 12킬로미터 산행시간은 5시간이었다.


태그:#100대 명산, #팔공산, #이승철, #갓바위, #석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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