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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우짜노, 한나라당 찍어야지."

"'무조건 한나라당'은 옛날 얘기라카이."

 

천년고도 경주에선 '왕'의 측근들이 맞붙었다. '상왕'이라 불리는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가까운 정종복(58) 한나라당 후보와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표의 특보 출신인 정수성(63) 후보(무소속)가 초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다 '왕 총재'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를 12년 동안 보좌한 이채관(47) 선진당 후보까지 뛰어들었다.

 

선거 일주일 앞... 경주 민심은 '오리무중'

 

판세는 두 정 후보끼리의 '2강 구도'다. 한나라당의 '공천파동'으로 빚어진 '친이'-'친박' 사이의 내전이 되풀이되는 모양새다. 정종복 후보는 경주가 한나라당 지지세가 강한 TK라는 점을 살려 '일 잘할 여당 후보'라는 점을, 정수성 후보는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는 '박근혜 마케팅'을 한껏 활용하고 있다.

 

사전 여론조사를 보면, 두 후보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초박빙이다. 지난 15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조사에선 정수성 33.3%, 정종복 33.1%를 기록했다. 같은 날 모노리서치의 조사에서도 정수성 34.2%, 정종복 33.7%의 결과였다. 오차범위를 생각하면, 격차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접전이다.

 

이를 증명하듯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경주 민심은 좀처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지난 22일 만난 경주 시민들은 "미워도 다시 한번 한나라당"과 "박정희를 생각하면 박근혜 사람"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떨어뜨린 사람 다시 공천하다니... 우리 무시하나"

 

택시를 모는 황용운(59)씨는 "옛날 같으면 '무조건' 한나라당 아이었능교. 하지만 이제는 사람 보고 찍는다"라며 바뀐 민심을 대변했다. 황씨는 "정수성 후보에 대해서 잘 몰라 미덥진 않지만, 정종복한테 떠난 민심이 회복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주역 앞에서 떡집을 하는 전주형(36)씨도 "정종복 후보에 대해선 아직도 평가가 좋지 않다"며 "가진 것 없이 출발해 4성 장군까지 한 정수성 후보 정도면 인물로는 빠지지 않는 것 아니냐. 참신함과 사람 됨됨이를 보고 찍겠다"고 말했다.

 

지난 해 18대 총선에서 떨어진 정종복 후보를 다시 공천한 한나라당에 대한 불만도 엿보였다. 성동시장에서 만난 상인 유병태(60)씨는 "왜 떨어진 자를 또 공천하능교. 경주에 국회의원 시킬 사람이 그리 없나"라며 "한나라당이 우리를 물 아래로 보는 거 아니냐(무시하는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박정희 향수'에 이끌려 정수성 후보로 기운 이들도 있었다. 안강읍 안강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경주가 그래도 발전한 건 보문단지를 만든 박정희 전 대통령 때"라며 "박근혜 전 대표가 인기가 좋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수성 후보는 이런 민심을 한껏 자극했다. 대표적인 선거구호도 "박정희 대통령의 경주계획, 박근혜와 정수성이 완성하겠습니다"로 정하고 현수막을 내걸었다. 유세차량엔 박 전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을 커다랗게 새겼다. 정광용 대표 등 '박사모'도 경주로 달려가 정수성 후보를 돕고 있다.

 

"미워도 한나라당 찍어야 않겠능교... 그래야 경주가 발전한다"

 

반면, 정종복 후보 측에선 계파색을 최대한 줄였다. 또 이름 석자보다는 '여당 후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현수막에는 "경주발전 한나라당과 함께-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본사 도심이전, 행정복합타운 건설" 등 주요 공약을 적어 지역 현안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전통적인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다.

 

이날 경주를 찾아 지원유세를 편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진보정권에 10년을 내줬으면 이제는 보수가 단결해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좋아도 정종복, 정종복이 좋아도 정종복을 찍어달라"고 외쳤다.

 

실제 아직 경주는 "그래도 한나라당"을 외치는 유권자가 적지 않다. 안강시장에서 만난 윤향순(51)씨는 "정종복 후보가 17대 때 의원을 하면서 별로 해놓은 건 없다는 평이지만, 그래도 당을 봐서 한나라당 후보를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성동시장에서 그릇가게를 하는 60대 후반의 한 상인도 "여는(여기는) 한나라당 (텃밭)이니 당 사람을 밀어줘야 하지 않겠능교"라며 "그래야 경주가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상인 이상준(61)씨는 "정종복 후보가 17대 의원할 때 경주에는 무심하고 중앙 일에만 힘쓰니 우리가 좋아하겠느냐"면서도 "사람은 미워도 경주 발전을 위해서는 당을 보고 찍어야 하나 고민"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되풀이된 '계파싸움'에 혀를 내두르는 이들도 있다. 안강읍에서 만난 김아무개(58)씨는 "뽑아놔봤자 저거끼리(자기들끼리) 만날 싸움만 하니 투표할 마음이 없다"고 싸늘하게 말했다.

 


태그:#재보선, #경주, #정종복, #정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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