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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은 무엇일까. 강원도 바닷가를 자주 찾는 이는 오징어와 황태, 양미리, 과메기를 비롯한 싱싱한 생선회가 눈앞에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릴 것이다. 하지만 강원도 산간을 자주 찾는 이는 메밀로 만든 막국수와 전병, 부침개, 국죽과 함께 더덕, 곤드레, 춘천 닭갈비, 횡성 쇠고기와 찐빵이 실루엣처럼 떠오를 것이다.

 

나그네에게 누군가 강원도에 가서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있고 기억에 남는 음식이 무엇이더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미끌미끌하면서도 쫄깃하게 씹히는 오징어회? 어른 팔뚝처럼 굵으면서도 막걸리 한 잔 곁들여 먹으면 고소하고 찰지게 감기는 아바이순대? 속풀이에 그만인 뽀오얀 황태국과 메밀국죽?

 

나그네 또한 강원도 음식 중 가장 맛난 것 어느 한 가지를 콕 집어 말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왜냐하면 먹는 음식마다 독특한 맛과 그 지역에 얽힌 오랜 정서가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그네는 1980년대 허리춤께 강원도 속초 앞바다를 처음 찾았다. 그때 나그네는 속초 앞바다 방파제에 앉아 소주에 오징어회를 참 맛나게 먹었다.

 

그래서일까. 그때부터 강원도 하면 늘상 속초 앞바다와 오징어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훌쩍 지난 뒤 강원도 산간을 여행하기 시작하면서 강원도 맛이 오징어뿐만이 아니란 걸 깨닫기 시작했다. 메밀로 만든 독특한 향과 쫄깃한 맛이 그만인 막국수와 전병, 부침개, 국죽, 곤드레 등에 포옥 빠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어머니 이어 2대째 25년 동안 꾸리고 있는 막국수집 

 

"6번 국도 주변에는 메밀로 만든 막국수 집이 여러 집 있지요. 하지만 저희 집에는 예로부터 외지 손님보다 이 마을에서 사는 어르신들이 더 많이 찾아와요. 서울 사람들이나 외지 사람들은 막국수를 여름철에 먹는 음식쯤으로 여기지만 강원도 사람들은 가장 추울 때 막국수를 즐겨 먹어요. 막국수는 원래 그렇게 먹던 음식이었죠."

 

3월 20일(금) 오후 5시께 찾았던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산전리를 가로 지르는 6번 국도변에 자리 잡고 있는 용둔 막국수집. 어머니 김해수(65)씨에 이어 2대째 꾸리고 있는 이 집을 나그네가 일부러 찾은 것도 그때 맛보았던 그 메밀로 만든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착착 감기는 강원도 음식이 자꾸만 눈앞에 가물거렸기 때문이다.

 

같은 면에 살고 있는 사진작가 원종호(56)씨와 함께 이 집에 들어서자 주인 김진영(여, 44)씨가 주방에 서서 메밀부침을 시커먼 프라이팬 위에 부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김씨가 얼굴은 나오지 말게 찍으라 한다. 음식만 맛나게 잘 만들면 되지 굳이 얼굴까지 알릴 필요는 없다는 투다.

 

김씨에게 좁쌀동동주(5천원) 한 통과 메밀부침(5천원), 메밀전병(5천원), 편육(중, 1만2천원)을 시키며 막국수(5천원)는 나중에 달라고 하자 메밀전을 바쁘게 부치면서도 고개로 앉을 자리를 가리키며 환하게 웃는다. 김씨 미소 속에 봄내음이 슬슬 묻어난다. 역시 25년 동안 막국수집을 꾸려온 달인답다.

 

 

통메밀을 집에서 껍질 벗긴 뒤 방앗간에 갈아 쓴다

 

"저희는 이곳 횡성에서 농사 지은 통메밀을 사서 집에서 껍질을 벗긴 뒤 방앗간에 가서 갈아 쓰지요. 다른 막국수집에서는 대부분 아예 빻아진 메밀가루를 사서 쓰지요. 밑반찬과 장류 등도 모두 직접 농사 지은 것을 어머니께서 만드시고, 아무리 바빠도 외부 사람은 쓰지 않고 가족끼리 직접 꾸리고 있어요."

 

자리에 앉자 식탁 위에 설탕과 식초, 참기름, 고추장, 겨자 등이 담긴 통이 놓여 있다. 훈민정음이 새겨진 벽지가 발린 벽 한 귀퉁이에는 '국수 맛나게 드시는 방법'이란 글씨가 매달려 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바라보니 '식초 2바퀴, 설탕 2스푼, 참기름 1바퀴 정도 넣으세요'라고 적혀 있다.

 

그 아래 '여기에 겨자도 넣어주는 센스! 양념이 골고루 섞이도록 비벼주세요'란 글씨와 함께 '(양념김치와 무김치를 함께 넣어서 드셔도 좋습니다.) 메밀은 TV에 나올 만큼 고혈압에 좋은 음식입니다.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란 글씨가 마치 어릴 때 밥을 먹을 때마다 일일이 가르치던 어머니 잔소리처럼 살갑게 다가선다.

 

다시 자리에 와서 앉자 식탁 위에 주전자 하나와 컵이 놓인다. 숭늉일까? 아니다. 이 주전자에 들어 있는 맛국물은 막국수를 삶아내 건지고 난 뒤 남은, 아무런 간을 하지 않은 맛국물이다. 맛국물을 컵에 따라 입에 대자 구수하면서도 향긋한 맛이 맴돈다. 이 맛을 뭐라 해야 할까. 속살이 찌는 물맛이라고나 해야 할까.

 

 

강원도 맛은 짭짤한 듯하면서도 매콤함 뒤에 오는 깔끔한 맛

 

"저희는 예로부터 강원도 음식이 지니고 있는 옛맛을 되살리려 애쓰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손님들이 저희집 막국수를 먹어보고 짭짤한 듯하면서도 매콤함 뒤에 깔끔한 맛이 난다고 그래요. 사실 그 맛이 영서 내륙지방에서 사는 사람들이 즐기는 독특한 맛이지요. 흔히 뜨거운 것을 먹으면서 시원하다 그러지요. 바로 그 맛이 강원도 향토맛이랍니다."

 

김씨 설명을 들으며 맛국물을 몇 번 홀짝이고 있을 때 밑반찬과 좁쌀막걸리, 메밀부침, 메밀전병, 편육이 차례대로 나온다. 밑반찬은 양배추와 무로 만든 무김치와 묵은지, 백김치, 양념간장과 겨자, 송송 썬 마늘과 풋고추, 새우젓, 된장이 모두다. 특히 밑반찬으로 무김치가 나오는 까닭은 무와 메밀이 서로 궁합이 아주 잘 맞기 때문이란다.

 

좁쌀 막걸리 한 잔 들이킨 뒤 메밀부침을 양념간장에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시큼하면서도 짭짤한 맛 속에 구수한 감칠맛이 맴돈다. 메밀반죽에 묵은지와 부추, 시금치, 미나리 등으로 만드는 이 집 메밀부침은 부침이 매우 얇다는 것이 특징이다. 자리를 함께 한 원씨는 "이 집 메밀부침은 강원도 토박이 산골 맛"이라고 말한다.

 

원씨는 "이 집 음식을 먹어보지 않고는 강원도 맛을 말하지 말라"며 "이 집 메밀부침 특징은 전을 부칠 때 들기름을 쓴다는 것"이라고 귀띔한다. 원씨 설명을 들으며 만두 속으로 만든다는 메밀전병을 김치에 싸서 한 입 넣자 약간 매콤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이 젓가락을 자꾸 가게 만든다.

 

횡성 막국수 먹어보지 않고 강원도 맛 말하지 마라

 

서울 막걸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은근하게 취기가 올라오는 좁쌀 막걸리 한 잔 더 마신 뒤 편육을 묵은지에 싸서 한 입 가득 넣는다. 부드럽고 쫄깃하게 씹히는 구수한 맛이 혀를 몇 번이나 까무러치게 만든다. 이 집 편육은 감초, 당귀, 음나무 등 한약재 20여 가지를 넣고 오래 고아낸 국물에 돼지 목살을 삶는단다. 그래서 그런지 잡냄새가 일절 없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좁쌀 막걸리와 메밀부침, 메밀전병, 편육을 거의 다 비워갈 때쯤 이 집에서 자랑하는 막국수가 나온다. 물국수와 비빔국수가 그것이다. 이 집 물국수는 맛국물을 표고, 음나무, 칡,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우려낸 것이 특징이다. 사과, 배, 오이, 김 등이 부케처럼 올려진 물국수는 맛이 산뜻하고 깨끗하다.

 

채썬 오이 아래 막국수가 마악 피워내는 꽃잎 같은 고추장이 올려진 비빔국수는 얼큰하면서도 새콤달콤한 감칠맛이 잃어버린 입맛을 순식간에 사로잡는다. 씹으면 씹을수록 면발이 쫄깃하면서도 구수하다. 여느 집 막국수처럼 까칠까칠하고 미끄러운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 바로 그 맛이다.

 

원씨는 "이 집 막국수는 맛이 산뜻하고 깔끔한 감칠맛이 좋다"라며 "한번 먹으면 또 먹고 싶다.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반드시 이 집으로 모신다"고 말한다. 원씨는 "다른 집에 가서 막국수를 먹으면 양념이 달고 느끼한 맛이 나는데 이 집 막국수는 조미료를 넣지 않아서 그런지 달지 않고 개운한 뒷맛이 장 목욕을 시켜주는 것처럼 기분 좋다"고 덧붙였다.

 

아지랑이 너훌거리며 다가온 봄이 산과 들을 온통 연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사과꽃, 배꽃, 살구꽃, 복사꽃 등 꽃이란 꽃들도 모두 피어나 저마다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다. 하지만 살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때, 봄나들이 겸 강원도 횡성으로 가서 메밀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불경기를 한 방에 날려보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막국수, #메밀부침, #메밀전병, #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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