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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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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정명훈씨의 발언에 관한 기사를 접하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국립 오페라단 집단 해고 사태의 구명지지 서명을 받기 위해 찾아 간 파리 진보신당 당원들에게 그가 퍼부은 폭언들은 평소 알고 있던 '우아한 열정의 카리스마'라는 이미지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기사에 실린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실망스러웠지만, 그 중에 유독 여행기중독자의 눈에 거슬리는 발언이 있었으니... "그럴 시간이 있으면 가서 아프리카 난민 구호나 해라"라는 말이었다.

그는 이 말이 아프리카에서 힘들게 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차 누가 되는 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삶의 조건의 문제와 빈민 구제의 문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고 수준은 차치하고라도 근본적인 인간애의 결여에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과연 세계적 지휘자라는 명성에 걸맞는 글로벌한 폭언이다.

그리하여 눈과 귀를 씻기 위해 다시 펼치게 된 여행기가 있으니 <공선옥, 마흔에 글을 나서다>이다. 존경해 마지않는 작가의 서평을 불미스런 이야기로 시작하게 됨을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하지만, 이것이 여행길에서도 우리의 슬픔, 우리의 가난을 외면하지 않는 공선옥 작가의 뜻에 부합하는 서두일 것이고, 여행을 꿈꾸되 어디에 있으나 제정신으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한 생각에서이다.

40년만의 외출

이 책은 월간 <말>에서 한 달에 한번씩 여행을 갔다 와서 글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고 작가가 1년여 간 기고한 글을 묶은 책이다. 공선옥 작가는 소설가이면서 아직 어린 세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행이라는 것은 (농한기 시골 아주머니들이 도회지나 명산으로 떠나는 관광을 떠올릴 정도로)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그녀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두 가지가 있었으니, 하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인 큰 딸에게 엄마가 두 밤 동안 집을 비워야하기 때문에 동생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 일이었다. 서울 생활이 체질에 맞지도 않고 집값 문제도 있어 여수에서 살고 있던 그녀.

"엄마가 집구석에만 갇혀 있으면 글을 제대로 쓸 수 없고, 그러면 엄마 글을 아무도 사 보지 않게 되고, 그러면 엄마는 다시 공장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로 아이들을 '협박'했다. 내 아이들은 어미가 다시 공장에 가야 하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다. 둘째 아이가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면 엄마, 거기 갔다 오면 엄마가 글도 더 잘 쓰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데?'"

그리하여 그녀는 두 번째로 할 일인, 아이들이 3일 동안 먹을 국을 들통으로 한 솥을 끓여놓고 길을 나섰다. '영상매체가 띄워 보내는 정보만 전달받는 시민'에서 벗어나 직접 사람들의 삶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작가의 나이 마흔이었다.

그저 내 한발 내딛는 딱 그만큼씩만 얻으며 산다

자신의 일상생활이나 타인의 삶을 바라보면서, 언제나 가장 가슴 아리고 찡한 장면을 콕 찝어 절절한 문장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개성은 이 여행기에서도 그대로 발휘된다.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다.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가더라도, 그곳에 사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삶의 무게에 고개를 숙이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군인을 보고는 그 군인들이 다 내 아들 같아 가슴이 아리다. 골목길에서 아이들을 보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나 집에 두고 온 자식들을 생각난다. 하지만 그녀는 슬퍼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끝끝내 그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는 품위'를 길어 올리고, 이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을 던져준다.

여행은 그 동안 작가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강원도로 시작되었다. 이 여행에서 그녀를 사로잡은 사람은 봇짐을 지고 강원도 일대의 산골마을을 돌아다니며 고약, 파스 등의 비방 약을 파는 약장수 지복덕 할머니다. '지복에 살고, 지덕에 죽으라'고 부모님이 지어주셨다는 이름 지복덕. 80세도 더 되신 할머니는 지금도 한 번 집을 나오면 약이 거의 다 팔릴 때까지 열흘이고 보름이고 전국의 첩첩산중을 걸어서 다닌다.

"(한번은 집에) 가서 봉께 여섯 마리 중에 한 마리가 비었드만. 죽었어, 막랭이"

이유도 없이 따라붙는 작가에게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할머니가 뜬금 없이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헤집는다. 대화를 하는 도중에 '그럼 이제 약 살 거여?' 하고 묻는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작가는 후기에 이렇게 썼다.

" 우리같이 가진 것 없는 사람은 오직 걷는 것, 누구의 힘을 빌릴 것 없이 오로지 내 튼튼한 두 발로 내 앞에 떨어진 인생길을 타박타박 걸어가는 것, 거기에서 힘이 나오는 거라구. 그 흔한 탈 것 한번을 안타고, 말 그대로 누구의 도움도 구하지 않고 의연하게, 당당하게 공것은 원하지도 않고 그저 내 한발 내딛는 딱 그만큼씩만 얻으며..."

또 다른 여행지는 안동 하회마을. 강 건너 한옥이 수려한 하회마을은 이제 관광지가 되어 제법 살만한 동네가 되었다고 하는데, 강 이편의 마을도 강 건너 마을처럼 외지 사람들을 위해 음식도 팔고 방도 내어주지만 아직은 윗동네의 온기가 아랫동네까지 퍼져 오지 않는다. 관광객들은 주로 윗동네에서 머물다 가기 때문이다.

강 건너 마을은 예전에 양반가일 때도, 지금의 관광지일 때도 언제나 아랫목이고, 강 이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한 발 늦는 아랫목 동네인 것이다. 그러나 그곳을 터전으로 '우짜든둥 살아내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가끔이라도 찾아주는 외지인이 고마울 뿐이다.

작가의 여행은 '봄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쓸쓸한 겨울을 지나보내고 나서 봄이 오면 또 씨를 뿌린다'는 여수 화양반도 이만근 할아버지 문지방 위에 걸린 싯구를 지나고, 그녀가 대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버스 안내양과 공장 생활을 했던 가리봉과 구로의 치열한 삶의 밑바닥을 지난다. 그리고 월드컵의 열기를 뒤로한 채, 우리의 이웃들인 소외받는 노동자와 농민들을 찾아 나선다.

피도 눈물도 없는 마음이 무기가 되고 흉기가 된다

미선, 효순 양이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경기도 양주로 득달같이 달려간다. 그곳에서 작가는 사고 현장을 보며 분노하고, 미선, 효순 양의 부모를 만난다. 월드컵의 광풍에 가려진 억울한 사실들을 접할 때마다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현장으로 떠났다. 시작은 소박한 여행기였으되, 그녀는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났다.

'월드컵에 열광하여 쏟아져 나온 저 붉은 악마들이 억울하게 죽어가는 파견 근로자, 농민들을 위해서도 나서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분노로 인해 도대체 잡히지 않는 펜을 들기 위해 '소주 한 잔을 들이키고서야' 글을 썼다.

오늘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월드컵이 WBC로, 파견근로자가 용산 철거민으로 겹쳐진다. 야구는 야구고, 참사는 참사이되 가려지고 잊혀지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생각에 잠시 무력감을 느끼고 있을 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아들아, 받아쓰기 좀 못해도 좋다... 그러나 풀빛 향기 가득한 오월의 저문 강가에서 어미와 함께 들었던 저 소쩍새 소리를 너는 기억하려무나. 눈물로 기억하려무나. 악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 악이다. 무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마음이 무기가 되고 흉기가 된다" 

저 먼 강원도의 약장수 할머니로부터 치열한 현실의 장으로 달려 나온 여행. 단지 한가로운 이방인의 태도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고 해서 이것이 여행기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외국병이라는 염증에 감염되기 쉬운 여행자들에게 '눈물'이라는 항생제를 오래된 약보따리에서 꺼내어 내민다. '자, 이거먹고 정신 차려!' 라고 하며.

덧붙이는 글 |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 공선옥(지은이) / 노익상, 박여선(사진) / 월간말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월간말(2003)


태그:#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월간 말, #공선옥, #국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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