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싶다. 대니 보일 감독, 그는 그런 면에서 천재임에 틀림없다. '퀴즈대한민국', '1대 100', '장학퀴즈', '우리말겨루기'…. 여타의 '돈내기(?)' 퀴즈쇼들을 많이 봐온 터라, 퀴즈쇼를 다룬 영화라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근데 긴박하고, 짜릿하고, 숨 막히는 장면들이 스크린에서 활개를 친다. 인도판 백만장자 퀴즈쇼, 그런 타이틀이긴 하지만 꼭 그런 퀴즈쇼만은 아니었다. 인생이며, 애증이며, 삶이며, 사랑이었다. 우정이었다가 다시 애정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뭉뚱그릴 수 있는 것은 짜릿한 키스 한 방이었다.

 

스타 없이 뜬 영화

 

 인도판 백만장자 퀴즈쇼, 그런 타이틀이긴 하지만 꼭 그런 퀴즈쇼만은 아니었다. 인생이며, 애증이며, 삶이며, 사랑이었다.

인도판 백만장자 퀴즈쇼, 그런 타이틀이긴 하지만 꼭 그런 퀴즈쇼만은 아니었다. 인생이며, 애증이며, 삶이며, 사랑이었다. ⓒ CJ엔터테인먼트

<슬럼독 밀리어네어>(이하 <슬럼독>)는 뭄바이 빈민가 출신 청년이 퀴즈쇼에 참가해 백만장자가 되고 사랑도 쟁취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비카스 스와루프의 장편소설 <Q&A>가 원작이다.

 

<슬럼독>은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주제가상, 음향상까지 모두 8개 부문을 휩쓸며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인정을 받았다. 각본을 쓴 사이먼 뷰포이는 각색상 수상소감에서 "대니(보일, 감독)와 크리스천(콜슨, 제작자)이 나머지 삼총사"라며 추켜세웠다.

 

영화 속에는 삼총사가 등장한다. 주인공 자말(데브 파텔), 상대역인 라티카(프리다 핀토), 그리고 자말이 형이라 부른 아이, 그런데 삼총사 역을 한 아역도 성인도 그리 알려진 배우들이 아니다. 어떤 평자의 말대로, '예쁜 선물을 아주 예쁜 포장지로 포장을 잘한 영화'다. 이렇다 할 배우 하나 등장하지 않는데 영화는 영화답다.

 

퀴즈쇼의 진행자인 프렘 역을 맡은 아닐 카푸르나, 어린아이들을 꼬드겨 앵벌이를 시키는 대장이나 형사(아르핀 칸) 역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배우가 아니다. 아닐 카푸르가 <문나>나 <웰컴>에 출연했었고, 아르핀 칸이 <다즐링 주식회사>에서 무게 있는 역을 맡았을 뿐이다.

 

근데 왜 이 저예산 인디영화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영화가에서도 인정하는 영화가 되었을까? 그건 대니 보일의 뛰어난 포장 실력 때문이다. 단순한 퀴즈쇼에 영화가 되도록 박진감을 넣었다. 비행기 활주로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경찰에 쫓기는 추격신은 자동차 추격신 못지않다.

 

자말과 라티카 빼고는 모두 적

 

 우리나라에도 많은 퀴즈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이런 황당한 진행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1대100’의 김용만도, 손범수도 출연진들에게 깎듯한 예의를 갖춘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퀴즈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이런 황당한 진행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1대100’의 김용만도, 손범수도 출연진들에게 깎듯한 예의를 갖춘다. ⓒ CJ엔터테인먼트, KBS

자말 말릭은 백만장자 퀴즈쇼에 최종단계까지 올라갔다. 어떻게 갔을까?

 

A. 속임수를 써서

B. 운이 따라서

C. 머리가 좋아서

D. 쓰인 각본이니까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요, 답안지인가. 근데 그렇게 영화가 시작한다. 첫 장면부터 담배연기 자욱한 취조실에서 자말을 취조하는 뚱보 형사와 자말이 눈싸움을 하며 시작한다. 전화상담원 사무실에서 보조직으로 일한다고 자말이 자신을 소개하니까, 진행자 프렘은 깔보는 듯한 눈빛으로 "뭄바이에서 온 차 끓이는 소년 자말과 퀴즈쇼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퀴즈가 진행되면 될수록 노골적으로 '네가 어떻게 다음 문제를 맞힐 수 있느냐?'는 듯 포기하기를 종용한다. 그 이유는 내로라하는 사람들도 끝까지 간 적이 없다는 거다. 이런 황당한 진행자가 어디 있는가. 우리나라에도 많은 퀴즈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이런 황당한 진행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1대 100'의 김용만도, 손범수도 출연진들에게 깎듯한 예의를 갖춘다.

 

삼총사였던 형마저도 아우를 배반하고 라티카를 데리고 앵벌이 대장 곁으로 들어갈 때는 이젠 끝났지 싶었다. 똥칠을 하고 가 받은 인기연예인 아미타브의 사인을 몰래 갔다 팔아먹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경찰들은 왜 그리 살벌하게 자말을 취조하는가. 자말의 주위에는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못마땅해 하는 인간들뿐이다.

 

그 중 가장 적대적인 인물은 바로 퀴즈쇼 진행자 프렘이다. 그는 퀴즈를 재미있게 진행할 목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마치 슬럼가 출신 자말을 어떻게 하든지 퀴즈쇼에서 탈락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인간승리를 말하려는 것인가? 아니다. 분명히 그건 아니다.

 

마지막 키스, 그걸 위해 달린 거다

 

 “어딘가에서 그녀가 보고 있을 겁니다.” 오, 예! 퀴즈쇼에 나온 이유가 거기 있었다. 역시 자말은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그녀가 보고 있을 겁니다.” 오, 예! 퀴즈쇼에 나온 이유가 거기 있었다. 역시 자말은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 CJ엔터테인먼트

온갖 역경과 시련을 딛고 인간 승리를 이룬, 자말 말릭! 그런 거라면 뭐 이렇게 나도 열광하지 않았을 거다. 요즘 드라마는 악인일색이다. 그래서 악인이 아니면 뜨지 못한다는 불문율이 다 생길 정도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슬럼독>은 그 악역들 때문에 뛰어난 영화가 아니다.

 

사랑 때문이다. 자말은 어릴 때 같이 큰 라티카를 사랑한다. 형이나 그녀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배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 키스가 그리 멋있어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그가 퀴즈쇼에 나간 게 일확천금을 거머쥐어 신분상승을 노린 것이라고 봤다면, 영화를 잘못 본 거다.

 

인생이 별 건가? 돈 있으면 다 되는데. 그렇게 시시껄렁한 스토리를 긴박한 퀴즈쇼에 버무리려고 대니 보일이 퀴즈쇼를 벌이는 것 같진 않다. 나의 순수한 관전 포인트가 너무 고리타분하고 식상해서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어딘가에서 그녀가 보고 있을 겁니다."

 

오, 예! 퀴즈쇼에 나온 이유가 거기 있었다. 역시 자말은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스토리를 넘어선 스토리, 인도의 슬럼가를 뛰어넘은 그 한 마디, 무명의 연기자들을 탈바꿈하게 한 그 능수능란한 격언, 진행자 프렘마저 두 손 들게 만드는 위력! 거기에 퀴즈쇼가 아닌 인생이 있다.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역시 진리는 영원하다. 그렇게 대니 보일은 도를 닦는 도인처럼 <슬럼독>을 가지고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달려 온 거다. 하지만 누구나 나 같은 반응은 아닐 터. 자말과 라티카의 키스가 주는 교훈이 또 뭐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슬럼독 밀리어네어> 대니 보일 감독/ 데브 파텔, 프리다 핀토 주연/ 워너브러더스 제작/ CJ엔터테인먼트 배급/ 상영시간 120 분/ 2009년 3월 19일 개봉

2009.03.24 18:05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슬럼독 밀리어네어> 대니 보일 감독/ 데브 파텔, 프리다 핀토 주연/ 워너브러더스 제작/ CJ엔터테인먼트 배급/ 상영시간 120 분/ 2009년 3월 1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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