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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가 춘분을 꼭지점으로 10여일 동안 신비스런 수액을 내뿜고 있다
▲ 자작나무 수액 자작나무가 춘분을 꼭지점으로 10여일 동안 신비스런 수액을 내뿜고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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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등 북유럽에서는 예로부터 자작나무를 '숲의 여왕'이라 부르며, 정원에 한두 그루씩 심었습니다. 그들은 자작나무 나뭇잎에서 자일리톨을 추출하고, 나무껍질은 다려 약으로 먹지요. 작가 정비석 금강산 기행문에도 자작나무가 나오는데, 작가는 이 나무를 '수중공주'라 부르며 칭송했지요" -자작수 채취자 원종호  

자작나무가 춘분을 꼭지점으로 10여일 동안 신비스런 수액을 내뿜고 있다. 자작나무 수액은 보관하기가 어려워 이때가 아니면 쉬이 맛보기 어렵다. 일본에서 '신비의 회춘수'라 불리는 자작나무 수액은 햇볕을 받으면 곧바로 뿌옇게 변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장고에 보관하면 5월까지는 먹을 수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수액' 하면 고로쇠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자작나무 수액은 고로쇠와는 다르다. 고로쇠가 약간 뿌연 색을 띠면서 맛이 달착지근하고 상큼하다면 자작나무 수액은 유리처럼 맑으면서 혀끝을 살짝 스치는 약한 단맛 속에 상쾌한 향이 입 안 가득 은근하게 퍼진다는 점이 다르다.     

자작나무 수액과 고로쇠가 다른 점은 또 있다. 화장품 원료로도 사용되는 자작나무 수액은 대량 채취를 할 수 있는 고로쇠와는 달리 하나 하나 받는 과정이 너무 어려워 아주 적은 량만 채취할 수 있다. 여기에 자작나무 수액을 받을 때 햇볕을 쬐게 되면 곧바로 변질될 우려가 높기 때문에 나무마다 일일이 햇볕가리개를 해야 한다. 

자작나무 숲에 포옥 빠져 한가롭게 졸고 있는 미술관
▲ 자작나무 수액 자작나무 숲에 포옥 빠져 한가롭게 졸고 있는 미술관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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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곳에 자작나무를 심기 시작(91~92년도)한 것은 백두산 자작나무숲을 보고 너무나 아름다워 포옥 빠졌을 때부터였죠
▲ 자작나무 수액 제가 이곳에 자작나무를 심기 시작(91~92년도)한 것은 백두산 자작나무숲을 보고 너무나 아름다워 포옥 빠졌을 때부터였죠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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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액 뽑아도 나무에는 큰 지장 없다

러시아에서 '귀족'이라 불리는 자작나무. 러시아에서는 감기만 걸려도 초봄에 나오는 자작나무 수액을 먹으며, 이 수액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기고 있다. 북유럽에서는 예로부터 자작나무 수액과 자작나무를 민간요법으로 많이 활용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자작나무 수액을 받는 곳이 거의 없다. 

참나무목 자작나무과 낙엽교목인 자작나무는 껍질이 흰색이며, 옆으로 얇게 벗겨지고, 작은가지는 자줏빛을 띤 갈색이다. 자작나무는 하얀 껍질이 너무도 아름다워 러시아, 북유럽 등지에서는 정원수나 가로수, 조림수로 많이 심는다. 자작나무 목재는 가구를 만드는 데 쓰이며, 한방에서는 나무껍질을 '백화피'(白樺皮)라 하여 이뇨, 진통, 해열에 쓴다.

천마총에서 나온 그림 재료도 자작나무 껍질이며, <팔만대장경>도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전자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산벚나무와 돌배나무가 대부분이라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 곳곳 산에도 자작나무가 꽤 있으나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백두산 자작나무숲이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이른 봄 자작나무에서 수액이 나온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나그네도 그랬다. 나그네도 자작나무에서 수액이 나온다는 것을 올해 강원도 횡성에 가서 처음 알았다. 자작나무 수액은 춘분에서 8일 정도까지만 채취할 수 있으며, 그때가 지나면 자작나무 스스로 수액 내뿜기를 멈춘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산림청 연구결과 자작나무 수액이나 고로쇠를 채취해도 나무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것도 그제서야 알았다.    

몸뚱이가 하얀 아름다운 자작나무숲
▲ 자작나무 수액 몸뚱이가 하얀 아름다운 자작나무숲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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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트막한 산 허리춤을 돌아 산마루로 가는 길 곳곳이 자작나무로 가득 차 있다
▲ 자작나무 수액 야트막한 산 허리춤을 돌아 산마루로 가는 길 곳곳이 자작나무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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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수액은 아는 사람만 먹는다

"제가 이곳에 자작나무를 심기 시작(91~92년도)한 것은 백두산 자작나무숲을 보고 너무나 아름다워 포옥 빠졌을 때부터였죠. 자작나무에서 수액이 나온다는 것도 2006년에 처음 알게 되었죠. 저는 그때부터 우리나라 부유층들이 자작나무 수액을 수입해서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자작나무 수액을 채취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두곡리 둑실마을에 가면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에 포옥 빠져 한가롭게 졸고 있는 미술관이 하나 있다. 이 미술관 주인 원종호(56·사진작가)씨가 지난 3년 앞부터 해마다 봄이 되면 직접 기른 자작나무숲으로 가서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먹는다'는 자작나무 수액을 채취하는 주인공이다.

3월 20일(금) 오후 4시쯤 둑실마을에서 만난 원씨는 "자작나무 수액은 보관이 어려워 지금 채취할 때 현장에 와서 먹어야 가장 신선하고 맛이 좋다"며 "자작나무 수액 저장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핀란드밖에 없다. 하지만 핀란드산 수액과 우리나라에서 직접 채취해 먹는 수액은 그 맛이 확실히 다르다"고 귀띔한다.

원씨는 "저 나무들 좀 보라. 꼭 같이 심었는데도 나무 크기나 굵기가 제각각 다르다"며 "되는 건 되고 안 되는 건 안 된다. 자식농사도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며 빙그시 웃는다. 원씨는 "자작나무 수액은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채취한다"며 "워낙 채취하기가 까다로워 많이 채취를 하지 못하는 게 참 아쉽다"고 말했다.

원씨가 자작나무 몸통에 씌워진 햇볕 가리개를 잠시 들추자 그 속에 자작나무 몸통에 박혀 있는 긴 대롱과 수액통이 이어져 있다
▲ 자작나무 수액 원씨가 자작나무 몸통에 씌워진 햇볕 가리개를 잠시 들추자 그 속에 자작나무 몸통에 박혀 있는 긴 대롱과 수액통이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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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연구결과 자작나무 수액은 햇볕에 노출되면 1일 정도 지나면 변질되고, 고로쇠는 상온에서 15~20일 정도라고 합니다
▲ 자작나무 수액 산림청 연구결과 자작나무 수액은 햇볕에 노출되면 1일 정도 지나면 변질되고, 고로쇠는 상온에서 15~20일 정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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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에 자작나무가 많은 까닭?

"백두산에 자작나무가 많은 것은 일제 강점기 항일투쟁 때 빨치산이 장마철과 겨울철에 자작나무 껍질로 불쏘시개를 하기 위해 많이 심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빨치산이 봄이 되면 자작나무에서 수액이 나온다는 것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자작나무 수액은 먹어보지 않고는 그 맛이나 약효를 함부로 말할 수 없지요"  

원씨 이야기를 들으며 몸뚱이가 하얀 아름다운 자작나무숲이 있는 야트막한 산으로 올라간다. 자작나무 수액을 채취하는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야트막한 산 허리춤을 돌아 산마루로 가는 길 곳곳이 자작나무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자작나무마다 수액을 받기 위한 대롱과 수액통이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산마루에 있는 자작나무 열서너 그루에만 수액을 받기 위한 대롱과 수액통이 있고, 그 위에는 모두 햇볕가리개가 씌워져 있다. 나그네가 "왜 햇볕 가리개를 씌우느냐"고 묻자 원씨가 "햇볕을 쬐게 되면 수액이 뿌옇게 변질될 수도 있다. 자작나무 수액은 아주 맑고 깨끗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원씨가 자작나무 몸통에 씌워진 햇볕 가리개를 잠시 들추자 그 속에 자작나무 몸통에 박혀 있는 긴 대롱과 수액통이 이어져 있다. 신기하다. 더욱 신기한 것은 자작나무가 춘분에서 8일쯤 지나면 스스로 수액을 멈춘다는 것이다. 원씨는 "그때가 되면 자작나무 수액이 갑자기 찐득해진다"고 설명했다.

직접 채취한 자작나무 수액을 냉장고에 보관해보니 1달 보름 정도였습니다
▲ 자작나무 수액 직접 채취한 자작나무 수액을 냉장고에 보관해보니 1달 보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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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단맛 속에 은근하게 퍼지는 향

"산림청 연구결과 자작나무 수액은 햇볕에 노출되면 1일 정도 지나면 변질되고, 고로쇠는 상온에서 15~20일 정도라고 합니다. 바로 그 보관문제 때문에 자작나무 수액을 더 많이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직접 채취한 자작나무 수액을 냉장고에 보관해보니 1달 보름 정도였습니다"

자작나무 수액을 채취하는 현장을 일일이 살펴본 뒤 원씨를 따라 미술관에 딸려 있는 찻집으로 간다. 자작나무 수액을 직접 마셔보기 위해서다. 1~2층으로 이어진 찻집 안으로 들어서자 벽에 걸린 흑백 자작나무 액자가 눈에 띤다.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모두 사진작가 원씨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다.  

동그란 나무탁자에 앉아 잠시 기다리자 유리알처럼 맑은 자작나무 수액(500ml 1만 원)이 눈길을 확 휘어잡는다. 원씨가 커다란 컵에 자작나무 수액을 따라주며 '한번 마셔보라'고 권한다. 자작나무 수액을 입에 대자 향긋한 자작나무 향과 함께 상큼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이 맛을 뭐라고 해야 할까.

혀끝을 살짝 스쳐 지나가는 약한 단맛 속에 상큼한 향이 입안을 은근하게 맴돈다. 고로쇠가 좀 달착지근하면서도 향이 좀 강하다고 한다면 자작나무 수액은 약한 단맛 속에 향이 은근하게 퍼진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일까. 마시고 또 마셔도 자꾸만 컵에 손이 간다. 그렇게 자작나무 수액을 순식간에 세 병이나 비우고 나자 갑자기 소변이 마렵다.

유리알처럼 맑은 자작나무 수액(500ml 1만 원)이 눈길을 확 휘어잡는다
▲ 자작나무 수액 유리알처럼 맑은 자작나무 수액(500ml 1만 원)이 눈길을 확 휘어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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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수액으로 된장(1kg 1만4천 원)과 간장(500ml 1만5천 원)을 담가요
▲ 자작나무 수액을 채취하고 있는 사진작가 원종호씨 자작나무 수액으로 된장(1kg 1만4천 원)과 간장(500ml 1만5천 원)을 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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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상쾌한 수액 뿜어 올리는 자작나무 숲으로

"자작나무 수액으로 된장(1kg 1만4천 원)과 간장(500ml 1만5천 원)을 담가요. 제가 자작나무 수액으로 장을 담그게 된 것도 사실 보관이 어려운 탓이었지요. 그렇게 궁여지책으로 만들었는데, 손님들 반응이 아주 좋아요. 자작나무 수액은 시기를 놓치면 맛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냉장 보관하면 5월까지는 맛 볼 수 있어요"

일본과 러시아 유명 대학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작나무 수액은 혈액을 맑게 하는 것은 물론 인체 항산화와 신진대사(체외배출력) 증가, 항 염증효과, 빠른 상처 치유, 피부질환(아토피성) 개선, 간의 단백질 합성 증가, 면역 증강, 노화억제 체내 출혈 후 빠른 회복 등에 아주 탁월하다.

원씨는 "우리나라에서도 자작나무 수액을 음료로 개발하기 위해 여러 곳에 심었다"라며 "하지만 변질 문제 때문에 끝내 음료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원씨는 "자작나무 수액을 냉동 보관도 해 보았는데, 50% 변질되었다"며 "핀란드 수입산 자작나무 수액도 먹어 보았지만 다른 첨가물을 넣어서 그런지 맛이 좋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노오란 산수유와 개나리, 하얀 매화와 목련, 연분홍 진달래 등 온갖 봄꽃들이 앞 다투어 예쁘게 피어나고 있는 3월 끝자락. 이번 주말에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강원도 횡성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우리나라에서 직접 뽑은 자작나무 수액을 현장에서 맛보며, 봄빛에 포옥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자작나무 수액, #사진작가 원종호, #숲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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