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정확한 기억 속으로

영화 <샤인>포스터 마치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주인공 데이빗 헬프갓

▲ 영화 <샤인>포스터 마치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주인공 데이빗 헬프갓 ⓒ 씨네21


10년도 더 지난 오랜 영화인 <샤인>이라는 영화. 멋모르던 어릴 적 본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은 포스터의 한 장면 바로 그것과 같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자유롭게 날아 오를것만 같은 한 남자 그리고 그의 귀에 연결된 이어폰을 통해 들려질 음악소리.

하지만 10년이 지나 다시 확인한 나의 기억 속 <샤인>은 정확하면서도 부정확했다. 음악과 함께 자유롭게 날아오르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마음과 한폭의 이미지는 정확할지 몰라도 높은 곳에서 한없이 솟구쳐 오른다고 생각했던 주인공의 행동은 겨우 (봉봉이라 불리우는) 어린이용 놀이기구에서 잠시 뛰어 오르던 짧은 장면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린 내 기억 속의 <샤인>이라는 영화는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제대로 입력되지 않은 체, 강렬한 이미지만이 기억되어 있던 것일런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내 머릿속의 <샤인>은 기억하고 싶었던 이미지로 남아있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2. 데이빗 헬프갓이라는 천재의 이야기

어릴적 TV 속에는 참 많은 천재들이 있었다. 영어, 수학, 과학과 같은 학문은 물론이고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능까지.. 많은 영재와 천재들이 소개되었고 사람들은 그들의 재주에 감탄했다.

그렇게 단편적으로 소개되고 사라졌던 수많은 천재들 중에서 어린 내게 꽤나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하루에도 수 시간동안 같은 곡을 수십번 연습했던 첼리스트 장한나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에 관한 다큐였다. 천재라고 불리우는 그들이 하루종일 그것도 거의 매일을 연습에 몰두하는 장면이었는데, 어릴적 내가 했던 생각은 '천재라면 노력없이도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였다. 물론 이 생각에는 지금도 변화가 없지만..

우리는 왜 게으른 천재, 노력이 더해진 천재, 노력하는 천재를 구분하는 것일까? 우리들이 천재라 인정하는 (사라진 많은 천재들이 아닌)성공한 그들은 과연 정말 천재일까? 아니면 그저 노력하는 수재일 뿐일까?

이러한 질문은 답변하기 매우 어렵고 곤란하며 한편으로는 어리석기 그지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하나의 질문을 더 던져보자면 과연 영화 속의 (누구나가 천재라 부르는)데이빗 헬프갓은 정말 천재였을까? '그는 천재가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영화를 본다면 이 영화는 매우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데이빗이 천재가 아닌 보통사람이라면 그가 겪어야하는 고통의 크기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샤인>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천재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읽어내는 것일까? 아니면 감동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을 천재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덧씌워 내는 것일뿐일까?

3. 나의 이야기(개인적인 이야기)

글을 쓰는 것 특히나 소설과 같은 이야기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는 내가 만약 글을 쓴다면 꼭 쓰고 싶은 이야기 중 한가지는 바로 절대음각을 가진 그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내게 그런 이야기를 완성시킬만한 능력 따위는 없겠지만) 기회가 내게 찾아온다면 내게 하나의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절대후각을 가졌던 소설 <향수>의 주인공 그루누이가 그랬던 것처럼, 절대음각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소리를 가지고 놀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물론 그는 노력이 필요없는 천재였으면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내게는 한가지 욕심이 더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인생의 영광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연 우리 인생에서 진정으로 반짝거리는 순간은 언제일까? 극단적으로 강렬한 순간을 잡아내어 적절한 과장과 허구를 섞어야하는 문학과 영화라는 예술의 숙명 속에서 과연 나는 (아직 만들어내지도 않은)주인공의 어떤 순간을 끄집어 내어서 어떻게 과장시켜야 할까? 과연 나는 순간만을 잡아내어야만 하는가?

4. 영광의 순간

영화<샤인>의 포스터 라흐마니노프 연주에 열중하고 있는 데이빗 헬프갓

▲ 영화<샤인>의 포스터 라흐마니노프 연주에 열중하고 있는 데이빗 헬프갓 ⓒ 씨네21


소설가 성석제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라는 작은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의 작가 후기에서 이런 내용을 남겨 놓았다.

나는 안다. 내 성벽의 무수한 돌 중에 몇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또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모두들 이 의견에 동의하시는지. 과연 우리 인생은 평범한 무수한 순간들 속에서 단지 몇순간만이 빛나고 마는 것인지. 많은 분들이 이 의견에 동의하실런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동의하지 못한다.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라흐마니노프를 친 순간만이 그에겐 빛이 났던 순간은 아니었다. 그의 인생은 언제 어디서든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단지 그 빛이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우리의 인생들도 마찬가지. 우리 인생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지금도 빛나고 있다. 단지 우리가 너무 큰 행복을 큰 성공을 찾으려하기에 그 빛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성석제의 말처럼 그리고 영화에서 보여준 데이빗의 눈부신 장면처럼 인생에서 몇몇 장면만이 눈부시다면 나머지 대부분의 우리네 인생은 얼마나 밋밋하고 재미없는 그저 그런 삶일까? 어쩌면 필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바람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인생에 대한 그정도 판단 기준을 스스로 가질 수 있는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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