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돼지머리 골목에서 필고 있는 머리고기
▲ 먹자골목 돼지머리 골목에서 필고 있는 머리고기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서울 종로3가 탑골공원에서 악어처럼 입을 쫘악 벌린 낙원상가 쪽으로 쭈욱 이어진 담을 따라가면 비좁은 골목 곳곳에 허름한 식당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곳이 지금 '도심 재정비'란 이름 아래 사라지고 있는 피맛골과 더불어 황태국, 선지국, 냉면, 우거지 얼큰탕, 돼지머리, 수육, 순대 등을 파는 종로를 대표하는 서민들 먹자골목이다.

값싸기로 입소문이 퍼질대로 퍼진 이 먹자골목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 곳은 탑골공원 왼편 담을 따라 쭈욱 늘어서 있는 황태국, 선지국, 콩나물 해장국 등을 파는 해장국 골목이다. 다른 한 곳은 낙원상가 왼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돼지머리, 수육, 순대 등 돼지고기 부속음식을 파는 돼지머리 골목이다.

50여년 역사가 서린 이 해장국 골목에 가면 훤한 대낮인데도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며 술밥내기 장기와 화투를 치고 있는 노인들을 쉬이 만날 수 있다. 이 골목은 우거지 얼큰탕 한 그릇에 1천5백원을 끝까지 고집하고 있는 추어탕집을 비롯한 식당 대부분 음식값이 2천원에서 비싸야 3천원 정도다. 

마치 흑백필름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이 해장국 골목을 지나 낙원상가 왼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돼지머리 골목에 들어서면 소주 한 병에 순대국밥을 후루룩 후루룩 맛나게 먹고 있는 가난한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해장국 골목이 노인들 먹을거리 천국이라면 돼지머리 골목은 청바지 차림을 한 젊은이들 먹을거리 천국이다.  

낙원상가 돼지머리 골목으로 가는 길옆에서 만난 낙원빌딩 간판
▲ '낙원삘딍' 이란 재미난 글씨가 붙어 있는 낙원상가 낙원상가 돼지머리 골목으로 가는 길옆에서 만난 낙원빌딩 간판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골목에 들어서자 허름한 식당 곳곳에 '잡부 대모집' '00냉동' '동대문 인력' '어음할인' 등 자잘한 스티커가 서민들 고된 몸부림처럼 빼곡하게 붙어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다
▲ 낙원상가 옆 돼지머리 골목 골목에 들어서자 허름한 식당 곳곳에 '잡부 대모집' '00냉동' '동대문 인력' '어음할인' 등 자잘한 스티커가 서민들 고된 몸부림처럼 빼곡하게 붙어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옛 고향 장터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사람 둘 겨우 비껴갈 수 있는 이 골목 곳곳에는 고사(제사)용 돼지머리를 비롯한 돼지족발, 순대, 돼지껍데기 등, 돼지고기 부속물에 따른 모든 것이 가게 앞과 길목 한 귀퉁이에 수북이 쌓여 있다. 그래서일까. 비릿한 돼지내음을 싫어하는 젊은 여성들은 인상을 찌푸린 채 코를 가리며 잰걸음으로 골목을 서둘러 빠져 나가기 일쑤다.

이 골목에 서면 50여년을 훌쩍 넘긴 건물이 하도 낡은 데다 비좁기까지 해 언뜻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골목은 언제나 수많은 손님들로 북적댄다. 음식값이 아주 싸고 맛이 좋은 데다 체면 차릴 것도 없이 자리에 앉아 술과 음식을 먹고 있다 보면 마치 옛 고향 장터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이 골목 간판 이름도 재미 있다. 강원도집, 광주집, 충청도집 등 지역 이름을 딴 간판에서 고향 내음이 물씬 묻어난다. 이 골목에 있는 5~6개 식당들 차림표와 가격도 엇비슷하다. 돼지머리와 수육, 순대국, 보쌈 등을 파는 이곳 식당에 들어가면 어느 집이든 적은 돈으로 술과 술안주, 국밥을 즐길 수 있다.

이 골목에서 파는 대표선수 머리고기는 3천원~1만원, 순대국밥은 2천5백원~3천5백원, 소주와 막걸리는 1병에 2천원~2천5백원, 보쌈은 1만원~2만원 선이다. 이곳에 서너 명이 마주 보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술과 안주, 밥을 골고루 시켜먹는다 해도 1~2만원만 있으면 배부르고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다.   

식당 들머리에서 돼지머리 고기를 썰고 있는 한 식당
▲ 돼지머리 골목 식당 들머리에서 돼지머리 고기를 썰고 있는 한 식당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식당 들머리에 미리 차려놓은 밑반찬
▲ 돼지머리 골목 식당 들머리에 미리 차려놓은 밑반찬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손님들에게 탈이 날 음식을 누가 팔겠어요"

"피맛골이 철거에 들어가면서 이곳도 서울시에서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빠르면 2012년께부터 상가를 철거하고 도로를 만든다고 해서 요즈음 맘이 편치 않아요. 게다가 서울시에서 위생에 문제가 있다며 단속도 가끔 나와요. 하지만 지금까지 이곳에서 음식을 먹고 탈이 난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지난 2월7일(토) 시인 이적, 유명선, 공산 선생과 함께 들른 낙원상가 돼지머리 골목. '낙원삘딍' 이란 재미난 글씨가 붙어 있는 낙원상가를 지나 골목에 들어서자 허름한 식당 곳곳에 '잡부 대모집' '00냉동' '동대문 인력' '어음할인' 등 자잘한 스티커가 서민들 고된 몸부림처럼 빼곡하게 붙어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다.

가게 앞과 골목 귀퉁이 곳곳에도 돼지고기 부속음식이 수북히 쌓여 가난한 서민들 입맛을 다시게 하고 있다. 골목이 주방으로 변한 것인지, 주방을 골목으로 옮긴 것인지 마구 헛갈린다. 식당 들머리에서 돼지머리 고기를 썰고 있는 한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왼편 벽에 초록빛 소주병이 서민들 고된 한숨을 달래는 마지막 희망처럼 빼곡하게 서 있다. 

이곳에서 20여년 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서순영씨는 "하도 오래된 식당인 데다 기름기 많은 돼지고기 부속음식을 만들다 보니 언뜻 겉보기에는 지저분하게 보이기는 해요"라며 "그렇다고 손님들에게 탈이 날 음식을 누가 팔겠어요. 음식을 바쁘게 조리하다 보면 주방 곳곳이 어지러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라고 말한다.

서씨는 "임대료가 싸기 때문에 음식을 싸고 푸짐하게 낼 수 있다"라며 "이곳까지 철거가 되고 나면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수없이 몰려드는 할아버지들과 가난한 셀러리맨들이 한 끼 식사를 제대로 할 곳이 없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서씨는 "이곳은 실버세대들과 청년세대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추억의 장소"라고 귀띔했다.

그렇다. 이 골목에 들어서면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와 몸에 꼬옥 끼는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이 스스럼없이 탁자 앞에 앉아 술과 안주, 국밥을 먹는 모습을 쉬이 볼 수 있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서로 눈치를 보지 않고, 저마다 속내에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살갑고도 시끌벅적하게 풀어낸다. 시골 옛 장터 풍경 그대로다.

초록빛 소주병이 서민들 고된 한숨을 달래는 마지막 희망처럼 빼곡하게 서 있다
▲ 돼지머리 골목 초록빛 소주병이 서민들 고된 한숨을 달래는 마지막 희망처럼 빼곡하게 서 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꽤 늦은 시간인데도 3평 남짓한 식당 안은 손님들로 북적댄다
▲ 돼지머리 골목 꽤 늦은 시간인데도 3평 남짓한 식당 안은 손님들로 북적댄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한 시대 문화는 한번 사라지면 영원히 복구하지 못한다

"머리고기에 쐬주나 한 잔 할까?"
"나는 막걸리 한 병에 순대국밥 한 그릇이면 되는데..."
"듬직한 안주를 하나 시키고 앉아 있어야 밀려드는 손님과 주인 눈총을 덜 받을 거 아냐"
"이 집에서 값싼 음식 시켰다고 눈치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다 주머니 사정이 그렇고 그런 사람들만 찾아오니깐"

밤 9시. 꽤 늦은 시간인데도 3평 남짓한 식당 안은 손님들로 북적댄다.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순대국 한 그릇과 머리고기, 소주, 막걸리를 시키자 곧바로 밑반찬이 나온다. 사실, 밑반찬이라고 해봐야 별 거 없다. 김치와 양파, 새우젓과 된장 한 종지가 모두다. 하긴, 돼지 머리고기와 순대국을 먹는 데 다른 밑반찬 무엇이 더 필요하랴.

막걸리 한 사발 꿀꺽꿀꺽 마신 뒤 양파를 된장에 찍어 마악 입에 넣고 있을 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대국과 가지런하게 잘 썰어놓은 머리고기가 나온다. 듬성듬성 큼지막하게 썬 돼지고기가 순대보다 더 많이 담긴 순대국이 정겨워 한 숟가락 떠서 김을 후~ 분 뒤 입에 넣자 국물이 구수하고도 뒷맛이 깊다.        

머리고기 한 점 새우젓에 찍어 입에 넣자 쫄깃쫄깃 감칠맛 나게 씹히는 부드러운 맛이 끝내준다. 한 접시에 2~3만원씩 하는 여느 이름난 식당에서 먹는 머리고기도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여기에 그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떠들고, 자유스럽게 술 마시는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입맛을 더욱 돋군다.

밑반찬은 김치와 양파, 새우젓과 된장 한 종지가 모두다
▲ 돼지머리 골목 밑반찬은 김치와 양파, 새우젓과 된장 한 종지가 모두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듬성듬성 큼지막하게 썬 돼지고기가 순대보다 더 많이 담긴 순대국
▲ 순대국 듬성듬성 큼지막하게 썬 돼지고기가 순대보다 더 많이 담긴 순대국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한 시대 서민문화 깃든 곳, 돈 들여서라도 보존해야"

이적(52) 시인은 "청년과 노인은 물과 기름 같은 세대인데 이곳에 오면 세월을 뛰어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시인은 "청년문화와 실버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이런 좋은 곳을 보존을 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철거시키려 하는 까닭을 모르겠다. 한 시대 문화라는 것은 한번 사라지고 나면 영원히 복구하지 못한다"고 서울시 철거정책을 꼬집었다. 

공산(51) 선생은 "볼 일이 있어 길 건너 인사동에 올 때마다 반드시 이곳에 들른다. 이곳에 오면 사람 사는 내음이 나는 것 같다"며 "돈 없고, 빽 없고, 힘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떠들고 술 마실 수 있는 곳은 서울 도심에 몇 안 될 것이다. 이런 곳은 돈을 들여서라도 보존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옆자리에서 순대국에 소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 김아무개(71) 할아버지도 "이곳은 내 고향집처럼 자주 드나드는 곳"이라며 은근슬쩍 끼어든다. 김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술과 밥을 먹고 있는 젊은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고향에 있는 아들 딸처럼 살갑다. 내 삶도 이곳과 함께 사라질 것 같다"며 눈물을 살짝 비추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먹을거리 명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서울시에서 '도심 재개발'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내걸고 서민들 오랜 손때 발때 입때가 묻은 먹을거리 골목을 마구 헐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오래 묵은 추억을 깡그리 잘라내는 것처럼 안타깝기 그지없다. 왜 우리나라 관리들은 해 묵은 것만 보면 허물지 못해 안달하는 것일까. 

머리고기 한 점 새우젓에 찍어 입에 넣자 쫄깃쫄깃 감칠맛 나게 씹히는 부드러운 맛이 끝내준다
▲ 머리고기 머리고기 한 점 새우젓에 찍어 입에 넣자 쫄깃쫄깃 감칠맛 나게 씹히는 부드러운 맛이 끝내준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먹자골목, #돼지머리 골목, #낙원상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