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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다니면서 찍는 제 사진은, 나들이 사진이기도 하지만, 제가 사는 동네를 동네사람 눈길로 보여주고자 하는, 저 스스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는 사진입니다.
▲ 골목길을 다니면서 골목길을 다니면서 찍는 제 사진은, 나들이 사진이기도 하지만, 제가 사는 동네를 동네사람 눈길로 보여주고자 하는, 저 스스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는 사진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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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사진으로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요. 사진으로 우리 삶터를 바꿀 수 있을까요. 사진으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사진이란 무엇을 하려고 하는 일일까요. 사진을 하며 내 생각을 나타낼까요. 어떻게 나타내고 무엇을 나타내고 왜 나타낼까요. 사진에 우리 삶터 이야기를 담아낼까요. 어찌어찌 담아내고 무엇무엇 담아내며 뭣하러 담아낼까요. 사진으로 이 세상에서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가를 밝혀낼까요. 어떤 참을 밝히고 어떤 거짓을 밝히며, 어느 자리에서 참을 밝히고 어느 때에 거짓을 밝히며, 무엇을 바라며 참을 밝히고 어떤 생각으로 거짓을 밝힐까요.

사진에는 어떤 힘이 있을까요. 사진기를 어깨에 걸친 나는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 있어 보이게 될까요. 사진기자가 찍어내는 사진은 우리 삶터를 우리 스스로 어떻게 느끼도록 하는가요. 나라안 대학교 사진학과와 나라밖 대학교 사진학과에서는 학생들한테 무엇을 가르치면서 사진기를 쥐도록 하고 있는가요.

글과 그림이 태어난 때를 헤아리면 사진은 아직 갓난쟁이조차 아닙니다. 어머니 배속에 있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사진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진이라는 아이를 낳을 꿈조차 꾸고 있지 않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리고 얕은 사진은 어느새 우리 삶터를 잔뜩 휘감고 있습니다. 외려 오늘날은 '글은 안 쓰'고 '그림은 안 그려'도 사진을 찍는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사진 찍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진기 든 사람이 많습니다. 또한, 글을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지 않는 가운데 사진만 찍는 사람이 많습니다.

더 잘나지 않으나 더 못나지도 않은 골목길 사람들 삶터입니다. 제가 바라보고 찍는 골목길 삶터 또한 더 잘나 보이는 사진도 더 못나 보이지도 않는 사진이 되도록 가다듬습니다.
▲ 골목길 삶터란 더 잘나지 않으나 더 못나지도 않은 골목길 사람들 삶터입니다. 제가 바라보고 찍는 골목길 삶터 또한 더 잘나 보이는 사진도 더 못나 보이지도 않는 사진이 되도록 가다듬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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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이어온 글쓰기요 그림그리기입니다만, 이 땅에서 글쓰기와 그림그리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가를 돌아보면,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과 마찬가지로 썩 오래된 문화라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지식이 없으면 못 쓰는 글이요 연모가 없으면 못 그리는 그림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지식 없이도 몸뚱이로 쓰는 글이 있으며 연모 없이 흙바닥에 막대기로 휘젓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터에서 이루어진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는, 신분과 계급에 따라 몇몇 사람만 누릴 수 있던 일이거나 놀이였습니다. 지식이라는 권력이 있는 사람한테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였습니다. 낮은자리 신분과 밑바닥 계급한테는 처음부터 주어져 있지 않았을 뿐더러, 함부로 넘보아서는 안 되는 글쓰기요 그림그리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사진찍기는? 사진찍기가 막 들어온 때를 헤아리면, 사진찍기는 글쓰기와 그림그리기하고는 달리, 딱히 신분이나 계급이나 지식으로 높다란 울타리를 쌓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사진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했습니다. 다른 울타리는 거의 없다고 할 만했으나 무엇보다도 돈이라는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돈이라는 울타리는 사진밭에서 무척 오랫동안 이어져서, '가난한 글쟁이'와 '가난한 그림쟁이'만큼 '가난한 사진쟁이'가 되는 일이란 몹시 힘들었습니다. 아니, '가난한 글쟁이'와 '가난한 그림쟁이'는 그럭저럭 버티고 견딘다 할지라도, '가난한 사진쟁이'는 거의 거지와 다를 바 없었다고 할까요. 돈 되는 일자리 있는 사진쟁이가 아닌, 제 삶자락 담아내려 하는 꼿꼿한 사진쟁이치고 '가난을 벗어난 사진쟁이'란 몇 사람이나 있었을까요. 하늘이 내려준 사랑을 받아 대학교 강단에서 일자리를 얻는다든지, 구청이나 시청에서 사진교실을 열어 주며 일삯을 얼마만큼 쥐어 준다든지 하는 고마움을 누린 사진쟁이는 몇이나 되었을까요. 찍기 싫은 사진을 찍으면서도 '이런 일을 겪고 치르며 내 사진길을 더 단단히 다스릴 수 있기도 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만, 제 사진길을 싱그럽고 힘차게 더욱 갈고닦는 데에 온힘과 온마음을 쏟을 수 있었던 사진쟁이는 몇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까요.

제주섬 중간산에서 몸부림치고 버둥거리던 김영갑 님은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1996)라는 이야기책을 사진 한 장 넣지 않고 펴낸 적이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은 김영갑 님 '오름 사진'을 잔뜩 넣은 새판으로 나와서 두모악갤러리 나들이를 하면 찾아 읽을 수 있게 바뀌었습니다. 사진이 함께 실린 책을 살피면서 김영갑 님 사진밭을 좀더 찬찬히 돌아보기도 하는데, 사진 없이 글만 있는 처음 나온 옛날 책을 죽죽죽 읽는 동안 '사진쟁이는 사진으로 제 생각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믿음에다가 '사진쟁이이기 때문에 제 사진 한 장 안 보여주면서 말마디만으로도 제 사진이 무엇인가를 들려주어야 한다'는 믿음을 얻습니다. 사진책은 사진으로 가득하기에 좋은 한편, 사진책이라서 사진 없는 사진 이야기만 실려도 좋다고 새삼 느낍니다. 사진쟁이 스스로 자기가 담으려고 하는 대상을 제 삶으로 녹여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는 김영갑 님 이야기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사진쟁이 스스로 자기가 찍으려고 하는 대상을 언제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가를 느끼지 못하면 어느 한 가지도 옳게 찍을 수 없다는 김영갑 님 생각자락을 읽으며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다른 사람 이론과 작품을 꾸준히 살피는 눈길과 몸짓이 있어야 하지만, 어느 사진쟁이이든 스스로 제 이론과 작품을 세워야 한다는 김영갑 님 깨달음을 읽으며 두 손을 모두어 잡습니다. 두모악갤러리 나들이를 하시는 분들은, 이런 마음바탕이 깔린 채 이루어진 김영갑 님 사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김영갑 님 사진책 몇 가지를 사들거나 빌려 읽는 분들은 이런 사진생각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아기는 날마다 자라면서 날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기를 찍으면서 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아기 삶을 사진으로 담자면, 아주 어릴 때에는, 또 나중에 커서도 날마다 한 장씩 그날 그곳 모습을 담아내어야 비로소 무언가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싶더군요.
▲ 아기 놀이 아기는 날마다 자라면서 날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기를 찍으면서 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아기 삶을 사진으로 담자면, 아주 어릴 때에는, 또 나중에 커서도 날마다 한 장씩 그날 그곳 모습을 담아내어야 비로소 무언가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싶더군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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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 생각으로 한 사진이 아님을 읽는 눈썰미는 얼마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이름 날릴 꿈을 안고 한 사진이 아님을 헤아리는 마음결은 얼마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누구 앞에서 뽐내거나 자랑하려고 한 사진이 아님을 느끼는 가슴자락은 어디에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돈과 시간과 품이 남아돌아서 한 사진이 아님을 알아채는 머리는 어느 만큼 될는지 궁금합니다.

먹고살며 하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을 하면서 먹고삽니다. 이것저것 끄달리는 대로 다 끄달리는 가운데 사진을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을 하는 가운데 뒤따르는 온갖 어려움과 괴로움과 시달림은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기꺼이 치러내고 남김없이 겪어냅니다. 돈에 주리고(사진기 장만할 돈이든 필름 살 돈이든 집자리나 일터 꾸릴 돈이든 밥먹을 돈이든) 사람에 주리며(내 사진 옳게 읽어낼 가슴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 이야기에 주린(내 삶 담아내는 내 이야기 사진을 일구자면 오랜 세월을 바쳐야 하기에) 채 살아가면서 하는 사진입니다. 돈이 넘치고 사람이 넘치며 이야기가 넘치는 채로는 사진을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을 해도 재미나 느낌이 나기 어렵습니다. 재미나 느낌이 나도 깊이나 너비를 찾기 힘듭니다. 깊이나 너비가 나도 눈물과 웃음을 자아내기 벅찹니다. 눈물과 웃음을 자아내도 내 살갗이 사진과 한몸뚱이가 되면서 뭉클해지는 찌릿함을 건네지 못합니다.

글 한 줄을 쓰더라도 온몸이 바쳐지는 글쓰기입니다. 그림 한 장을 그려도 온마음을 쏟아내는 그림그리기입니다. 사진 한 장을 찍어도 온삶으로 부대끼는 사진찍기입니다. 글삯 얼마 그림삯 얼마 사진삯 얼마 해서 뚝딱뚝딱 만들어 주지 못하는 글이요 그림이요 사진입니다. 피와 땀과 살과 눈물이 고루 섞이는 가운데 빚어내는 글이요 그림이요 사진입니다. 이러한 글과 그림과 사진이 '너무 힘든 일이라 여느 사람은 못하겠네요. 엄두도 못 내겠어요' 하고 느껴진다면서 손사래를 칠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피와 땀과 살과 눈물을 고루 섞는 글과 그림과 사진이란 언제나 우리 둘레에 있습니다.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안 알아차릴 뿐이고, 우리 스스로 안 들여다볼 뿐입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아버지 아닌 어머니'가 '여성으로 태어난 몸이기에' 식구들한테 밥어미가 되어 차려 주는 밥상에 이런 피와 땀과 살과 눈물이 스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입는 옷을 빨아 주는 그 손길에 모든 피와 땀과 살과 눈물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안고 다니며 한손으로 사진을 찍기란 힘들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아름다운 모습에 사진기를 안 들 수 없습니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전철역에서도 기꺼이 드러내 보이는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 길에서 얻은 사진 아기를 안고 다니며 한손으로 사진을 찍기란 힘들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아름다운 모습에 사진기를 안 들 수 없습니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전철역에서도 기꺼이 드러내 보이는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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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그림쟁이 반 고흐가 어이하여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요. 어느 누구도 그리지 않던 〈감자 먹는 사람들〉을 왜 그렸을까요. 밀레가 〈씨 뿌리는 사람〉과 〈이삭 줍는 사람〉을 왜 그렸을까요. 어떻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요. 김기찬 님은 《골목안 풍경》을 어떻게 한 장 두 장 찍어낼 수 있었을까요. 전몽각 님은 어떤 매무새로 《윤미네 집》을 일굴 수 있었을까요. 전민조 님은 《섬》을 무슨 마음으로 여미었으며, 안셀 아담스 님은 《캘리포니아》를 어떤 몸가짐으로 엮었을까요.

윤주영 님은 《일하는 어머니》나 《석정리역의 어머니》를 찍어냅니다. 아쉽게도 "우리 어머니"나 "이웃집 어머니"나 "우리 아내 어머니"를 찍어내지는 못하시지만. "아버지 얼굴"을 찍은 사진쟁이 거의 없고 "아버지 손가락"을 찍는 사진쟁이 아주 드물며 "우리 아이는 무엇을 하며 노는가"를 찍는 사진쟁이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요리책 사진은 많으나, 날마다 받아드는 수수하고 단출한 밥상을 담은 사진은 없습니다. 패션화보에 들어가는 비싸구려 신발 찍는 사진은 많으나, 아버지 어머니 나 형 언니 동생 들이 신는 헐고 닳은 싸구려 신발 찍은 사진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놀이공원과 국립공원 같은 데 놀러가서 찍은 사진을 잘 보이는 벽자리에 붙이는 사람들 많으나, 동네에서 동네 이웃이나 아이들하고 함께 찍은 사진을 잘 보이는 문간이나 책상맡에 붙이는 사람들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

부산 보수동에 마련된 헌책방골목은, 낮은자리 사람이 손수 일구어 일으킨 문화 터전입니다 이러한 터전을 거니는 아이들은, 책을 사지 않고 거닐기만 하여도 책에서 뿜기는 좋은 냄새와 멋을 고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 부산 헌책방골목은 부산 보수동에 마련된 헌책방골목은, 낮은자리 사람이 손수 일구어 일으킨 문화 터전입니다 이러한 터전을 거니는 아이들은, 책을 사지 않고 거닐기만 하여도 책에서 뿜기는 좋은 냄새와 멋을 고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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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땀과 살과 눈물을 우리한테 바친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습니다. 형이 있고 누나가 있고 누이나 동생이 있습니다. 또래 동무도 있고 이웃 아줌마와 아저씨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손자취나 발자취나 몸짓이나 마음결이 사진으로 고이 실린 적은 못 보았습니다. 글에는 가끔 실리고 그림에는 더러 실리는데, 오로지 사진에서만큼은 거의 한 번도 못 보았다고 느낍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구경거리로 찍는 '가난쟁이 허름한 삶터' 사진은 있으나, '같이 그곳에서 그때를 보내는 한식구'로 담는 사진은 어떤 까닭에서인지 나라안에서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本橋成一'이라는 분이 《上野驛の幕間》 같은 사진책을 빚어내지만, 우리한테는 이 비슷한 책조차 없습니다. 김기찬 님 《역전 풍경》(서울역 둘레 사람 이야기)과 양해남 님 《우리 동네 사람들》(충남 금산 사람 이야기)이 살짝 엇비슷하게 다가갔으나 아직은 멀었습니다. 좀더 오래, 한결 깊이, 더욱 따사롭게 껴안을 때 시나브로 태어나는 사진책이 바로 《上野驛の幕間》 같은 사진책이니까요.

온나라 구석구석 '글쓰기'란 이름을 내세운 '논술' 학원이 가득합니다. 한국사람은 어린이일 때부터 글이 무엇이고 글쓰기로 무엇을 하는지 아예 모르고 맙니다. 그림을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모두, '정물'을 그리면서 죽은 모델과 서양사람 머리통을 베낄 뿐, 자기를 미술학원까지 보내 준 식구들 땀방울 배인 삶터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새롭게 바라보며 담아내자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21세기로 접어든 한국땅 사진밭에는 하나같이 상업사진과 만듦사진이 넘실거리는 데다가, 아직 얼치기에 지나지 않는 다큐사진이 어깨 들썩거리면서 저마다 제자리에서 울타리 쌓기를 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다운 글쓰기를 찾기 어려운 교육 터전이고, 그림그리기다운 그림그리기를 즐기기 어려운 세상 흐름이며, 사진찍기다운 사진찍기로 뻗어나갈 마음을 다스리기 어려운 우리들입니다.

아기를 업고 물을 먹이는 장모님. 오랜만에 아기를 본 장모님은 허리가 아프신데에도 아기를 업고 싶다고 하시면서 아기하고 함께 놀고 시간을 보냅니다. 이 모습을 그저 스쳐 지나 보낼 수 있지만, 저는 앞으로도 이 모습을 우리 아이가 잘 떠올리고 되새기면서, 자기를 사랑해 준 수많은 사람들 손길을 느끼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 아기한테 물 먹이는 장모님 아기를 업고 물을 먹이는 장모님. 오랜만에 아기를 본 장모님은 허리가 아프신데에도 아기를 업고 싶다고 하시면서 아기하고 함께 놀고 시간을 보냅니다. 이 모습을 그저 스쳐 지나 보낼 수 있지만, 저는 앞으로도 이 모습을 우리 아이가 잘 떠올리고 되새기면서, 자기를 사랑해 준 수많은 사람들 손길을 느끼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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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고 훌륭하고 빼어나기까지 한 사진기는 끊임없이 나옵니다. 엄청나게 팔립니다. 온갖 사진이 꾸준히 찍힙니다. 그런데, 무엇을 하는 사진이지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진이지요? 사진기 든 사람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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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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