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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대하소설 읽기의 즐거움
▲ <토지> 대하소설 읽기의 즐거움
ⓒ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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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깨나 읽는다고 자부하며 살았던 내게 대하소설 『토지』는 늘 먼발치에 있었다. 길산의  무용담에 반하고, 임꺽정의 기개에 감탄하고, 해방공간의 태백산맥에서 분단국가의 아픔에 몸서리치던 기억도 있지만, 『토지』를 찾지는 않았다.

대하소설이라고 해도 대개 10권 내외의 분량인데 비해 토지는 갑절이나 많은 21권에 이른다. 끈기 있게 달라붙어 읽을 자신이 없으니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25년에 걸쳐 써내려간 대작이 주는 중압감이라고나 할까.

뒤늦게 발동이 걸려 토지 21권을 모두 읽었다. 꼭 두 달 걸렸다. 그 기간 동안 평사리에서 시작해서 경성, 간도, 연해주, 만주, 중국, 일본 등지로 이어지는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에 빠져 살았다.

다 읽었다고 『토지』의 참맛을 제대로 느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가의 25년 삶이모두 녹아 있는 『토지』의 맛은 몇 번이고 곱씹어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끈기로 『토지』와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토지』를 다 읽을 무렵 『한국 근대문화와 박경리의 토지』란 신간도 구해 읽었다. 1945년부터 해방까지 전개된 『토지』란 작품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의 도움으로 『토지』란 작품의 참다운 가치가 새롭게 느껴졌다.

광활한 한국 근대사의 복원

『토지』는 1897년 추석에서 시작되어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구한말에서 해방에 이르기까지 굴곡의 역사를 무대로 한 작품이다. 평사리에서 시작해서 경성, 만주, 간도, 연해주, 일본을 넘나드는 광활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국 근대사의 다양한 모습이 등장인물들의 삶을 통해 복원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 또한 다양하다.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항일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 을사조약, 군대해산, 105인 사건, 3·1운동, 용정 대화재, 광주학생항일운동, 관동대지진과 한국인 학살, 물산장려운동, 형평운동, 만보산 사건, 남경대학살, 국가총동원령, 징병, 징용, 정신대 강제 동원, 창씨개명 등등.

이렇게 다양한 사건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직접적으로 사건 전개의 구체적 상황을 묘사하기보다는 그 사건들에 의해 영향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대적 흐름을 따라 역사적 상황을 순서대로 보여주기보다는 등장인물의 일상 경험을 통해, 기억과 회상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적 사실에 접근하고 있다. 큰 줄기를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에서 소홀해지기 쉬운 부분을 복원한 것이 『토지』의 참다운 가치라고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물 형상화를 통한 한국 근대사 복원

표지 <한국 근대문화와 박경리의 토지>
▲ 표지 <한국 근대문화와 박경리의 토지>
ⓒ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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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최 참판 댁 일가붙이와 그 주변에 머무는 사람들 뿐 아니라 다양한 장소 다양한 상황 속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이 형상화 된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근대 역사에 맞서 살았던 사람들의 갖가지 모습이 등장한다.

"그렇다믄 말입니다. 지 생각 겉에서는 말입니다. 의병은 왜놈들 몰아내자 카는 거고, 또 하나는 도적질 해묵고 나라 팔아 묵을라카는 벼슬아치들을 치자 카는 건데, 그기이 다 똑같은 건데 와 동학은 나쁘다 카고 의병은 옳다 캅니까?"(1부 1편 어둠의 발소리 중)

양반 중심의 질서를 고수하려는 김훈장 앞에서 가렴주구를 일삼는 양반들의 횡포에 맞서는 동학운동에 기울어 있던 윤보가 대들며 한 말이다.

양반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고 근대 국가 수립을 향한 움직임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김 훈장과 같은 이들은 위정척사 세력이 되고, 윤보 같은 이들은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한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이 노골적으로 진행되면서 위정척사 세력도 동학농민운동 세력도 의병 운동 대열로 합류하게 된다.

"내가 무속을 보존할 가치가 있다 한 것은 그 속 검은 왜놈들이 저희들 미신은 뒤로 감추고서 야만이다, 미개다 하는 수작을 뻔히 알기 때문이라구. 그것이 다 이 나라 문화를 깡그리 없이하자는 수작이거든. 그러니 내가 보존하자는 것은 미신을 보존하자는 그것은 아니라구. 무속도 우리 백성들이 살아온 자취요 풍속이라면, 그걸 아주 싹 지워버릴 수는 없어."(2부 3편 지리산사나이들 중에서)

역관의 후손인 임명빈이 개화와 전통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술자리에서 쏟아낸다. 개화란 전통과의 무조건 단절이 아니라 전통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개화가 선이 되고 근대를 최고의 선처럼 강조하다보면 자기비하에 빠져들어 결국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에 동조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하루의 임금(賃金)이 얼마라는 꼬리표가 붙은 일감 말입니다.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고 사막이 되어버린 땅덩어리에 부려진 일감, 그거야말로 보석일 거예요, 횡재가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미친 듯 달려가는 건 당연하겠지요. 노예의 낙인보다 확실하고 종의 문서보다 무서운 것이 그 임금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4부 3편 비애가 아닌 생명의 한 중에서)

유인실의 말이다. 일제에 의해 식민지 자본주의로 편입되어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의 지배란 식민지 자본에 의한 지배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동경유학생 출신인 유인실은 이런 사상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주제 가지고 『토지』읽기

200장 원고지 3만 장 분량, 25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 21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재미 있게 읽는 방법 중의 하나가 주제에 따른 접근의 방법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국 근대사, 여성 주인공들의 삶과 직업, 신분질서를 둘러싼 갈등, 항일운동의 다양한 유형, 결혼 제도의 변화와 갈등….

작품을 읽기 전에 작가와 작품에 대해 분석한 책을 먼저 읽거나 토지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은 뒤 읽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만화나 드라마가 아닌 원작 『토지』읽기에 동참할 분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토지 1 - 1부 1권

박경리 지음, 마로니에북스(2012)


태그:#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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