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비정규직 문제는 가장 큰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다.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비정규직 차별 대우 철폐를 요구하는 노동자와 학생들.
 비정규직 문제는 가장 큰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다.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비정규직 차별 대우 철폐를 요구하는 노동자와 학생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추운 겨울 날씨만큼이나 매서운 경기 침체 속에 고용난까지 더해져 구직자들의 얼굴에는 점점 그늘이 짙어진다. 특히 연일 보도되는 감원설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더욱 불안하다. 이랜드 사태를 비롯하여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는 끊임없이 사회문제가 되어 왔는데 기자는 꼬박 7개월의 경험을 통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일상을 돌아봤다.

기자는 취업을 준비하며 경험을 쌓아볼까 하고 'ㅇ'인력파견업체의 시중은행 청원경찰로 일하고 있다. 기자 입장에서는 공백 기간이기도 하고 금융권 진로를 희망하고 있어 은행일을 가까이서 경험하고 적지 않은 보수도 받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의 직장으로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정확한 내 월급을 도무지 알 수 없다

문제는 파견회사의 태도로부터 시작한다. 현재 시중은행 청원경찰은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채용하고 은행은 인력파견계약을 통해 청원경찰을 지점에 배치한다. 은행에서 채용요청을 하면 파견업체에서 채용과정을 진행하고 은행에서 최종 면접 후에 통과되면 해당지점에서 근무하게 된다.

은행은 근로자 임금을 지급하고 파견업체는 상당량의 수수료를 떼고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은행이 임금으로 지급하는 급여를 아는 근로자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은행에서 청원경찰의 급여를 인상하더라도 파견업체에서 임금을 인상하기까지 근로자 입장에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문제의 첫 번째는 파견근로자의 취약한 근무조건에 있다. 대표적인 파견근로자인 경비원에 비해 은행청원경찰의 근무환경 자체는 좋은 편이다. 하지만 근로조건 자체는 매우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기자의 경우 한 달 급여는 세금을 포함해서 1백만원을 웃돈다. 급여는 기본금과 식대보조, 기타 수당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것은 명절상여금도 포함되어 있던 채용공고 내용과는 다르다. 게다가 회사 설명에 따르면 급여에는 연차수당도 포함되어 있다. 연차수당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휴가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 급여로 지급하는 수당인데, 연차수당이 급여에 포함되어 있어 사용할 수 있는 휴가가 없다는 게 회사 설명이었다. 따라서 한 달에 하루씩 복지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여성 근로자를 제외하고, 남성 근로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휴가는 원칙상 없다.

채용공고에서 연차휴가와 정기휴가가 기록되어 있던 것과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기타 수당은 9만1941원인데, 연차수당 외에 어떤 수당이 포함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근로계약서를 근무시작 후에 팩스로 받아서 서명해야 했던 기자 입장에서는 문의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단도 없었다. 입사 후 3개월 가까이 취업규칙을 팩스로 발송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매번 보내겠다고 말할 뿐 퇴직을 앞둔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했다.

담당직원 얼굴, 입사 다섯 달만에 처음 봐

둘째로, 주먹구구식 업무지원에 대한 문제이다. 파견근로자는 말 그대로 계약한 사업장에서 근무하게 된다. 따라서 몸 담은 회사보다는 근무지에 있는 시간이 월등히 많다. 일과 대부분은 근무지에서 보내게 되고 기자의 경우 파견회사에는 가 본 적도 없다. 담당자 얼굴을 본 것도 입사 후 다섯 달 만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충실한 업무지원은 기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기자가 근무하는 7개월 동안 경비업무 담당자가 4명이 교체되고 지금이 5명째이다. 한 담당자는 교체되었다고 통화한 다음 날 퇴사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기자가 신청했던 가스분사기 홀스터(허리에 메는 분사기 집)는 넉 달만에 받을 수 있었다. 청원경찰을 시작한 지 4개월 반만에 홀스터를 착용했고, 그 전까지 가스분사기는 상자째 서랍 안에 넣어두어야만 했다.

셋째로, 묵인되는 위법행위에 대한 문제이다. 청원경찰로 근무하기 위해서는 한국경비업협회에서 진행되는 경비원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교육 내용의 질은 빼고서라도 교육비용 부담이 근로자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있다. 경비원 교육비는 1인당 10만원으로 교육은 3일간 진행된다. 교육비는 먼저 파견업체에서 지급하되 근로자가 1년 이내에 퇴직해야 할 경우 교육비 일체를 환급해야 하는 것이 기자가 근무하는 파견업체의 규정이다.

기자가 교육 내용을 전달받을 당시에 담당자는 점심 식비까지 회사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생색을 냈었다. 물론 기자가 알아본 바로는 식비도 교육비 10만원에 포함된 것이었다. 근무기간에 따라 경비원 교육비용이 근로자에게 징구(徵求)될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은 퇴직신청을 한 때였다.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근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교육비용이 근무기간에 따라 근로자에게 징구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담당자에게 문의했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회사 규정이라는 것과 근로계약 당시 기자 본인이 해당 내용에 동의했다는 것이었다.

근로계약서와 서약서, 기술 자산 및 정보 보호 동의서에 해당하는 계약 당시 모든 서류를 보관하고 있던 기자는 담당자가 말한 동의서를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고, 파견업체에 팩스 발송 요청을 해서 확인해 보았다. 해당 동의서는 기자의 글씨와 비슷한 글씨로 작성되었지만 기자의 서명이 아니었다. 흔히 이름을 빠르게 흘려 쓰는 서명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해당 동의서의 서명은 기자의 한글 이름을 빠르게 흘려 쓴 서명이었다. 물론 기자는 영문 서명을 사용한다. 해당 내용을 노동당국에 문의하니 당연히 규정위반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재 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이첩되어 처리중이다.

정기교육 이수 서류 허위, 회사는 노동부 우수기업

교육비뿐만이 아니다. 처음 담당자가 은행에 왔을 때, 은행에 와서 근무기록에 대한 부분이라며 기자가 근무를 시작했던 달부터 각 월별로 서명을 받아간 적이 있었다. 후에 가끔 담당자들이 올 때마다 서명을 받아가곤 했는데, 최근 서류를 자세히 보니 정기교육 이수에 관한 내용의 서류였다. 확인해 보니 청원경찰은 정기적으로 파견업체를 통해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교육 이수에 대한 내용을 기자로부터 서명을 받아간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기자는 받지도 않은 교육을 받은 것으로 기록했고, 파견 업체는 소속 청원경찰들에게 정기 교육을 성실히 이수한 업체가 되었다. 2008년 노동부 시행 근로자파견 우수기업 인증을 받은 업체의 실태가 이렇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최근 한 일터에서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의 구내식당 음식값의 차별로 사회의 주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은행에서 근무했던 기자의 경우, 원칙적으로 없는 휴가도 은행의 배려로 한 달에 하루 정도 사용할 수 있었고, 무인경비장치 관리를 하면서 약간의 수당을 받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식용유 선물세트를 택배로 보내주는 회사와는 달리 명절마다 은행으로부터 비공식적인 상여금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파견근로자들에 비해 매우 좋은 조건에서 좋은 동료들과 일했다고 볼 수 있다.

은행 청원경찰은 업무 숙련도나 난이도 면에서 은행직원은 물론 파견 업체 직원들과 비교할만한 업무는 아니라고 봐야 한다. 사교성 있고, 적극적인 성격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분명히 급여나 처우면에서 정규직 근로자들과 다르게 대우 받을 이유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근무 일수에 따라서 당연히 보장받는 휴가나 누구나 다 같이 맞이하게 되는 명절에 대한 처우는 분명히 같은 것이어야 한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없는 근무지 조건 때문에 각종 업무지원 요청이 지연되거나 묵인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문제가 되는 것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완전 철폐하라는 노동계의 외침이 비현실적이라는 안타까운 사실은 기자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모두가 정규직 근로자인 세상은 이상적인 사회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서 근로자 본인과 기업 모두가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도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근로자가 끊임없이 문제되는 것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라는 평등의 대원칙이 지켜지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힘들게 일하는 근로자에게 더 많은 급여와 혜택을 주는 것이 평등이다. 또한 같이 일하고, 함께 일한 근로자에게 모두가 같이 누리는 급여와 혜택을 주는 것이 평등이다.


태그:#비정규직, #청원경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