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희 감독 생전의 모습

▲ 이만희 감독 생전의 모습


이만희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다. 그는 1961년 <주마등>을 시작으로 <삼포 가는 길>까지 공식적으로 총 52편의 영화를 남겼다. 그가 남긴 영화중 <돌아오지 않는 해병> <시장> <만추> <귀로> <싸리골의 신화> <삼포 가는 길>은 한국영화사에 영원히 남을 걸작들이다.

이만희 감독과 그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60년대와 70년대 중반까지 한국영화에서 선도자 역할을 했던 그에 대한 찬사이자 존경의 의미다. 그리고 든든한 버팀목으로 한국영화를 지탱했던 그에 대한 헌사이다. 그는 한국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떠났다.

이만희 감독은 어떤 감독보다 콘티를 중요시 여겼다. 그래서 각본을 바탕으로 영화 촬영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꼼꼼히 챙기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의상, 소품, 영화 속 대사, 배우의 연기까지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이런 그의 영화철학 때문에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은 항상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어야 했다. 그리고 스태프들은 영화가 완벽해지도록 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녀야했다.

이만희 감독은 우리나라 근대사 비극인 한국전쟁을 직접 겪었다. 그는 실제 국군으로 참전하여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지 직접 몸으로 체험하였다. 이런 그의 경험은 이후 한국전쟁영화의 걸작으로 불리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년)을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이 작품이 국가에서 지원해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기막힌 반전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의 경험이 큰 힘이 되었다.

그가 주로 활동했던 시기는 대한민국 영화예술이 활짝 꽃핀 시기이기도 했지만 군사정부의 철저한 사전검렬 때문에 문화예술가로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 것 펼쳐보기에 너무나 제약이 많은 시대이기도 했다. 쉽지 않은 시기에 그가 남긴 작품들은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는 철학적이면서 문예적인 미적 감각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그는 지금도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한국영화사에 남아있다.

이만희 감독은 뛰어난 작품 활동과 함께 수상 경력 역시 화려하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년)으로 청룡영화제와 대종상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시장>(1966년)으로 다시 청룡영화제 감독상, 만추(1966년) 부일영화상 감독상, <싸리골의 신화>(1967년)로 백상예술대상 영화감독상, <삼포 가는 길>(1975년)로 대종상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장장 10여년에 걸쳐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활동했다는 것이 여러 영화제 감독상 수상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이만희 감독이 무엇보다도 뛰어난 점은 정규과정의 영화 수업과정을 밟지 않고 전쟁, 미스테리, 멜로 등 다양한 장르를 연출했다는 점이다. 장르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는 천재감독으로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뛰어난 연출 실력을 함께 보여주었다.

이만희 감독과 그의 영화 1기 전쟁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 영화스틸컷

▲ 돌아오지 않는 해병 영화스틸컷 ⓒ 돌아오지 않는 해병


이만희 감독 영화를 모두 거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대표작 몇 편을 중심으로 그의 영화가 어떻게 변모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현재 많은 영화평론가 및 영화인들이 평가하는 이만희 감독은 작가주의 감독이란 의견에 공통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작가주의감독이란 호칭이 붙은 인물이 한국영화계에서 손에 꼽을 만큼 숫자가 적은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다. 그는 영화를 연출할 때 무엇보다 영화완성도에 큰 비중을 두었다. 무엇하나 소소한 것조차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완벽해야했다.

그가 얼마나 영화를 연출할 때 꼼꼼한 스타일인지 그의 초기대표작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년)의 일화를 참고하면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전쟁을 겪은 만큼 영화에서 전쟁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원했다. 특히 이 영화 마지막 부분 중공군과 전투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수만 명의 해병대를 군으로부터 지원 받았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전투 장면에 뭔가 중요한 결함이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바로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총격장면과 폭발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이다. 그는 이 문제를 실제 실탄을 사용해 영화를 촬영하면서 해결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다.

초기대표작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년)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그는 이 작품을 국가의 지원 하에 만들었지만 철저하게 반공영화보다 반전영화로 만들었다. 당시 공산당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했던 시대에 이렇게 연출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뚝심이 아닐 수 없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년)의 성공 이후 그는 <7인의 포로>(1965년)를 통해 다시 한 번 반전영화에 도전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에게 반공법 저촉으로 구속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북한군을 너무 미화시켜 표현했다는 당국의 검열에 걸린 것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가 졸지에 북을 찬양하는 예술인이 되고 말았다.

이만희 감독이 활발히 활동했던 시절은 반공이데올로기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특히 그가 국군으로 전쟁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 인물이란 점에서 그의 초기 전쟁영화들은 특별했다. 남과 북을 모두 전쟁의 피해자로 보는 그의 관점은 반공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대에서 통용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반공이데올로기를 절묘하게 이용하여 당시 관객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반전영화를 연출했다.

이만희 감독과 그의 영화 2기 멜로영화


귀로 영화스틸컷

▲ 귀로 영화스틸컷 ⓒ 귀로


뚝심 있는 그였지만 <7인의 포로>(1965년)로 구속된 것은 이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7인의 포로>(1965년)를 기점으로 하여 전쟁영화보다 멜로영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한다. 1960년대 멜로영화의 걸작으로 불리는 <만추>(1966년)와 <귀로>(1967년)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의 멜로영화는 당시 유행했던 작품들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는 대중적인 멜로영화대신 영상미가 뛰어나면서 감독의 철학이 담긴 작품성이 뛰어난 멜로영화를 만들어냈다.

<만추>(1966년)와 <귀로>(1967년)는 뛰어난 영상미와 구성을 통해 단순히 관객들이 즐기는 멜로영화의 차원을 넘어섰다. 이 작품들은 한국영화사에 학술적 연구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작가주의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가 얼마나 영화를 만들 때 통속성을 벗어나고자 노력했는지 이 두 작품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만희 감독 멜로영화들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의 멜로 작품 대부분 대사가 절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는 배우들이 대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직접적인 방법대신, 영화 세트와 조명, 배우의 침묵 속에 나타나는 표정과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했다. 특히 배우들의 심리묘사에 큰 초점을 맞추었다. 여성이 보여주는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과 방황을 소리 대신 영상미를 통해 전달했다. 당시 멜로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였다. 이런 시도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영상미학을 제대로 발현시키는 힘이 되었다.

결국 영상미학인 영화가 어떻게 관객들과 의사소통해야 하는지 그 스스로 이미 충분히 경계선을 긋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특히 그가 연출한 멜로영화 <만추>(1966년)와 <귀로>(1967년)는 이런 그의 철학이 극대화 되어 있는 멜로영화란 점에서 꼭 한번 관람할 가치가 있다. 특히 영화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왜 이 작품이 6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영화로 남게 되었는지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흑백영화지만 연구할 가치가 있다.

이만희 감독과 그의 영화 3기 작가주의완성


삼포 가는 길 영화스틸컷

▲ 삼포 가는 길 영화스틸컷 ⓒ 삼포 가는 길


이만희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 된 유고작 <삼포 가는 길>(1975년)은 한국 영화사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다. 이 작품은 작가주의 감독이 만들어낸 예술작품이 어떤 것인지 명확한 선을 제시해준다. 그는 이 작품에서 배우들의 대사와 장황한 설명대신 영상미를 통해 모든 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결국 이전 그의 작품들에서 보여주던 대사의 절제와 배우들의 심리묘사가 이 작품을 통해 더욱더 완벽해진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지금도 뛰어난 문학작품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는 황석영의 원작 단편소설을 뛰어난 영상미로 담아내었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영화는 일반 대중영화보다 연출력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극과 극을 오가는 경우가 많다. 영화 <삼포 가는 길>(1975년)은 이만희 감독의 뛰어난 작가주의 정신이 없었다면 완벽한 예술영화로 탄생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김진규, 문숙, 백일섭 같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큰 힘이 되었지만, 실제 영화가 예술혼이 살아 있는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이만희 감독 공이라 해도 큰 과언이 아니다.

<삼포 가는 길>(1975년)은 빼어난 영상미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관점을 차용한 다큐멘터리 영화 이미지를 풍긴다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던 1975년 사회상을 세 명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여행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산업화에 대한 관점은 원작소설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면 영화는 긍정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난다. 

이만희 감독에 대해 필자 편의상 1기, 2기, 3기로 나누긴 했지만 절대 이렇게 짧은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감독이 아니다. 필자가 이 글에서 언급한 영화들은 그의 대표작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 역시 그가 연출한 모든 작품을 볼 수 없었다. 그의 영화 필모그래피 안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 받는 작품들 위주로 관람한 것이 전부다. 단 몇 편의 영화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감독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만큼 이만희 감독은 한국영화사에서 특별하다.

연재 네 번째 인물로 이만희 감독을 선택한 것은 한국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에 대한 헌사이다. 그가 있었기에 60년대 한국영화사는 예술혼이 살아 있는 영화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이만희 감독은 단순히 많은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 아닌 한국영화를 한 단계 발전시킨 천재감독이자 명감독, 그리고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이었다.

이만희 돌아오지 않는 해병 귀로 만추 삼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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