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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캠프가 여름, 겨울 두 차례 있는데, 음악캠프 마지막에 "한여름밤의 산골짝 작은 음악회"를 개최한다. 아이들이 연습한 것을 이때 발표해야 된다. 무대에 한 번 서게 됨으로서 자신감, 자부심이 생겨난다.-부산MBC <섬마을 아이들, 희망을 연주하다> 한 장면
 음악캠프가 여름, 겨울 두 차례 있는데, 음악캠프 마지막에 "한여름밤의 산골짝 작은 음악회"를 개최한다. 아이들이 연습한 것을 이때 발표해야 된다. 무대에 한 번 서게 됨으로서 자신감, 자부심이 생겨난다.-부산MBC <섬마을 아이들, 희망을 연주하다>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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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겨우 시작할 수 있었던, 보잘 것 없는 부산 가덕도 소양보육원의 '소양 오케스트라'. 아빠(53·지형식 원장)는 음악이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마침내 아이들은 음악을 통해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의 생활 속에는 음악이 넘쳐나고, 음대로 진학하는 아이들이 나올 만큼 성장했다. 지난해 10월엔 10박11일간의 미국 연주 여행을 갔다올 만큼 소문난 '소양 오케스트라'는 이제 그들의 꿈과 희망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은 음악을 통해서 자신들의 상처와 아픔을 딛고 자신감을 회복하였고, 오케스트라를 하며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화합하는 정신을 배웠다.

결국 이들은 미국 디즈니랜드 한복판에서, 52번째 생일을 맞은 아빠에게 "시간이 흘러 아빠의 주름살과 흰 머리가 헛되지 않게 자랑스러운 아들 딸이 될게요, 사랑해요 아빠, 영원보다 더 영원히…"라고 말해 아빠의 눈에서 감동의 눈물이 흐르게 만들었다. 

<베바>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양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부산MBC 창사 50주년 기념작인 '섬마을 아이들, 희망을 연주하다-3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전성호 PD와 김현희 구성작가
 소양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부산MBC 창사 50주년 기념작인 '섬마을 아이들, 희망을 연주하다-3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전성호 PD와 김현희 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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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호(39) 부산MBC PD는 7개월 동안 이들과 동고동락하며 도심 속 작은 어촌 마을에서 순수하게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과 가슴 아픈 가족사, 그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악기를 잡는다는 남모를 사연들,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원장 내외의 눈물까지 고스란히 담아 다큐멘터리 <섬마을 아이들, 희망을 연주하다-3부작(이하 섬마을 아이들)>로 만들었다. 

부산MBC 창사 5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로 소개되는 <섬마을 아이들…>은 오는 17일(밤 9시 45분) 첫방송을 시작으로 23일(밤 11시)과, 31일(밤 9시 45분)에 연이어 방송된다(이번엔 부산경남 지역에만 전파를 탈 예정이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 제작진조차도 반해 버린 '소양 오케스트라' 아이들의 이야기를 7개월간 밀착 취재하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낸 부산MBC 전성호 PD를 14일 저녁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했다.

전성호 PD가 소양보육원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0년 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인형극을 하는 아줌마 자원봉사대를 따라 취재를 갔었다. 아줌마들이 가덕도에서 인형극 공연을 했는데, 경운기를 타고 도착해 보니 소양보육원이었다.

"공연이 다 끝나고 나오는데, 지금 도서관 있는 건물에서 악기 소리가 들렸어요. 원장님께 물어보니 '우리 보육원에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라고 해요. 그러면 이거 언젠가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드렸죠. 그러다 2년 전에 생각이 있었는데 우리쪽에서 준비가 안 돼서 그때는 하지 못했고, 작년에 이걸 시작하게 된 것은 방송제작지원을 받게 되면서 하게 된 거죠. 창사 50주년이라고 해서 특별히 선택한 건 아니고,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거였죠."

부모에 대한 원망을 음악으로 치료한 아이들

전 PD는 방송에 나간다고 아이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취재를 시작했다.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구김살도 별로 없고 밝은 느낌이었다. 어른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과 실제 모습은 달랐다. 아이들이 폐쇄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한테 관대하고 외향적이었다. 여느 가정의 아이들과 비슷했다.

"다큐 제작을 위해 7개월 동안 보육원 아이들과 수시로 접촉을 했는데, 아이들이 철이 들고 예의가 밝았어요. 근데 쭉 촬영을 하면서 아이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그네들이 속에 갖고 있는 상처에 대해서 알게 되었죠. 밝음 뒤에는 아픔이 숨어 있었죠." 

요즘 보육원에 들어 오는 아이들 중엔 고아보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많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부모의 통제를 벗어난 상태에 놓여져 있다가 보육원에 들어 오는 경우가 많아 나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도 하는 등 이중삼중의 아픔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아이들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 부모에 대한 원망이 가슴 깊은 곳에서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오히려 고아들보다 지금 애들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버려지는 경험을 당하잖아요. 부모를 떠나 처음 보육원에 도착했을 때 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그 충격, 그 순간을 아이들이 잊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거는 잊을 수 없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이거든요. 그런데 자라면서 부모를 이해하는 애들이 많아요. 중·고등학생 되면 엄마도 찾아가고 그래요.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아팠던 게 없어지진 않거든요. 그래서 원장님이 오케스트라를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음악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오케스트라 통해 존중과 화합 배운 것 같아"

운동회는 추석 뒤에 매년 한다. 집에 못 가는 아이들도 있고, 보육원 출신의 사람들이 결혼을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러 가족들 데리고 온다. 그래서 전체 소양가족들이 모여서 청군 백군 나눠서 하룻동안 실컷 즐겁게 논다.
 운동회는 추석 뒤에 매년 한다. 집에 못 가는 아이들도 있고, 보육원 출신의 사람들이 결혼을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러 가족들 데리고 온다. 그래서 전체 소양가족들이 모여서 청군 백군 나눠서 하룻동안 실컷 즐겁게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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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 오케스트라는 10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1999년에 결성되었다. 처음에는 가덕도 주민들도 참가했는데 주민들이 빠져나가면서 소양보육원 아이들로만 구성하게 되었다. 어려움도 많았다. 원장님도 음악에 관심이 많았지만 전문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교육해주는 자원봉사 선생님을 찾기가 어려웠고, 비싼 클래식 악기를 모으는 데도 힘이 들었다. 아이들이 악기를 소중하게 다루게 되기까지는 더 힘든 과정이었다.

전체 소양보육원 식구는 109명 정도다. 오케스트라 단원은 자원봉사자 선생님 3분을 포함해 30명이다. 오케스트라 단원은 중·고등학생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대학생들도 3~4명 정도 있다.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이면 누구나 다 악기를 시작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는 처음 시작하는 왕초보팀과 드림팀이 있는데, 처음엔 왕초보팀에서 연습하다가 음악회와  내부 무대를 통해서 검증이 된 사람들이 드림팀으로 올라간다.

"원장 선생님이 제일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이 부족한 거예요. 악기가 바이올린·첼로로 제한적이고, 트럼펫·플롯 같은 관악기까지 다 하고 싶은데 선생님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무료봉사하는 좋은 선생님들이 많아야 하는데 이런 점이 채워졌으면 좋겠어요."

원장님이 논문으로 쓰고 싶어할 만큼 음악을 통한 아이들의 정서 변화는 확연했다.

"아이들은 포기되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없어요. 근데 악기를 연주하면서 무대에 서게 되잖아요. 그러면 내가 왠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죠. 그러면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거예요.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이 소위 말하는 자기 거 챙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얘네들은 굉장히 관대해요. 제가 생각할 때 얘네들은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화합하는 걸 배우는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는 다른 사람의 연주 소리를 들어야 하잖아요. 그리고 제일 큰 변화는 아이들이 이걸로 자기의 장래나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가니까, 이만한 게 없죠."

1000원 후원자 만명 모으기 도전했는데...

소양보육원 전경. 다들 건물이 밝고 이쁜 것에 놀란다. 수영장, 야간조명이 설치된 운동장도 있고, 건물마다 피아노가 갖춰져 있다.
 소양보육원 전경. 다들 건물이 밝고 이쁜 것에 놀란다. 수영장, 야간조명이 설치된 운동장도 있고, 건물마다 피아노가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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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에는 건물마다 피아노가 설치되어 있고 수영장도 있다. 우레탄을 깔아놓은 마당이 꽤 넓은데 밤에도 이용할 수 있게 조명까지 설치했다. 쓸데없이 게임이나 나쁜 쪽으로 빠질 수 있으니 그런 걸 방지하는 차원에서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원장은 교육중에 아이들에게 운동을 많이 시킨다.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원장님이 음악을 생활화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어디 가서 칠 수 있는 게 아니라 집 거실에 나오면 바로 칠 수 있는. 또 밖에서 누리는 영화·음악회 등 문화적인 활동들도 그래요. 그런 것은 후원금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처음에 1000원짜리 후원자 만명 모으기에 도전했죠. 이 정도만 있으면 생활할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만명을 넘어섰어요. 이걸로 애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것, 행복해할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이게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 연주할 '캐리비안의 해적' 주제가 악보가 아이들에게 어려워 연습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해도 안되니 한숨을 짓거나 아예 악기를 내려 놓은 채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기도 했다.

"애들이 잘 안되니까 의견도 내고 싸우고 그래요.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나중에는 선생님이나 원장님과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의견을 낼 만큼 성숙해져요. 제가 촬영하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이런 거, 그냥 연습만 하는 게 아니고, 지시에 따르는 것만이 아니고, 자기들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거였죠."

디즈니랜드 주차장서 생일잔치 한 지형식 원장

소양 오케스트라는 작년 10월 10박 11일간의 미국 연주 여행을 하였다. 아이들은 미국 여행을 통해 자신들의 꿈과 미래를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소양 오케스트라는 작년 10월 10박 11일간의 미국 연주 여행을 하였다. 아이들은 미국 여행을 통해 자신들의 꿈과 미래를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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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0박11일간의 미국 연주 여행길에 올랐다. 처음 비행기를 타는지라 단원인 진주가 기내식을 먹지 못하고 속을 비웠다. 9시 반에 도착했는데 시차를 무시하고 저녁까지 세 번 연달아 연주회를 열었다.

아이들에겐 정말 강행군이었다. 비몽사몽간에 연주한 아이도 있다는 그런 소리도 들렸다. 정민이는 이동 중에 코피를 흘렸다. 시차 적응이 안 된 애들은 드러눕기도 했다. 그런데 연주를 시작하면 아이들은 생기를 되찾았다. 신기했다.

미국 연주 여행 일정 중에서 디즈니랜드에 간 날이 아빠 생일이었다. 해마다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 생일을 깜짝 이벤트로 준비했었다. 이번에는 미국 가기 전부터 선물과 편지를 미리 준비해서 들고 갔다. 생일 하루 전날 호텔에서 작전도 짜고 가이드선생님께 도움도 요청했다. 아이들이 흉내낸 것은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한 장면.

미국 연주 여행 일정중에서 디즈니랜드 주차장에서 52번째 생일을 맞은 소양보육원의 아빠 지형식 원장. 버려진 아픔을 간직한 아이들에게 음악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미국 연주 여행 일정중에서 디즈니랜드 주차장에서 52번째 생일을 맞은 소양보육원의 아빠 지형식 원장. 버려진 아픔을 간직한 아이들에게 음악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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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디즈니랜드 주차장에서 생일잔치를 해본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원장님이 감동먹었죠. 편지에 있는 메시지에 더 감동했죠. '내가 애들에게 해주는 건 정말 조금밖에 없는데 내가 애들한테 받는 건 정말 훨씬 많다'면서…."

아빠에게 드리는 편지의 일부다.

'… 시간이 흘러 아빠의 주름살과 흰 머리가 헛되지 않게 자랑스러운 아들 딸이 될게요. 사랑해요 아빠. 영원보다 더 영원히….'

10박 11일간의 미국 연주 여행을 마치고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이 자기 꿈과 미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자기 미래를 자기가 선택한 거에 대해서 좀 더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는 게 생겨난 것 같았어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기사까지 신경쓴 건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전성호 PD가 독자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이다.

"소양보육원 아이들이 갖고 있는 음악·이야기들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뭔가가 분명히 있다는 거죠. 이런 것을 그냥 소비하자는 게 아니고,  보고 감동이 있으면 걔네들에게 손 내밀어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게 기부든 자원봉사가 됐든 어떤 형태로든지."

덧붙이는 글 | 다음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사진은 부산MBC <섬마을 아이들, 희망을 연주하다> 화면을 갈무리했습니다.



태그:#소양오케스트라, #소양보육원, #베토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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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tracking photographer. 문화, 예술, 역사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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