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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오전 서울 미아동 영훈초등학교 학생들이 원어민 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영어로 수업을 하고 있다.
 서울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원어민 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영어로 수업을 하고 있다.(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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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일 우리 학교에 미국인 원어민 교사가 새로 왔습니다. 지난 번 원어민 교사는 말도 없고 웃지도 않았는데, 이번에 온 사람은 달랐습니다. 공항에서 바로 데려 왔는데도 시차적응도 잘 했고 아이들에게 웃어주기도 했으며 손을 흔들며 "헬로"라고 인사도 했습니다.

생전 처음 먹는 학교 급식밥도 두 번, 세 번씩 갖다가 싹싹 비워 잘 먹습니다. 아이들이 먹는 양으로 6인분 정도는 거뜬히 먹습니다. '밥 잘 먹어야 복 들어오고 밥 잘 먹는 사람이 성격도 좋다'는 어른들의 말을 많이 들어왔던지라 밥 잘 먹는 모습이 괜히 고맙고 대견했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마 밥을 저렇게 잘 먹으니 아이들에게도 친절할 것이고 수업도 잘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첫 주는, 사랑하는 가족과 정든 이국 땅에 와서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할까. 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나라 사람인데도 낯선 시골 학교에 와서 한 학년 아이들과 적응하고 사는 것이 쉽지 않은데. 한국말 한 마디 못한 채로 처음 한국땅에 내려서 한국중에서도 시골 마을에서 한국 학교와 한국 아이들과 만나는 것도 낯설 텐데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정규 영어시간과 방과후 특기적성 시간을 지도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걱정하면서 수업보다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다음 주는 수업 경험도 없는 이 사람이 아이들에 대해 파악할 수 있게 담임 교사가 수업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며 참관하게 했습니다. 다음 주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담임 교사가 지도안을 짜서 주면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도 수업을 잘 이끌어가지 못했습니다. 담임 교사가 이렇게 하라고 하면 그 말만 한 번 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 하면서 아이들에게 말할 때 좀더 큰 소리로 쉬운 단어로 천천히, 반복해서 하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래도 자꾸 목소리는 기어 들어가고 소리가 너무 작아 잘 알아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 처음이어서 그래. 고향 떠나와 얼마나 힘들까? 나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이해가 돼. 암~ 되고말고!'

이런, 원어민 '교사'인데 수업 할 줄 모른다니

그렇게 원어민 교사로 우리 학교에 처음 온 미국 사람은 수업다운 수업 한번 해보지 않고
담임교사들만 고생시키면서 한 달 월급 200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학교는 살림살이에다가 37만원을 월세로 내 주었습니다.

교사들은 처음 온 미국사람 뒤치다꺼리에 힘은 들었지만, 저러다 곧 나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미국인을 가르치고 또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해야할 일도 많은데
돈벌러 온 미국사람 월급 받는 일을 도와주어야하나 화도 벌컥벌컥 났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도와주면 곧 우리 아이들이 원어민에게 훌륭한 본토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겠지 하면서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도무지 달라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직 미국에 태어나서, 영어를 잘해서 영어 좀 하라고 데려온 이 사람이 어찌된 일인지 말을 잘 안 합니다. 그나마 하는 말도 목소리가 아주 작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목소리 작은 것은 또 그렇다쳐도 명색이 원어민 '교사'로 온 사람이 수업을 할 줄 모릅니다.

가르쳐 줘도 그 다음엔 뭘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할 수 없이 아이들과 축구라도 하면서 영어로 놀라고 했더니 아이들에게 축구시키고 운동장 가에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중계방송이라도 하라고 해도 안 하고 서 있기만 합니다.

그런데 12월 들어서자 이 사람이 교실에 들어올 때 뭔가 자료를 찾아 갖고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뭔가 감을 잡기 시작했나보다. 그럼 그렇지! 이제는 열심히 영어 수업을 하려나 보다' 했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러나 하긴 하는데 수업 목표가 없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벌써 다 알고 있는 숫자가 써 있는 카드를 몇 장 들고 와서 '원투쓰리포~' 대충 몇 번 따라하게 하더니 나머지 시간은 그냥 주사위 놀이를 하게 합니다. 아이들이 우리 말로 대화를 나눠도 그냥 둡니다. 다음 날은 '두유 라이크~' 몇 번 하더니 그 다음에는 온 시간 내내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것 그리게 하고 아이들이 그리는 모습만 구경하고 서 있습니다.

'잘 그린다!', '대단하다!', '이건 뭐야?' 그 좋다는 영어발음으로 이렇게 칭찬해 주고 물어주기만 해도 좋을 것을 구경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말을 한 마디도 할 수 없어 아이들이 이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을 못해서 담임인 제가 짧은 영어로 더듬더듬 물어 말해줘야 합니다.

원어민 교사 뒤치다꺼리에 정신 없는 교사들

외국인 교사의 보조교사 겸 통역까지 맡은 담임교사들은 교실에 한국말 못하는 덩치 큰 애 하나 더 떠맡은 느낌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렇게 교실에 들어온 것도 며칠 그 다음에는 학교에 오질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담당 교사가 수업도 빠진 채 집에 가서 보니 술에 잔뜩 취해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억지로 학교에 데리고 왔는데, 근처만 가도 술 냄새와 씻지 않은 냄새가 섞여 고약합니다. 눈이 풀려있고, 몸을 잘 가누지 못합니다. 교무실에 와서도 앉아서 졸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반갑다고 '하이~'하면서 손을 흔들어도 멍할 뿐 쳐다보지 않습니다. 반갑게 인사해도 대답이 없으니 아이들이 실망합니다. 원어민 교사 모습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수군거립니다.

수업 시간이 되어도 교실에 들어오지 않아 데리러 가야 합니다. 영어 수업 시간에 담임 교사가 없으면 수업을 못한다고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정규 수업시간에도 그렇고 방과후 특기 적성 시간에도 그렇습니다. 담임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시간과 업무처리하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데 정규 영어시간은 물론 방과후 특기적성교육시간에 원어민을 위한 보조교사 노릇까지 담당해야 합니다.

술에 쩔어 지각도 자주 합니다. 때때로 결근도 합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학교 원어민 교사가 술이 잔뜩 취해 집밖에 누워있다고 전화가 오면 교직원이 달려가서 보살펴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원어민 교사가 무섭다고 합니다. 아이들 영어 교육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흉측한 몰골로 나타나 정서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원어민 교사, 우리 학교 골치거리인 원어민 교사, 이것이 원어민 교사가 있는 우리 학교 모습입니다.

고교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교육대학 4년과 교육실습을 마치고 그 어렵다는 임용고시에 통과해도, 막상 학교에선 아이들 대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현재 원어민 교사들은 한국에 오자마자 연수 한 번 하지 않은 채 학교로 바로 옵니다. 따라서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학교 책임입니다.

원어민 교사 부작용, 영어 정책 부실 때문

아무리 급해도 최소한 한두 달 정도는 대한민국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해서,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목표와 원어민 교사 정책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나라 아이들에 대해서 연수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도 최소한 인사 말 같은 기초적인 회화를 공부하고 가는데, 남의 나라 아이들을 가르치려 온 사람이라면 기본적인 한국말은 배워 와야 하지 않습니까? 이게 다 '원어민 교사 100% 확보 정책'으로 인한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일이라지요? 영어권에서 대학 졸업해서 그냥 비행기만 타고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한국 원어민 강사입니다.

며칠 전, 드디어 경기도 교육청에서 '경기도내 원어민 교사 적응연수'가 있다는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기다리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공문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내용을 보니 딱 이틀 동안 모대학의 강당과 체육관을 빌려서 경기도내 전체 원어민 1000명(초등 500명, 중등 500명)을 모아놓고 적응연수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연수를 진행하는 곳은 경기도 교육청이 아닌 한 대기업의 인력개발원입니다.

학교 원어민 교사 정책을 보면 혈세 낭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어민 한 사람에 들어가는 돈이 집세에 살림살이 제공에 월급에, 10년차 초등교사보다 많습니다. 무엇보다 영어 수업과 인간적인 자질도 부족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 아깝고 또 아깝습니다.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원어민 교사 정책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영어 교육을 둘러싼 학교 사정은 이런데 당장 내년부터 초등학교에 영어 교육은 확대해서 영어 시수를 늘린다고 합니다. 교실에 어떤 원어민이 들어가서 아이들을 만나는지 모른 채, '영어교육을 위해 원어민 교사를 100% 확보'하는 것이 올해와 내년 각 시도 교육청의 목표이면서 우수사업에 들어갑니다.

원어민 교사를 둘러싸고 벌이지는 일이 우리 학교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학교보다 더 심각한 일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영어 교육 정책이 그만큼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영어 교육이 담아낼 내용과 당사자인 어린이들은 무시한 채 영어 수업 시수만 늘리려 하고 원어민 교사 채용 실적으로 영어교육 성패 여부를 가늠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상황에도 이런데 영어 시수가 더 늘어나게 되면, 학교 안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런지요? 현장교사로서 참으로 걱정스럽고 또 걱정스럽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부영 기자는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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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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