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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한 얼굴로 파룬궁 시범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
 무표정한 얼굴로 파룬궁 시범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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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듯 초겨울입니다. 계절의 변화는 어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썰렁한 날씨 속에 낙엽이 흩날리는 풍경은 참 쓸쓸합니다. 그래서 초겨울풍경은 낭만적인 가을풍경보다 한결 더 쓸쓸한 모습이지요. 서늘한 추위 때문에 사람들의 움츠린 어깨너머로 벌거벗은 가로수가 서있는 풍경은 더욱 쓸쓸합니다.

그런 쓸쓸함은 고궁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한적한 고궁의 풍경이 더욱 쓸쓸한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주에 찾은 종묘의 풍경은 정말 쓸쓸한 모습이었습니다. 종묘 정문 앞 종묘공원에 삼삼오오 몰려 앉아 바둑과 장기를 두는 노인들의 야윈 어깨가 요즘 어려워진 경제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렵게 사는 노인들이 모여드는 곳이지만 그래도 전에는 작은 활기가 느껴지기도 했던 공원입니다. 그러나 이날의 풍경은 그저 무겁게 착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가 어떤 활력도 찾아볼 수 없었지요. 어려워진 경제여파는 노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닌 듯 했습니다. 중국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는 파룬궁 수련자들의 마네킹 같은 모습도 쓸쓸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지요.

정치집회장에서 연설을 듣고 있는 노인들
 정치집회장에서 연설을 듣고 있는 노인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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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정문 안쪽에 있는 연못에 내려앉은 낙엽
 종묘 정문 안쪽에 있는 연못에 내려앉은 낙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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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으로 가는 길가 한쪽에선 이날도 정치 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연사는 '박정희 향수'에 젖어있는 사람인지 이런 난국엔 "박정희 대통령 같은 위대한 영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지만 백여 명쯤 되는 노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습니다.

정치집회를 보며 지난해 여름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집회를 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다가 봉변을 당한 씁쓰레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이날처럼 썰렁한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제법 열기가 느껴지는 풍경을 담으려고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누군가 갑자기 뒷목을 툭 치며 멱살을 잡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야! 이00야, 너 빨갱이 기자지? 사진은 왜 찍는 거야?"

느닷없이 당한 기습공격에 당황하여 상대를 바라보는 순간 주먹질과 함께 욕설이 날아왔습니다. 엉겁결에 주먹은 피했지만 그는 다시 카메라를 빼앗으려고 재차 공격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종묘 정전 옆의 감나무 한 그루
 종묘 정전 옆의 감나무 한 그루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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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이 드리운 산책길의 쓸쓸한 풍경
 그늘이 드리운 산책길의 쓸쓸한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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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6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건장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무슨 짓이냐고 항의를 하는 순간 뒤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내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습니다. 넘어지면서 바라보니 주변엔 비슷한 사람 서너 명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빼앗아 박살을 내버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집회를 보고 있던 다른 노인들 10여 명이 일어나며 "그 기자00 때려죽이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 사이 카메라 가방에 꽂혀 있던 수첩을 한 사람이 낚아챘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황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따져보려 했지만 그들은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폭력을 휘둘렀지요.

그때 마침 노인들 중에서 한 노인이 다가와 말리면서 "이 사람들 막무가내니 빨리 피하라"고 귀띔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무지 말할 대화상대가 아닌 그들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그들을 뿌리치고 뛰쳐나와 피했지만 심한 모멸감과 낭패감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영녕전 정문
 영녕전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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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옆 화단의 낙엽
 담장 옆 화단의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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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의 그 씁쓸했던 기억이 왜 초겨울의 썰렁한 풍경 속에서 떠올랐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노인들을 선동하는 연사의 연설내용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지난 여름 그때와는 달리 모여든 노인들의 숫자도 열기도 썰렁해진 날씨만큼이나 썰렁한 분위기였습니다.

종묘 정문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초겨울의 종묘는 쓸쓸한 모습 속에서도 찾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교환가치가 떨어진 우리 화폐의 환율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일본관광객들이 특히 많아보였습니다. 일본인 관광객들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곳곳을 돌아보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종묘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종묘제례 때 왕과 왕실가족들이 머물던 재궁에서 젊은 커플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둘이서 사진을 찍다가 내게 사진을 찍어줄 것을 손짓과 몸짓으로 부탁을 했습니다. 일본인들인가 싶어 일본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말레이시아에서 왔다고 합니다.

양지쪽에 앉아 해바라기 하는 노인들
 양지쪽에 앉아 해바라기 하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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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에 날아올라 감을 쪼아먹는 까치들
 감나무에 날아올라 감을 쪼아먹는 까치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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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3세라는 이데린 탄(Edeline Tan)씨 커플은 서울 관광이 처음이라고 했지만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울 한 복판에 있는 고궁들이 참으로 아름답다며 종묘를 둘러보고 창경궁과 다른 고궁들도 둘러볼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짧은 영어실력 때문에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그들은 우리나라의 겨울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는 말도 잊지 않았지요.

그들과 헤어져 종묘 정전으로 향했습니다. 정전 옆 건물 앞에는 커다란 감나무에 빨간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 여간 곱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감나무가지에는 마침 까치 서너 마리가 날아들어 감을 쪼아 먹으며 신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감을 따지 않고 몇 개씩 남겨놓는 것을 까치밥이라고 했던가 봅니다. 종묘공원의 산책로는 말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지만 화단과 담장 밑에 쌓여 있는 낙엽들은 쓸쓸한 풍경이면서 아름답고 멋진 모습으로 남아있었습니다. 더구나 정전 샛문 지붕 위의 기왓골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낙엽들은 아직도 낭만적인 모습으로 지난 가을의 추억을 불러오고 있었지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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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서울 도심 속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문화유산 종묘, 종묘에 찾아든 초겨울은 이렇게 아름다움과 쓸쓸함이 교차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더구나 썰렁한 날씨에 몸을 웅크리고 걷는 노인들의 모습이 더욱 쓸쓸한 풍경이었지만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을 찾은 외국인들의 표정에서는 초겨울의 또 다른 멋과 아름다움을 찾는 눈길이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종묘, #관광객, #문화유산,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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