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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한 조준웅 특별검사수사팀의 조대환 특검보.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한 조준웅 특별검사수사팀의 조대환 특검보.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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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일 한남동 한 고깃집.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이던 특검팀과 기자들이 모여 환담을 나눴다. 지글지글 고기가 익어가고 빈 맥주병이 쌓여갔다. 그리고 정보를 얻으려는 기자들은 조준웅 특검, 윤정석 특검보, 조대환 특검보, 제갈복성 특검보 등과 쉴 새 없이 말을 섞었다. 

그 때 내가 있던 테이블에는 조대환 특검보가 앉았다. 그날 조 특검보는 기자들이 "삼성의 정·관계 로비 등 사안이 민감한데 제대로 수사가 가능하겠냐"는 뜻을 담아 던진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특검 맡으려면 생각보다 조건 까다롭다. (변호사) 개업 1년 안 되면 안 된다더라. 난 3년 됐다. '1년 이하'는 사실상 물이 덜 빠졌다고 보는 거다. 난 물이 많이 빠졌다고 생각한다. 새로 태어났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새로 태어났다"고 말하던 그에게 순간 신뢰가 갔다. 2차 술자리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에 높은 점수를 줬다.

특검팀이 구성될 때도 조대환 특검보는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일부 신문은 조 특검보가 "대구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재직 시절 청구그룹 비리사건을 맡아 장수홍 당시 청구그룹 회장의 비자금을 낱낱이 파헤쳤고 로비를 받은 전·현직 공무원 및 정치인들을 대거 구속시킨 인물"이라며 "동료 검사들은 '삼성 비자금 특검 예상 결과는 조대환 특검보를 유심히 지켜봐라'고 한다"고까지 보도했다.

삼성SDS·삼성화재와의 계약, 윤리적으로도 문제없나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 4월 23일 오후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삼성특검 수사결과와 삼성그룹 쇄신방안에 대한 사제단 평가'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하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 4월 23일 오후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삼성특검 수사결과와 삼성그룹 쇄신방안에 대한 사제단 평가'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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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1일 신문지상에서 만난 조 특검보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그가 공동대표로 있는 법무법인(하우림)이 삼성SDS의 법률 고문, 삼성화재의 교통사고 보험금 소송 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렉스)과 합병을 했단다. 합병 추진 시점도 지난 5월 초 특검수사가 끝나 1심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이다.

조 특검보는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한 변협에 공문을 보내 물어보니 특검과 상대 법무법인이 맡는 사건과는 쟁점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합병을 추진했다"며 "협회로부터 확인을 받았고 윤리적으로도 잘못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윤리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다니, 새삼 이 사람이 지난 10개월 남짓 전 "새로 태어났다"며 "지켜봐달라, 무조건 결과를 내면 될 것 아닌가"고 공언했던 사람과 동일인물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삼성SDS가 어떤 곳이던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발행 의혹은 삼성가의 불법경영권승계 의혹과 직결돼 있었다. 특검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이학수 전략기획실 부회장, 김인주 전 전략기획실 사장 등을 기소했다.

삼성화재는 어떤가? 삼성화재가 고객에게 지급하지 않은 보험금을 비자금으로 조성했다고 의혹을 받은 곳이다. 당시 삼성화재는 특검의 압수수색 당시 문서파쇄기로 문서를 파기하는 등 증거인멸까지 해 특검팀의 격분을 샀던 곳이다.

사건의 쟁점이 다르면 자신이 기소했던 회사라도 상관없나? 이 점은 조 특검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굳이 대한변협에 공문을 보내 '빠져나갈 구멍'까지 마련해놓고 윤리적으로도 잘못되지 않았다고 항변한 것이다.

그 때 영원히 삼성사건 못 맡는다고 한 건 엄살이었나?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할 조준웅 특별검사수사팀이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한남동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조준웅 특검(맨 오른쪽)이 윤정석·조대환 특검보 등을 취재진에 소개하고 있다. 빨간 넥타이를 매고 기자들에게 인사하는 이가 조대환 특검보.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할 조준웅 특별검사수사팀이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한남동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조준웅 특검(맨 오른쪽)이 윤정석·조대환 특검보 등을 취재진에 소개하고 있다. 빨간 넥타이를 매고 기자들에게 인사하는 이가 조대환 특검보.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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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법조인 한명은 조 특검의 법무법인이 삼성화재의 교통사고 보상금 소송대리를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앉아서 벌어먹을 수 있는 손쉬운 것"이라고 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특검보들이) 자신은 영원히 삼성사건 못 받는다고 죽는 소릴 하더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일 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시민단체, 김 변호사의 변호인단은 "삼성이 특검팀에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확인은 할 수 없었다. 단지 시간이 갈수록 느슨해지는 수사 속에서 의심만 했을 뿐이다.

이제 확연해졌다. 삼성은 특검팀에 은혜를 갚았다.

어찌 보면 삼성 특검 출범 초기, 조 특검보를 보면 특검 결과를 알 수 있다던 법조계의 평가는 맞아 들어갔다. '불도저'는 새로 태어나 삼성의 '변호사'가 됐다. 그리고 특검의 풋익은 기소는 이건희 전 회장을 미소짓게 했다. 아직 대법원의 심리가 남아있지만 결과가 뒤집히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당시 술잔을 맞부딪히며 호기롭게 수사결과를 자신했던 그에게 정말 '유감'이다.


태그:#삼성 특검, #김용철?변호사, #비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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