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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도 아닌 시할머니와 함께 사는 건 그리 쉬운 얘기가 아니다. 벌써 나이차이만 50년 이상이 난다. 시간에 따른 문화적 차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느 것 하나 걸리지 않는 게 없다. 게다가 그 시할머니께서 평생 장사를 하시며 뛰어난 언변과 강한 고집을 가진 분이고, 신랑의 수입이 넉넉치 않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형편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내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시할머니를 3년 동안 모시고 살았다. 기쁜 일도 많았지만 상당히 힘든 시간이었다. 때론 눈물을 훔치며 내게 따지는 아내를 보기도 해야했다. 한 없이 순수하고, 착하기만 하던 아내가 점점 성격이 날카로워지는 걸 보기도 해야했다.

 

물론 나나 할머니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나와 아내가 다투는 날이거나 내가 할머니께 이것저것 따지는 날에는 모두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겨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 어려움이 좀 풀리고 나아질까 기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벽 같은 것이 있었다. 결국 우린 분가를 결정해야만 했다.

 

어린 시절 생선장사로 날 길러주신 할머니시다. 할머니는 나를 막내 아들쯤으로 여기시고, 나 역시 할머니를 어머니처럼 여기고 있다. 따라서 분가 결정은 나로써는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우리 부부마저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또한 계속 나만의 주장을 하는 건 아내에 대한 배려가 없는 너무나도 이기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 동안 그 어린 나이에 그만하면 아내로써는  자기 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 아니 보통이상으로 훌륭한 아내였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아내가 이런 말을 꺼냈다. 오늘 할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그냥 분가하지 말고 계속 같이 살아도 좋을 것 같다 말씀드렸다 한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하였다. 사연인 즉슨 이러했다.

 

지난 주 수요일 아내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었다. 향년 87세셨다. 그런데 삼일간 장례를 치르며 아내는 여러 생각과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자신은 며느리로써 여러 상황과 시할머니를 보았는데, 자신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니 이젠 시할머니를 며느리로써 뿐 아니라 자식의 눈으로 보게 되더라는 것이다.

 

자식의 눈으로 시할머니를 보게 되니 그 동안 못 보던 것이 보이고, 어찌해야할지 모르던 것을 알게 되더라 한다. 그러니 할머니와 막혀 있던 대화의 통로가 조금씩 열림이 느껴지고, 또 막혀 있던 부분도 어떻게 열어야 할지도 알 것 같다 하였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저 듣고 있어야만 했다. 혹시 '한 순간의 감정에 취해 한 얘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아내가 너무나도 진지하고, 그 말 속에 진실성이 잔뜩 스며 있었다.

 

나는 그 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다시 이런 말을 해준 아내가 그저 고맙기만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그냥 분가하도록 하자" 고 얘기하였다. 아내에게 일종의 '휴가'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 할머니께는 내가 좀 더 수고하며 왔다 갔다 하면 되는 일이었다.

 

또한 가만 살펴보니 아내에 비해 내 준비가 너무도 되어 있지 않았다. 신학 공부를 하며 나름 수도를 해왔다 생각했지만 나는 아내에 비해 한참 부족한 존재였다. 그러고 보면 그냥 분가하자 하는 말은 아내를 핑계로 내 부족함을 감추려 하는 어색한 도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정말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인데..

 

이런 나를 보면 시어머니도 아닌 시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아내의 변화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50년이란 시간을 넘어서는, 시할머니를 모시는 손주 며느리가 아닌 자식의 눈으로 보게 되는 참으로 놀라운 인식의 확장이 아닐 수 없었다.

 

평소 나는 장인, 장모님도 우리가 모시고 살자 했었다. 그러나 나는 내 할머니도 이해하고, 모시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과연 장인 장모님께는 그럴 수 있을것인지. 적어도 아내가 내 할머니께 해드렸던 것만큼은 해야할텐데 그럴 수 있을런지.

 

아하, 이거 걱정이 엄습해 온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블로그와 메타 블로그 사이트에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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